과학·의학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체, ‘1초에 10억회’ 기록경신

Shawn Chase 2018. 8. 1. 14:57
미국-스위스 연구진 각자 동시개발
나노입자 공중부양해 레이저로 회전
나노입자 물성 연구, 양자역학 실험
“극한조건 물리현상 측정 장치로”
한국인 대학원생 제1저자로 참여
1초당 10억 회 회전장치에 쓰인 실리카 나노회전체. 2개 입자를 붙인 아령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퍼듀대학 연구진이 나노 회전장치를 보고 있는 모습. 출처: 미국 퍼듀대학교
1초당 10억 회 회전장치에 쓰인 실리카 나노회전체. 2개 입자를 붙인 아령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퍼듀대학 연구진이 나노 회전장치를 보고 있는 모습. 출처: 미국 퍼듀대학교
1초에 10억 회나 도는 나노 회전장치가 만들어졌다. 이전 기록에 비해 100배나 빠른 회전체다. 연구자들은 이런 나노 회전체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의 성질을 측정하는 데 쓰이거나, 더 나아간다면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의 물리현상을 측정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미국물리학회(APS)가 운영하는 물리학 전문매체 <피직스(Physics)>의 최근 보도를 보면,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 연구진미국 퍼듀대학의 연구진은 각자 독자적으로 나노물질을 고진공 상태에서 레이저 빛으로 공중에 띄우고서 1초에 10억 번 회전(분당회전수 600억 RPM)시키는 회전장치를 개발해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따로 나란히 발표했다.

용어설명
용어설명
미국 퍼듀대학 연구진(통캉 리 교수)에는 이 대학 대학원생인 안종훈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안 연구원은 “레이저 집게(용어설명 참조)를 이용해 작은 입자를 공기 중이나 진공 환경에서 관찰해 다른 조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물리현상을 찾으려는 연구 분야는 오래 되지 않은 신생 분야인데, 독립적인 두 연구진에서 우연히 같은 결과가 비슷한 시점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두 연구진이 개발한 1초당 10회의 나노 회전장치는 2013년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연구진이 탄산칼슘 입자를 공중에 띄워 1초당 1000만 회 회전시킨 당시 최고 기록(<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보다도 100배 빨라,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로 기록됐다.

연구진은 레이저의 광학적 성질을 이용해 실리카(SiO2) 나노입자를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에 띄운 다음에 빠르게 회전시켰다. 진공 환경에서도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입자들을 최소로 줄이는 고진공 상태를 유지하고 나노입자를 회전체로 이용함으로써 빠른 회전 속도를 구현했다.

이 장치에서 레이저의 역할은 중요했다. 레이저는 나노입자를 붙들어두는 ‘집게’로 쓰였으며, 또한 나노입자를 회전시키는 회전 전기장으로도 이용됐다. 안 연구원은 “레이저를 이용하는 이른바 ‘광 집게’(optical tweezers)는 이미 널리 쓰이는 기술인데, 레이저 빛을 아주 작은 초점에 모아 입자와 그 주변의 굴절률 차이로 인력이나 척력을 발생시킴으로써 입자를 붙들어두는 장치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노입자 회전의 원리와 관련해서는 “레이저로 나노입자를 공중부양 하고 난 뒤에 레이저의 원 편광(회전 전기장, 용어설명 참조)을 이용해 나노입자를 회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노 회전장치의 개념도.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부양 시킨 나노입자에 레이저 빛을 선형 편광으로 쏘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 진동하지만(왼쪽), 레이저 빛을 원 편광으로 쏘면 회전 자기장이 생성되어 분극화된 나노입자에 작용해 나노입자가 빠르게 회전한다(오른쪽). 출처: 퍼듀대학교
나노 회전장치의 개념도.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부양 시킨 나노입자에 레이저 빛을 선형 편광으로 쏘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 진동하지만(왼쪽), 레이저 빛을 원 편광으로 쏘면 회전 자기장이 생성되어 분극화된 나노입자에 작용해 나노입자가 빠르게 회전한다(오른쪽). 출처: 퍼듀대학교
거시계인 전투기의 제트 엔진에서는 회전속도가 1초당 1000회를 넘기 어려운데, 원심력이 커지면 회전체 자체가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초당 10억 회로 회전할 때에도 엄청난 원심력이 생기지만 나노입자가 워낙 작아 나노미터 세계에선 이런 회전 속도가 구현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이런 극한의 회전장치가 당장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아직 확실하게 제안되지는 않았다. 스위스 연구진은 <피직스>에서 “그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가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구진은 나노물질이 극한의 원심력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측정하는 용도로 쓰이거나, 민감한 센서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더 발전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라는 이름값을 빛나게 해줄 분야는 아무래도 양자역학 측정인 듯하다.

안 연구원이 통캉 리 교수 연구진을 대신해 후속연구 계획에 관해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후속연구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목표를 찾는 단계에 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기존에는 도달하지 못한 회전속도를 달성했기 때문에 이런 회전속도를 이용해 이전에는 관찰할 수 없었던 물리현상들을 측정하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그중 하나는 ‘진공마찰’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흔히 진공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진공에 있는 물체는 아무런 마찰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공에서도 영점 에너지와 진공장에 의해 물체가 마찰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진공마찰을 실제로 측정할 수 있다면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극한의 회전장치가 진공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진공장의 가상입자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영향을 가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진공마찰’ 또는 진공의 양자현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험도구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공중부양 광기계학(Levitated optomechanics)은 정밀측정, 열역학, 거시 양자역학 및 양자 센서 분야에서 큰 가능성을 지닌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고진공에서 실리카 나노덤벨 입자를 합성하고 광학을 이용해 공중에 띄운다. 선형 편광 된 레이저를 사용하여, 광학적으로 부양 된 나노덤벨의 비틀림 진동을 관찰한다. 공중부양 된 나노덤벨의 비틀림 균형은 캐번디시 비틀림 균형과 유사한 새로운 현상이며 최근 제안된 바와 같이 [진공의 양자론적 효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카시미르 토크를 관찰하고 중력의 양자 성질을 조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원 편광 레이저를 사용하면 170나노미터(nm) 직경의 나노덤벨을 1기가헤르츠(GHz) 이상으로 회전시킬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실현된 가장 빠른 나노 기계 회전체이다. 더 작은 실리카 나노덤벨은 더 높은 회전 주파수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초고속 회전은 재료 특성을 연구하고 진공마찰을 탐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Physical Review Letters (2018),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21.033603]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55721.html?_fr=mb2#csidx43506fa750e3634850c6d3f62c09c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