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이하경 칼럼] 문재인 정부, 이제 거창한 깃발은 접자

Shawn Chase 2018. 7. 30. 19:21
중앙일보 2018.07.30 00:20

자영업자·소상공인 반대 무시한
최저임금제 속도전에 경제 흔들
구두 밑창 닳도록 삶의 현장 누빈
실천적 리얼리스트 노회찬 정답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민중과 밀착된 삶을 살고 민중의 언어로 얘기한 우리 시대의 예수”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50년 된 삼겹살 불판을 바꿔야 한다”는 촌철살인의 비유와 유머, 위트는 그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실천적 리얼리스트였기에 발화(發話)했을 것이다. 
  
노회찬은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소환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와 4시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타고 직장인 강남 빌딩 부근의 정류장에 내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 달에 85만원 받는 투명인간인 이분들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며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고 약속했다.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었던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창업주도 연설 동영상을 보고 흐느껴 울었고, 정의당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했다. 

이 동영상을 최저임금의 수렁에 빠진 문재인 정부가 보기를 권한다. 지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중소기업인들은 2년에 걸쳐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올라가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청년들은 편의점 알바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경제의 모세혈관이 막히면서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의 지난 27일 광화문 호프 대화에서도 “업종별·지역별로 속도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백번, 천번 맞는 얘기다. 노회찬 식으로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으면 당연히 반영됐고, 지금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 격차를 줄이겠다는 데는 찬성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단기간에 1만원으로 끌어올리면 자영업자·소상공인·알바의 생계가 송두리째 흔들릴 거라는 아우성을 이 정부의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러고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노회찬은 세상과 작별하기 사흘 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을 단기간에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문재인(2020년까지), 안철수·유승민(2022년)뿐 아니라 정의당(2019년)의 공약이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이라고 고백했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활동인구의 28%로 미국의 4배인데 카드 수수료를 1%대로 낮추거나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고쳐봐야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점을 창업해 1년도 못 버티고 망하는 사람이 70%나 되는 현실에서 노동시장을 개편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 같은 답답한 정책에 노회찬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는 수단에 불과한 최저임금 1만원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소득격차 축소’라는 목표를 실현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회의 자료, 보고서와 씨름하다 새벽 3시에야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오면 보고서 대신 국민의 아우성이 들리는 현장부터 챙기기 바란다. 지금은 “추상적인 선의 실현보다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라”는 칼 포퍼의 조언이 설득력 있다. 
  
유신 반대 유인물을 돌린 경기고 학생 노회찬이 찾아가 만난 함석헌 선생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한 분이다. 노회찬은 여성·장애인·비정규직·성소수자와 함께 눈물 흘리고, 힘겨운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에 전력을 다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2004년 호주제 폐지 법안 대표 발의자가 바로 노회찬이었다. 보수정치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비판을 하되 적대적이 아니었고, 물러서지 않았지만 상대를 모욕하지 않았다. ‘깨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6411번 버스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는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분은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서울신문 7월 27일). “우리 시대의 예수”라는 도올의 비유는 거창한 깃발, 사나운 투쟁의 결기가 아니라 힘없는 투명인간들에게 말없이 다가간 한 인간에 대한 민중의 무한한 신뢰를 말한 것이 아닐까. 
  
노회찬은 밑창까지 닳아버린 구두와 지구에서 달나라까지 가고도 남는 거리를 11년간 달린 낡은 승용차로 힘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찾아다녔다. 문재인 정부는 요란한 구호가 새겨진 깃발을 접고, 박제된 이념과 교조 대신 현실을 수용한 이 리얼리스트를 배워야 한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했던 노회찬은 과오를 자책하고 스스로를 정죄(定罪)했다. 가득 고인 눈물의 렌즈 너머 있는 천국에서 사랑했던 사회적 약자들과 삼겹살을 굽고 수다를 떨기 바란다.

고(故) 노회찬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지 15분쯤 지나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무렵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명한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어쩌다 누가 결근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