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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갈등]② '산업용 전기요금' 오르면 기업 경쟁력 상실

Shawn Chase 2018. 7. 9. 22:57

안상희 기자



입력 : 2018.06.27 06:00 | 수정 : 2018.06.27 09:33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원가 상승요인이다.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철강 A사)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의) 장기 계획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국내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화학 B사)

정부가 이달 21일 탈원전 후속 대책으로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 인상 검토의사를 밝힌 데 이어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이달 26일 “가능하면 연말쯤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내 제조사들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마저 오른다면 향후 경영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심야 전기요금 조정에 대해 “에너지 전환과 관계 없이 검토되는 것이며, 에너지 소비구조 왜곡을 개선하고 전력소비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요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갑 사장은 이에 대해 “적자를 견딜만 하다”면서 “정부에 (요금 조정 과정에서) 한전의 전기판매 수익을 중립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력 소비가 적은 시간대에는 할인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6~8월 기준 오전 10시~낮 12시와 오후 1~5시는 ‘최대부하’ 시간대로 분류되며 이때 전기요금은 ㎾h당 114.2~196.6원이다. 반면 오후 11시부터 오전 9시 ‘경부하’ 시간대에는 요금이 ㎾h당 52.8~61.6원으로 피크시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 사용량의 48.1%를 차지하는 경부하 요금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현대제철 홈페이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현대제철 홈페이지

◇ 철강·태양광업계, 대외 경영환경 악재로 '내우외환'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산업용 전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할인폭을 축소할 경우 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은 9494억~4조919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철강업계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태양광업계는 폴리실리콘 가격 상승이라는 악재 속에서 말 그대로 내우외환, 이중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고열·고압 공정 의존도가 높은 철강업계는 비상이다. 특히 현대제철 (48,050원▼ -%), 동국제강 (7,330원▼ -%), 대한제강은 전기로 방식으로 사용하는 전기량이 많다. 현대제철은 지난 한해 전기요금으로만 1조1000억원 가량을 썼다. 현대체절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제조원가의 10%가량을 차지해 산업요금 할인폭이 축소되면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폴리실리콘 생산업체는 생산단가 중 전기요금이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폴리실리콘 기업인 OCI (94,200원▼ -%)군산공장은 지난해 매출 1조원 중 2800억~3000억원가량을 전기요금으로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CI가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일본 도쿠야마 공장 인수한 것도 현지의 값싼 전기요금이 영향을 미쳤다. 말레이시아의 전기요금은 한국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OCI 관계자는 “군산공장에 200억원을 투자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 정부 에너지 절감에 동참했다”면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기대했던 원가절감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폴리실리콘 가격도 올 초 kg당 16~17달러에서 현재 12달러까지 추락한 상황이라 원가 압박은 더 심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수시로 바뀌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때문에 혼란스럽다. 이우현 OCI 사장은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탈원전 정책의 맞고 틀리고를 말할 입장은 아니다”면서 “만약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할 경우 전격 발표하지 말고 장기 계획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사장은 “2011년 폴리실리콘 공장을 처음 지을 당시만 해도 수익성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후 전기요금이 3~4차례에 걸쳐 올랐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OCI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고순도 폴리실리콘을 살펴보고 있다./OCI 제공
전북 군산에 위치한 OCI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고순도 폴리실리콘을 살펴보고 있다./OCI 제공

◇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글로벌 흐름에 역행”

국내 기업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글로벌 흐름과 역행하는 행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실제 산업용 전력판매 단가를 미국은 2015년 3% 낮췄고(2014년 대비), 중국은 2016년 ㎾h당 0.03위안으로 내렸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대만은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7.3% 내린 데 이어 2016년에도 9.5%를 추가로 인하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지만, 기업들은 국가간 전력요금 비교지표인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을 보면 결코 싼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6년 기준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87.1%로 일본(69.3%), 미국(53.6%), 프랑스(55.9%) 독일(43.7%), 영국(62.5%)보다 높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국, 대만 등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리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린다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전기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할텐데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 전기료 인상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개편할 수도

일각에서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현실화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력 과소비 구조를 개선하고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 GDP(국내총생산) 1달러를 늘리는 데 한국은 0.58㎾h의 전력을 썼는데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0.33㎾h)의 1.75배 수준이다. 미국(0.3527㎾h)·영국(0.21㎾h)이 제조업 기반 산업구조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본(0.20㎾h), 독일(0.28㎾h)과 비교해도 높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전력 소비량은 2015년 기준 10만558㎾h로 독일(7015㎾h)·일본(7865㎾h)·프랑스(7043㎾h)보다 높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전기공학)는 “탈원전 정책과 별도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세계적 추세이며 시대적 소명”라며 “요금체계 개선이 에너지전환 현실화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요금체계를 연료와 연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로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며 “기업들도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굳어진 국내 에너지 산업구조에 의존하지 말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의 성공요건’ 보고서에서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에너지 전환이 국가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파악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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