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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일본 의사들이 한국 찾는 까닭

Shawn Chase 2018. 2. 2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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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오피니언

[동서남북] 일본 의사들이 한국 찾는 까닭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 2018/02/2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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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한호성 교수에겐 거의 매일 외국 의사로부터 이메일이 온다. "복강경 간암 수술을 참관하러 가도 되느냐?"는 문의가 많다. 이렇게 해서 찾아온 일본 의사만 80여 명이다. 간암 수술은 대학병원에서 하니, 80여 명은 일본 전역 대학병원에서 거의 다 왔다는 의미다.

일본 복강경 간수술 학회는 창립 후 12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호성 교수를 초청해 특강을 맡겼다. 13번째인 올해 특강도 예정돼 있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며 그를 불러 특강을 듣는다는 것은 그의 수술법을 작정하고 배우겠다는 얘기다. 한 일본 교수는 "한호성 교수의 수술법 덕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우측 간암을 떼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전에는 배를 여는 개복(開腹) 수술을 했다. 복강경 수술은 배에 작은 구멍 3~4개만 뚫고 몸 밖에서 기구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출혈과 후유증이 적고 회복은 빠른 게 매력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 의사들이 일본에 수술 배우러 갔는데, 이제 일본 의사가 한국에 오다니…. 우리 의료계엔 이런 격세지감 분야가 꽤 있다.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팀은 생체 간 이식 수술 시, 간(肝) 제공자의 간을 복강경으로 뗀다. 이미 100건이 넘어 세계 최다다. 그래서 기증자의 수술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일본에선 수년 전 간 기증자가 수술받다 사망한 뒤로 생체 간 이식이 확 줄었다. 이에 일본 외과 의사들이 서울대 수술실을 두드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암 로봇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전립선암·대장암 로봇 수술은 우리가 일본보다 먼저 시작했다. 한국에서 우수한 성적과 논문이 나오자, 일본 비뇨기과 의사들이 국내 로봇 수술실을 줄이어 찾는다. 척추뼈를 자르지 않고 내시경이나 현미경으로 튀어나온 디스크와 협착증을 해결하는 최소 침습 수술도 일본 신경외과 의사들이 배우러 오는 분야다.

'한·일 역전' 분야의 공통점은 새 기술이 등장할 때, 우리가 과감하게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복강경이 처음 나오거나 로봇 수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한국과 일본의 출발 지점이 비슷했던 곳에서, 우리 특유의 혁신성과 부지런함으로 일본을 제친 것이다. 스키는 못 탔는데, 스노보드는 잘 타는 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학·의학 노벨상(賞) 22개를 받은 일본을 단기간에 이길 수 있었겠나. 일본이 새것을 꼼꼼하게 따지고 재보는 동안, 우리가 앞서 나갔다.

한국 교육의 특성상, 창의적인 '퍼스트(first)'는 잘 못해도, 빨리 따라가 앞서는 '베스트(best)'는 잘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기회가 또 왔다. 인공지능(AI), 로봇 의술, 유전체 의학, 줄기세포 등 출발선이 비슷한 것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초과학은 기초대로 다지되, 신기술 개발로 치고 나갈 성장판이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의료계는 전(前)근대적 규제와 어설픈 선진국 흉내로 발목이 잡혀 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분 아래 비식별 정보까지 쓸 수 없게 해 우리나라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의료기기나 진단·처방 AI를 개발할 수 없다.

여전히 병원은 비영리 기관으로서 의료기술 회사를 차릴 수 없어 첨단 기술을 사업화하지 못한다. 줄기세포와 유전체 의학은 엄격한 임상시험 절차와 평가 때문에 더디게 움직인다. 오히려 깐깐한 일본이 '선(先)승인 후(後)평가' 로 치고 나간다. 선진국과 똑같이 해선 앞설 수 없다. 우리가 잘하는 걸 본보기 삼아 4차산업과 의료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키워야 한다. 출발점이 비슷하면 우리가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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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100자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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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규 (rose****)
썩어빠진 한국대학 마인드를 뜯어고쳐야 개탄

2018.02.21 18:57:10 | 신고 | 삭제
11  2
공석근 (b****)
이나라의 의료현재를 전해주셔서 희망의 폐이지로 남겨둡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