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미국이 항상 이스라엘을 편드는 이유

Shawn Chase 2017. 12. 11. 19:38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입력 : 2017.12.11 03:11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 배경엔 유대인 표의 강한 힘 작용했지만
'약속의 땅 회복이 역사의 완성' 종교적 믿음도 현실 정치에 영향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흔들었다. 지난 6일 특유의 손짓과 단호한 어조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며 대사관 이전을 호언했다. 이스라엘의 650만명 유대인 편에 서서 4억 아랍인 그리고 아랍 포함, 15억 무슬림을 순식간에 적으로 돌렸다. 교황을 비롯, 기독교권 유럽 국가 다수의 반대도 거세다. 유엔 안보리도 비판 일색이었다. 우리 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는 외교·안보의 기본을 거스르는 선언이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미국은 늘 이스라엘만 편드는 걸까? 비단 트럼프뿐만 아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관계가 껄끄러웠던 오바마조차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무조건 편드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대략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전략적 가치, 미국 유대인들의 힘 그리고 종교적 배경 등이다.

독재 일색인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유일한 민주주의 동맹이었다. 냉전기 미국이 속내를 터놓을 만한 중동의 친구는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냉전 이후 적대 세력으로 새롭게 부상한 이슬람과의 싸움에서도 정보 자산과 대테러전 노하우를 가진 이스라엘은 미국에 둘도 없는 파트너다.
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최루탄을 발사하는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발생해 이날까지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졌고 1천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AFP 연합뉴스


둘째, 막강한 미국 내 700만 유대인의 힘 때문이다. 이들은 정·재계, 학계, 언론 및 문화 예술계를 망라하며 미국의 핵심 의제를 좌우한다. 외교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와 월트 교수가 도발적인 저작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부분이다. 유대계 로비로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 노선이 지속됐고, 이 때문에 미국의 외교도 왜곡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이번 선언의 배경을 전부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치는 동일했고, 로비도 계속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왜 이 시점에 선언이 이루어졌는지도 설명이 안 된다. 종교적 배경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최근 지지율이 32%까지 내려간 트럼프는 핵심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아야 한다. 특히 취임 당시 자신에게 78%의 압도적 성원을 보냈던 기독교 복음주의권(圈) 지지율이 61%까지 밀린 것은 충격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도가 더 내려가면 위험해진다.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미국 복음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종말론을 믿는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7개의 단계(세대)로 구분되며, 신(神)이 주신 영토를 이스라엘이 전부 회복할 때 마지막 세대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시오니즘(Zionism)을 신봉하게 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소위 '약속의 땅'을 완전히 장악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신의 섭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메시아 교리상 상극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묘하게 교통한다.

복음주의자 다수는 이스라엘을 공동 운명체로 인식한다. 이들은 1967년 전쟁 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드디어 마지막 세대가 시작되었다며 환호했다. 서안과 가자 모두 약속의 땅이므로 정착촌 확대를 지지한다. 이들이 바로 미국 사회의 주류다. 트럼프를 포함해 카터,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등 이전 대통령 다수를 지지했다. 복음주의는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외교정책을 견인하는 종교적·심리적 배경이 된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하는 파격적 모습을 통해 트럼프에게 조금씩 실망하고 있던 복음주의자들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신의 땅 논쟁이 벌어지고, 종말론과 외교정책이 연결되는 모습이 낯설다. 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 이슬람, 복음주의 기독교 등 유일신 종교의 초월적 신념이 예루살렘을 두고 현대 정치와 맞물려 서로 증오하고 있다. 분노한 군중 위로 최루탄가루가 넓게 퍼진 예루살렘의 오늘 풍경은 이 도시 이름의 뜻인 '평화의 도성(都城)'과 대척점에 서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0/20171210015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