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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작가 김희재 첫 소설 '소실점' 영화로 만든다

Shawn Chase 2017. 9. 24. 22:43

탕웨이가 맡아주면 좋으련만...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 시나리오 작가이자 교수 그리고 스토리텔링 기업 대표인 김희재가 첫 소설 <소실점>을 출간했다. 사랑을 주제로 한 파격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실미도> <공공의 적2> <한반도> 등 선이 굵은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집필해온 작가 김희재가 지난 3월 첫 소설 <소실점>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 최선우가 교외의 외딴 집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용의자로 검거된 미술교사 서인하는 최선우가 세상에 알려진 고상한 이미지와는 달리 자신과 SM 취향의 밀회를 즐기는 변태적 성향의 여자였다고 주장한다.
 
기괴하게 몸이 뒤틀린 채 목이 부러져 죽어가는 여주인공과 그의 사체에 남아 있는 강간의 흔적을 그린 끔찍한 프롤로그로 작품을 시작해놓고, 작가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 소설을 끌고 나간다.
 
“달콤한 멜로는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까지 줄 수 있으면 진짜 사랑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진부한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에필로그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으니 말이다.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카메라 워크를 따라가는 듯한 실감나는 묘사도 이 책을 한층 더 섹시하게 만든다. 역시나 이미 영화화하기로 결정돼 있단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해서 가상캐스팅을 해봤다. 개인적으로 용의자 서인하는 강동원, 선우의 남편 박무현은 유지태가 생각나더라. 캐스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인하는 <국화꽃 향기>의 남자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10년 전의 박해일 씨 같은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극단적인 사이코처럼 보여도 진짜 같고, 너무 순진한 아티스트처럼 보여도 진짜 같아 보여야 하는 인물이다. 강동원 씨는 정말 예쁜 얼굴이지 않나. 내 머릿속 서인하는 예쁜 사람이 아니어서 생각을 못 해봤다. 유지태 씨는 마음속에 여러 겹이 있는 캐릭터를 많이 했다. 박무현은 그런 속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복안이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복안 같은 걸 만들 이유가 없었으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어붙이는 힘도 있고 행동하면 다 이루어지는, 굉장히 스트레이트한 사람이다. 제작사와 잠깐 얘기해봤는데 남자 캐릭터는 여러 배우를 물망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선우가 문제다.
 
정말 그렇겠다. 완벽하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우아한데 섹시함까지 갖춘 여자다. 누가 선우 역을 맡을 수 있겠나.(웃음) 사실 탕웨이 씨를 생각해봤다. 한국말을 굉장히 잘한다면 맡아달라고 하고 싶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매력적인 데다가 다들 섹시한 지점을 갖추고 있다. 전에 에세이집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를 내기도 했는데, 섹시하지 않은 사람은 용납을 못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모든 사람이 섹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섹시할 수 있는 면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보석 같은 점이 있는데 그것을 발휘했을 때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 곁에 살고 있느냐, 조롱당하고 야유받는 환경에 살고 있느냐의 차이다. 그런 면을 잘 바라봐주고 집중적으로 드러나게 해주면 누구나 섹시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란 다른 일에는 무능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지, 작품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회사도 운영하는 모습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소실점>을 다 읽고 나니 알겠더라. 소설 속 인물들이 영리하고 예민하다. 작품 자체도 마찬가지다. 작가를 닮아 그런 걸까. 나는 전반적으로 둔한 사람이다. 지금 입은 옷도 어딘가 터져 있을지도 모른다.(웃음) 오늘은 인터뷰 사진도 찍어야 하고 저녁에 독자들을 만나는 행사가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원래는 화장품도 아무거나 바르고 브랜드와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딸이 어떻게 눈썹 좌우도 못 맞추고 밖에 나가느냐고 한다.(웃음) 대신 예민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사람의 감정에 대해 그렇다. 어떤 자리에 20명이 있든 30명이 있든 누가 소외되고 있다거나 누군가의 기분이 상했다고 하면 그걸 굉장히 빨리 안다.
 
소설에서 검사인 주희는 모든 동선에서 1분, 2분, 5분씩을 절약해 30분을 만들어내고 그 시간에 자료를 더 많이 보든 잠이라도 더 자든 하는 사람이다. 이것 또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맞다. 나는 동선 효율화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간이다. 사무실에서 화장실 갈 때도 나가면서 텀블러를 들고 가서 정수기 옆에 두는 식으로 동선을 최소화하고, 어디를 가면 그 지역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쭉 정리해서 일정을 정확하게 잡고 움직인다. 그래야 여러 가지일을 실수 없이 할 수 있다. 주희의 그 모습은 내 모습이 맞다.
 
어릴 때 만화책을 굉장히 많이 봤다고 들었다. 모든 독자가 창작자가 되는 건 아닌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언제쯤 알아차렸나. 어릴 때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니가 둘 있는데 두 언니 모두 워낙 똑똑했다. 특히 둘째 언니는 아이큐가 190이 넘는 살벌한 천재였다. 3살 반 때부터 곱셈을 할 줄 알았으니 부모님께서 5살에 초등학교를 보냈다. 모든 걸 다 잘했는데 화장실을 못 가서 결국 한 학기만 다니고 8살에 학교를 다시 갔다고 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부모님은 너무 어릴 때부터 아는 게 많은 것은 별로라고 생각하셨다. 게다가 나는 몸이 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셨다. “그냥 이대로 있어라” “잘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안 가르쳐주면 더 배우고 싶지 않나. 옆집 사는 친구는 한글을 아는데 나는 몰라서 화가 났다. 이름이 수영이었다. 한이 맺혀서 지금도 안 잊어버린다.(웃음)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고 하더라. 실은 친구가 아니라 나보다 2살 언니였던 거다. 그때부터 학교에 보내달라고 한 달을 졸랐다. 6살은 학교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부당하다고, 나도 잘할 수 있다고 엄청 어필했다. 결국 4월쯤 학교에 갔다. 1학년 5반, 이금자 선생님께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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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선생님 성함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인자하고 자애로우신 선생님이었다. 수업시간에 진행형을 가르쳐주시면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는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냐고 선생님께서 물으셨는데 내가 “나무에서는 잎이 떨어졌는데 땅에 아직 닿지 않은 상태”라고 답했단다. 선생님이 너무 인상 깊었는지 엄마한테 그 말을 전달하셨다. 전 과목 100점에 학생회장이 기본이던 언니들 덕에 나는 뭘 해도 부모님께서 감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이야기만큼은 엄마한테 가닿았었나 보다. 그때부터 내가 무언가 쓰는 걸 유심히 보시더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적은 걸 큰언니네 학교의 문학적 조예가 깊으신 선생님께 들고 가셨다. 그런데 그분이 “이 아이가 사는 동안 단 한 편의 단편을 쓰지 못하더라도 이미 작가다”라고 하셨단다.
 
정말로 작가가 됐다. 그렇다고 이후에 어떤 교육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저 엄마가 책을 많이 읽으셨기 때문에 집에 책이 많았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 동안은 무용을 했다. 이후에는 연극연출, 영화연출로 전공을 바꿨다. 그사이 가세도 기울고 병에 걸리기도 하고 생각지 못하던 여러 사건과 경로를 거쳤다. 그리고 만화 작가를 거쳐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큰언니네 선생님께서 해주셨다는 저 이야기도 내가 본격적인 작가가 됐을 때 엄마가 얘기해주신 거지 그전엔 몰랐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예술성을 취할 것인지, 대중성을 취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강의하는 걸 들었다. 본인은 대중성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어떤 계기였나. 나는 동시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죽은 다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것보다 나와 함께 이 사회에서 같은 호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지금 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물론 외로움을 딛고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뤄나가는 아티스트들을 존경한다. 그런데 나는 산업적으로 굉장히 발달해 있는 영상 쪽에서 오래 일해왔다. 작품 한 편 만드는 데 20억~30억이 들고, 200억도 든다. 평생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큰돈을 내 이야기 한 편 믿고 투자하는 것이기에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게다가 나 자신이 예술적으로 너무나 뛰어나거나 그 누가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정도의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유창조’도 강조한 바 있다. 블록을 더 많이 가진 아이가 더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비유도 했는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인풋을 취하는 편인가. 정말 다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회의를 하거나 학생들이랑 얘기를 해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문화에 대해 여전히 내가 제일 많이 안다. 게임 분야만 제외하고.(웃음) 심지어는 물리학이나 의학에도 관심이 있고 환경 분야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한다. 잡스럽다. 요즘은 정보에 접근하기가 너무 좋지 않나. 자기가 궁금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래서 바닥을 다 긁어냈다 싶으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을 3번 갔다. 강제적으로라도 이론적인 부분을 읽게 되고 공부하게 된다. 읽고 듣고 배우고 쓰는 걸 계속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을 믿기보다 노력을 믿는 편이겠다. 상상력이나 공감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런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긴 어렵다. 물론 그런 사람은 글쓰기에 아예 관심도 없다.(웃음) 관심이 재능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관심만 있다면 그 이후에는 재능보다 노력으로 채워지는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설을 쓸 생각인가. 지금 이미 쓰고 있다.(웃음) 2~3년 전에 준비하던 드라마가 있는데 진행에 속도가 붙을 것 같아서 2~4분기에는 다시 극본을 써야 할 것 같지만, 올해 안에 두 번째 소설도 나올 거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내가 스토리텔링 회사인 ‘올댓스토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 그리고 사업을 발전시켜나가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체로 많은 작가들이 여러 매체로의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닉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16부작 미니시리즈와 2시간짜리 영화, 뮤지컬 극본, 애니메이션 등 매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언어의 스킬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최초의 이야기가 소멸돼버리지 않도록 그 이야기를 매니지먼트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랑받게 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매니지먼트를 넘어 자체 플랫폼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캐비넷’이라는 이름의 출판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작품이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써 내놓은 작품이 <소실점>이다. 캐비넷을 통해 많은 작가 지망생들과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니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까지 선생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있다.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왔을 거라 생각되는데 딸과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 딸이 몇 살인가. 26살이다. 대화가 통하는 친구다.
 
작가의 말에서 딸에 대해 “가장 두려운 독자이며, 숨넘어갈 만큼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나누는 고마운 존재”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친구처럼 지내는 비결이 무엇인가.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관계다. 그 친구와의 관계를 잘 형성하기 위해 긴 세월을 노력했다. 한 대도 때리지 않고 키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도 생떼를 부리지 말아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게 하려면 엄마가 살벌하게 약속을 지켜서 신뢰할 만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자연재해가 나도 지키려 했다. 정말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너 이렇게 울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협박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이 친구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나에게 부당한 짜증을 냈다. 그래서 타고 가던 차에서 내려 근처 카페에 갔다. 네가 짜증 난 상황하고 엄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엄마한테 계속해서 부당한 짜증을 낸다. 이런 습관은 주변 사람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기 때문에 엄마에게는 그 습관을 고쳐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여러 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된다. 이제는 너를 때려서 고쳐줘야 하는데 한번 매로 대화하기 시작하면 그게 쉽기 때문에 앞으로 나는 때리는 사람이 되고 너는 맞는 사람이 될 거다. 엄마가 말을 뱉으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10년 동안 봐오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니 이 친구가 알겠다며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 잘 끝이 났는데 그때가 한 번의 고비였다. 10살이었지만 성숙한 사람으로 대하는 만큼 성숙할 수 있는 나이였던 거다. 무엇이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엄마가 아무리 모든 걸 알고 싶어 해도 아이들이 속이겠다고 마음먹으면 부모는 100% 속는다. 감추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훨씬 좋다. 중학교 2학년 때 딸이 유학을 가 긴 시간을 떨어져 살았지만 그 친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누구와 교제를 하건 나와 전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단하다. 이런 교육법은 혹시 어머니로부터 배운 건가. 100% 어머니께 배웠다. 만약 자식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을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정말 쉽지 않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