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남녀심리

졸혼이 쿨하다고?

Shawn Chase 2017. 8. 27. 13:58

중앙선데이] 입력 2017.08.27 00:32 수정 2017.08.27 11:59 | 546호 24면

                                        
新부부의사가 다시 쓰는 性칼럼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불편하지도 않고 좋은데, 뭘 얽매여 살아?”
 
근래 ‘결혼을 졸업한다’는 ‘졸혼’이 자주 거론돼 왔다. 이혼과 달리 법적 혼인은 유지하되 서로 사생활에 간섭 않고 자유롭게 사는 개념이란다.
 
졸혼이 이슈가 된 것은 유명 탤런트가 자신이 아내와 졸혼을 했노라고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면서다. 사실 이 개념은 ‘졸혼시대’라는 일본책에서 유래됐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아시아문화권인 데다 남성중심의 오랜 가부장적 문화가 급격한 서구화·산업화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인구고령화·일인가구·출산율저하 등 비슷한 여건이 공통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졸혼이 주목받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때문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다면 같이 살고 싶지 따로 살고 싶을 리 없다. 게다가 최근 사회문제가 된 황혼이혼에 비해 졸혼은 그럴듯한 대안같이 보인다. 함께 살긴 싫지만, 막상 이혼하자니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특히 자식에게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상 이혼보다는 다른 형식의 해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전문가이자 부부치료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졸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게 우려스럽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졸혼은 그 부부의 친밀감 부족이나 어색함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불행하고 불만스러운 현재의 결혼생활에 대한 회피일 가능성 크다.
 
졸혼은 달리 표현하자면 합의에 의한 별거다. 여기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선행해야 한다. 각자의 이성교제 허용 여부나 경제적인 분담 등에 대한 합의가 모호하다면 졸혼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낳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남녀·부부 사이에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더욱 악화시킨다. 멀어진 부부 사이 틈에는 다른 존재가 끼어들고 그런 상황은 애정문제, 생계문제, 질병과 간병문제, 자식관계, 재산문제 등에 있어 여러모로 위험의 소지가 있다. 이를 미리 충분히 준비하고 합의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그런 원만한 합의를 이룰 정도라면 졸혼이 필요없을 것이다.
 
필자가 늘 강조해 왔듯, 부부 사이의 섹스리스, 별거, 각방 등은 절대 위험 신호다. 졸혼도 일반적인 시각에선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같은 위험선상에 있다. 결혼생활은 타협으로 시작해서 타협으로 끝난다. 오랜 기간 동안 타협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이 들어서도 서로 타협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그 세월만큼의 충분한 친밀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불행한 부부들의 쿨한 척 보이는 대안이 사실은 울적한 졸혼일 수 있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