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가난한 농부의 밭에 '수퍼 씨앗'을 뿌려라, 재앙 벗어나려면

Shawn Chase 2015. 9. 13. 15:05
입력 : 2015.09.11 15:26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인도 동북부에 있는 비하르주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이곳은 갠지스강을 접하고 있어 비옥한 평야 지역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쌀, 옥수수, 밀 등을 재배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들에게 농사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밥벌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름철 우기(雨期)에 접어들면 강이 범람해 농장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매년 이런 상황이 반복됐지만,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에 잠긴 농장에서 작물이 썩어 갈 때면, 농민들은 허드렛일이라도 하려고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 떠나기 전보다 더 가난해진 채 농장으로 돌아왔다.

가난한 나라 농부들의 삶은 항상 위태롭다. 그들에겐 물을 가둬둘 댐도, 홍수를 이겨낼 수 있는 씨앗도, 땅을 비옥하게 만들 비료도 없다. 농사를 망쳤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가뭄 또는 홍수로 빈곤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이런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기후변화'다. '지구온난화'는 날씨를 더욱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어떤 날이면 비가 미친 듯이 왔고, 또 다른 날이면 가뭄이 지속됐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던 날도 있었다. 사람들은 죽어갔고, 벌레들만 나날이 번식했다.

물론 부유한 나라 농민이라고 기후변화에 아무런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댐을 지어주고 저수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정부가 있다. 하다못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다 해도 보험 회사에서 일부를 보상해준다. 가난한 나라 농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것이 가난한 나라의 농민에게서만 끝날까. 길게 본다면, 그 고통은 전 세계 인류에게 확산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식량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픽
그래픽=박상훈 기자
식량 문제 민간단체인 '글로벌 하비스트 이니셔티브'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구가 오는 2050년이면 최소 90억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럴 경우 전 세계 식량 수요는 최대 60% 증가한다.

기후변화로 농사는 어려워지는데 인구가 계속 증가한다면 그 끝은 곧 '기아(饑餓) 상태'다. 인류는 늘 기아와 싸워왔고, 최근 50년간 그 싸움에서 어느 정도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싸움에서 다시 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행동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고, 친(親)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 오르고 있는 온도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내일 당장 전 세계 정상이 모여 '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찾는다 해도, 기존 화석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인류의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기후변화에 무방비로 방치된 가난한 나라 농부들을 돕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홍수와 가뭄을 막을 수 있는 관개시설, 기후변화에도 잘 버틸 수 있는 씨앗,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 등이다. 이것만 주어져도 이들은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전 세계인을 위한 식량을 생산할 것이다.

이들이 부유해지면 이들의 식탁이 풍요로워지고, 농장은 커지며, 자녀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한 가족의 풍요가 모이면 전 세계는 조금씩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아내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부분이다. 우리가 운영하는 재단과 뜻을 같이하는 연구 기관은 기후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종자 개량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 종자들은 조금씩 농민들의 삶을 바꿔놨다.

최근 비하르주를 방문했을 때 발전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개발한 '스쿠버(scuba)'라는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스쿠버는 물 밑에서도 2주간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외에도 가뭄, 열, 추위, 염분 오염 등 다른 위험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품종들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도 있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건 인공위성 기술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인공위성 사진들을 이용해 아주 세밀한 토질 지도를 만든다. 그리고 이 지도들은 그들에게 어떤 땅에서 어떤 품종을 재배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준다.

이렇게 좋은 씨앗과 새로운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농부들이 활용할 수 없다면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영리 단체인 '원 에이커 기금'은 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주고 신기술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농부 20만명이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원 에이커 기금은 지원 대상을 2020년까지 100만명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초 나와 아내는 연례 서신을 통해 앞으로 15년 안에 아프리카 국민들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어느 정도 허풍이라는 것은 안다. 기후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절실한 나의 바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전 세계는 퍼즐과도 같다. 한 조각이라도 자리를 벗어나면, 그들의 삶 전체가 부서질 수 있다.

나는 가난한 농부들의 삶을 도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 농부들도 자신들의 삶을 극복할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전 세계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도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