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에 가치를 두는 현대인이 늘면서 내가 꿈꾸던 집을 직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택을 단순한 거주가 아닌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삶에 꼭 맞는 집을 찾고 있다면 '주택의 재발견'이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입력 : 2015.09.11 15:06
성북동 맑은 세상 이야기
결혼 2년차인 서동준(31)·김희경(30) 부부는 서씨의 어머니 이아녜스(56)씨와 한 집에 산다. 집 크기는 연면적 34평(115.38㎡) 정도다. 아파트로 환산하면 전용 84㎡에 해당하는 크기다. 하지만 두 가족의 생활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현관문도 따로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택가에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매입했다.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작은 주택이다. 집 앞으론 자동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골목길이 나있다. 집 뒤로는 주택가로 오르는 언덕길이 있다. 바로 옆집, 뒷집과도 가깝게 붙어있다.
원래 3가구가 살던 주택을 매입해 젊은 부부와 시어머니가 함께, 또 따로 사는 집으로 탈바꿈했다. 공사비는 건축과 가구, 인테리어 컨설팅 비용을 합해 1억6000만원 정도 들었다. 주택 매입비는 공개하지 않았다. 인근 주택가 시세는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로변에 나있는 부지는 평당 4000~5000만원에 거래되는 곳도 있다. 한 골목만 안으로 들어오면 평당 2500만원으로 낮아진다. 두 골목 더 들어가면 평당 1800~2000만원이다. 언덕배기에 있는 집들은 부지가 고른지, 경사가 진 곳인지에 따라 또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이 집의 대지 면적은 13.4평(44.28㎡)이다. 1층(12.5평)은 사무실로 개조해 어머니 이씨가 쓴다. 어머니는 2층(11.5평)에 산다. 3층에 사는 서씨 부부의 집은 10.8평 정도다.
애초 이들은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구조까지 바꿀 계획으로 주택을 매입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혔다. 서씨 가족이 주택을 매입한 성북동이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어있어 건축법상 다양한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래 있던 다가구 주택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되, 좁은 공간을 최대한 넓게 쓸 수 있게 개·보수(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외관보다 좁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서씨의 형인 서동혁 영상감독이 공간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를 섭외했다.
1층은 서씨의 어머니인 이씨의 비누 공방 겸 사무실로 쓰고 있다. 이씨는 수년전부터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이번에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이웃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게 카페처럼 활짝 문을 열어제낄 수 있는 공방을 만들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번씩 들여다본다.
원래 주택에 달려있던 계단도 그대로 살렸다.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따라 오르면 현관문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달려있다.
왼쪽 문을 열면 2층 어머니 이씨의 집이 나온다. 채광이 좋은 유리창 바로 밑에 성경을 즐겨 읽는 이씨의 책상을 뒀다. 그런데 책상 모양이 네모 반듯하지 않고 사다리꼴 모양이다.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가구도 집의 모양에 맞춰 주문 제작했기 때문이다.
주방의 환풍기(후드), 냉장고, 김치냉장고, 그릇 수납장 등 당연히 보여야 할 것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벽인지 냉장고인지 분간할 수 없게 인테리어를 했다. 덕분에 좁은 주방인데도 탁 트여 보인다. 이씨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여기저기 숨어있는 수납 공간에서 감동을 받는다”며 “겉으로 보기에 예쁘면서도 살기에 편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침실은 바깥 벽이 옆집과 가까워 상대적으로 채광이 부족하다. 그래서 방의 천장 모서리를 따라 길다랗게 ‘ㅣ’자 모양의 조명을 설치했다. 조명 길이만 3m가 넘는다. 설계를 맡은 아이디어카우치 류태현 소장은 “천장 한가운데 조명을 덩그러니 두면 오히려 방이 좁아보일 수 있다”며 “길다란 조명을 이용해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꾸몄다”고 말했다.
침실엔 문을 옆으로 밀고 닫는 붙박이장을 달았다.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열면 자동으로 옷장 안에 조명이 들어온다. 욕실에는 작은 창문이 나 있어 한 겨울에는 열 손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명을 켜면 뜨겁게 열을 발산하는 열 전구를 욕실 천장에 달았다. 2~3초간 열 전구를 틀었을 뿐인데도 정수리 부분이 따뜻해져 사우나에 온 느낌을 받는다.
2층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현관문을 열면 이번엔 3층 서씨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서씨 부부와 어머니 이씨가 같은 집에 살면서도 생활 공간이 겹치지 않게 현관문도 따로 만든 것이다. 서씨와 김씨 부부는 2살 된 아기 연우를 키우고 있다. 아랫집에 어머니가 거주하니 아이가 나중에 커서 뛰어다녀도 층간 소음에 대한 불만이 나올 걱정이 없다.
서씨네 집은 거실이 하이라이트다. 거실엔 나무로 된 수납형 벤치를 깔아, 거실의 높이가 다르다. 거실을 빙 둘러싼 수납장이 벤치 겸 마루 역할을 한다. 마치 한옥집 대청마루에 앉아 높이가 더 낮은 마당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거실 한쪽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오를 수 있는 계단도 있다. 이 역시 원래 있던 다락방행 계단이다. 3층 지붕을 높여 다락 겸 옥상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다락에는 업무상 야간 근무가 잦아 종종 낮과 밤이 바뀌는 남편 서씨가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서재를 뒀다. 옥상에는 세탁기를 둬 햇빛 아래 빨래를 건조할 수 있게 했다. 나중에는 옥상도 앉아서 책을 읽거나 누워 낮잠을 잘 수 있는 쉼터로 꾸밀 계획이다.
서씨는 “집 자체는 널찍하지 않지만 획일적인 아파트에 비해 색다른 공간을 꾸며가는 재미가 있다”며 “혼자 사시는 어머니와 가까이 있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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