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키워놓으면 나가네”… 반도체 中企의 눈물

Shawn Chase 2017. 7. 21. 02:33

앙지혜기자


입력 : 2017.07.20 19:07

사상 최대 호황 속 구인난 허덕
中企 입사자 39%가 1년내 퇴사
호시탐탐 대기업 갈 기회만 노려
국내 반도체 기업 1100여개
필요한 연구인력 15%만 충원
반도체 글로벌 1위 유지하려면


중소업체들 경쟁력 확보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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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1시 경기도 판교에 있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9층 세미나실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반도체 산업의 이해' 라는 특별 강의 행사가 열렸다. 반도체산업협회가 800여 개 중소 반도체업체를 대신해 취업 희망자를 모으기 위해 연 행사다. 하지만 사전 참가 신청자 100여 명 가운데 이날 실제로 참석한 취업희망자는 40여 명에 그쳤다. 50평이 넘는 넓은 강당에는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강연자로 나선 오찬권 하이엔드테크놀로지 대표는 "주로 중견기업들이 주도하는 반도체 장비 시장은 매년 9~10%씩 늘어나는 유망 분야"라며 "세계 1등을 노리는 중소 반도체업체로 오면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1000곳이 넘는 중소 반도체 기업으로 넓혀달라"고 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은 대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김모(23·H대 전자공학과)군은 "반도체 산업이 정말 유망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입사는 '신의 직장'이 될 대기업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력난 중소 반도체업체… "필요한 연구 인력의 15%밖에 충원 못 해"
한국 반도체 업계는 사상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전문 인력 구인난과 높은 이직률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1100여 개 기업이 14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두 대기업(계열사 포함)의 고용이 8만7000명으로 절반 이상이다. 한 중소 반도체업체 대표는 "반도체 분야는 석·박사 등 고급 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대부분 중소기업은 필요한 연구인력의 15%밖에 충원하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중소기업 입사자 중 39%가 1년 내 퇴사했다.

구직자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이 주요 원인이다. 매출 1조원대의 반도체 중견기업 E사는 급여를 대기업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회사 인사부장은 "직원 180명 중 석·박사 출신이 90명"이라며 "우수한 인력을 붙잡기 위해 대졸 초임이 3500만~3900만원, 과장급이 6000만원대이며 여기에 400%의 성과급을 거의 매년 준다"고 말했다.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S사의 인사팀장은 "대기업 대비 급여를 80%로 맞춰주고 성과 인센티브 200%에 해외연수 기회를 주지만, 직원들이 호시탐탐 대기업 갈 기회만 노린다"며 "잘나가는 반도체 업계도 중소기업이라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며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4~5년 차 과장급 연구직 직원 서너 명이 대기업으로 옮겨가면서 반도체 설계 연구 프로젝트가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 반도체 장비업체 A사의 관계자는 "아무리 석·박사 고급 인력이라도 최소 6개월은 현장 실무를 가르쳐야 하는데, 다 가르치고 나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키워놓으면 나가는' 경우가 하도 많아서 고참 엔지니어들이 신입은 아예 안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반도체산업 직무 특강·컨설팅'에서 대학생들이 특강을 듣고 있다. 이날 행사는 중소 반도체 기업들의 일자리를 소개하기 위해 열렸지만 40여명 참석에 그쳤다. /김연정 객원기자 ([GIJA] 조재희 기자 joyjay@chosun.com[/GIJA])



◇대·중소기업 간 인력 편중 현상 막아야
전문가들은 "중소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은 국내 석 박사급 고급 인력의 공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우수 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모든 대학에서 한 해 배출하는 전자공학·화학공학·재료공학·금속공학·물리학과의 석·박사를 통틀어도 5000여명에 불과하다. 3~4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양대 대기업들이 반도체 수퍼 호황에 따른 투자 확대로 우수 인력을 더 많이 뽑는 만큼, 중소 반도체업체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도 글로벌 1위를 유지하려면 반도체 설계나 장비 분야를 담당하는 1000여 곳의 중소·중견 반도체 업체의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장비업계는 미국 AMAT·램리서치·KLA텐코와 일본의 도쿄일렉트론·히타치, 네덜란드의 ASML 등 해외 업체 10여 곳이 독점 기술을 바탕으로 전체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는 미국·유럽·일본 업체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장비와 설계 분야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소기업들의 취약한 기술력과 인력 부족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인력이 대기업에 편중돼 대·중소 반도체 기업 간 불균형이 심해지면 10~20년 뒤에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0/2017072003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