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6.27. 03:02 수정 2017.06.27. 03:44
서울 석관코오롱아파트 79세 주민, 경비원들에게 에어컨 5대 기부 사연은..
[동아일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웃는 모습도 닮았다. 사별한 아내를 기리며 경비원 초소마다 에어컨 설치비를 기부한 김윤중 씨(가운데)가 이남의 경비원, 김희영 주민회장, 이영자 통장, 박종식 관리소장, 이용현 경비원(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과 함께 놀이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인터폰이 자꾸 울렸다. “형님, 뭐해요. 왜 안 나와요?” 경비원 ‘동생들’이 목청을 높였다. 아내를 떠나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초였다. 김윤중 씨(79)의 아내는 치매를 앓다 4월 27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괜찮을 것 같았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니 그제야 허전함이 밀려왔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 일주일 넘게 칩거했다. 그러자 경비원 동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폰을 눌러대고 집으로 찾아왔다. “바람이라도 쐬자”며 인천 앞바다에 끌고 가다시피 데려가 함께 걸었다. “새로 생긴 ‘서울로7017’ 좋다는데 한번 가자”, “청계천 보러 가자”며 김 씨를 ‘귀찮게’ 했다. 그렇게 힘든 시기는 조금씩 지나갔다.
주민 김 씨와 경비원들의 끈끈한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김 씨는 단독주택에서 살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석관코오롱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같은 해 아내는 입원했다. 언제나 젊을 것 같던 아내는 당뇨 판정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경색이 왔다. 잘 웃던 아내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공격적으로 변했다. 지인이 와도 처음 본 사람처럼 밀쳐내고 발로 찼다. 오직 남편만 알아봤다.
젊을 때 건설회사를 다니기도 했던 김 씨는 2010년 아내의 병세가 악화되자 하던 일도 그만뒀다. 죽을 쒀서 아침을 먹이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아내의 기저귀를 갈았다. 아내는 오전 1시 무렵만 되면 소리치며 울기도 했다. 김 씨는 ‘아파트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항의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괜한 걱정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6개동 453가구가 놀이터를 중심으로 ‘ㅁ’자로 마주 보고 있다. 주민들끼리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주차장과 놀이터를 한 바퀴 돌고 있자면 아주머니들이 다가와 요구르트나 수박을 주고 갔다. 경비원 동생들은 김 씨를 대신해 휠체어를 밀면서 단지 인근을 함께 산책할 때가 많았다. 적게는 7, 8세에서 많게는 20세가량 ‘어린’ 경비원들은 김 씨를 형처럼 대했다. 아내의 빈소에도 이들 경비원 6명은 각자 근무를 끝내고 차례대로 찾아왔다. 박종식 아파트 관리소장도 3일장 내내 곁을 지켜줬다.
6월에 접어들자 김 씨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 폭염과 열대야로 작은 상자 같은 초소에서 고생하던 동생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관리사무소를 찾아 초소 5군데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도록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관리사무소는 김 씨의 돈으로 이달 중순 초소 모두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동생들은 처음에 누가 달아줬는지 몰랐다고 했다.
김 씨의 ‘깜짝 선물’ 이야기를 듣고 김희영 주민회장(62)은 주민회의를 열어 단지 내 환경미화원 휴게소에도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다. 전기료가 더 나오면 관리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긴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경비원 6명, 환경미화원 5명이 우리 아파트를 위해 애쓰시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찬성했다. 회의에서는 “계단의 미끄럼 방지턱이 금속인 데다 골이 네댓 개씩 있어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기 힘들다”며 ‘힘들지 않은 소재로 교체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 주민회장은 “우리 아파트가 ‘동행(同幸)’ 아파트여서 그렇다”며 웃었다.
이 아파트의 용역계약서에는 ‘갑’과 ‘을’을 쓰지 않는다. 대신 ‘동(同)’과 ‘행(幸)’으로 쓴다. 더불어 행복하자는 뜻이다. 지난해에는 성북구에 ‘동행 활성화 및 확산에 관한 조례’도 생겼다. 성북구에 있는 공동주택 114개 단지 중 57개에서 동행계약서 312장이 작성됐다. 문서 작성법이 달라진 것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생겼다.
“김윤중 씨 덕분에 우리가 행복해졌다”는 주민들의 덕담에 김 씨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아내가 기뻐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게 정말 신문에 나갈 만한 이야기인가요?”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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