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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뒤 버려질지 알면서도.. 중국 가는 반도체맨들, 왜?

Shawn Chase 2017. 6. 6. 21:18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6. 17:22



퇴직후 일할 곳이 없다.. 반도체업계 재취업 힘들어 기업들 퇴직자 혜택 늘렸지만 중국에 맞서기에는 역부족


'반도체의 달인'으로 불린 A씨가 국내 인재를 중국에 소개해 '반도체 굴기'를 도울 동안 우리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인력 유출 비상'이라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지만 대책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만 거대한 대륙(중국)에 맞서 이기기 힘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반도체 업계와 학계는 새 정부에 반도체 전문가들이 퇴직 이후에도 재취업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돼야 A씨 같은 사례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현황 파악조차 2년 전 버전, 손놓은 정부

6일 파이낸셜뉴스의 취재 결과 정부 부처는 반도체 인력 유출과 관련해 2년 전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파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매달 산업 트렌드가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낸 '2015년 국내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를 참고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반도체 산업이 아닌 전체 이공계 석박사 현황이어서 반도체 인력 유출의 정확한 현실을 알기 힘든 수준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이공계 인력 유출입은 3년 단위로 조사하고 있다"면서 "산업 현장의 인력 통계가 아니며, 미국에서 대학 석박사 인력 현황을 추정한 것인데 이를 통해 국내 상황을 추정하고 있다. 흐름을 보는 정도"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출 현황은 국가정보원과 기업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사안인데다 할 수 있는 대책도 딱히 없다"고 말했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 산업의 인력 유출은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해다. 인재 1명이 반도체 레시피를 중국에 건네기만 해도 현재 5년 정도인 양국의 기술격차가 단숨에 좁혀지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국정원이 중심이 돼 비공개 원칙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국정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핵심 인재 명단을 받아 이들을 중심으로 집중관리 중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를 제한할 대책이 없어 여전히 모니터링에 그치고 있다.

■기업들 "우리 인재는 우리가 지킨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스스로 외양간을 손봤다. 전직 금지 2년 제한 등의 강제 항목은 국가를 넘어가면 무용지물이다. 기업들은 인재들을 위한 헤택을 늘려 만족도를 높여주는 쪽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전담팀(TF)을 만들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임원 승진 누락자들을 임원급인 '마스터'에 임명하고 보직을 내줬다. 핵심 인력에게는 정해진 성과급 외에도 인센티브를 두둑히 챙겨줬다. 때로는 연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협력사와 연구원, 대학으로 가는 인력에는 정보보호서약을 문제 삼지 않았다. 중국에 가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내부적으로는 특별 인재들에게 보상과 교육의 기회를 늘리고 임원들에게는 인력관리의 역할을 부여해 책임감을 강하게 부여했다.

그럼에도 인력 유출을 막기란 쉽지 않다. 국내 한 헤드헌터는 "중국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재라고 파악되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 보니 중국이 원하는 인재를 매칭해주는 게 어렵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요즘에는 알려진 대로 '단물만 빼먹고 2~3년 뒤에 버려진다'는 것까지 감안하면서 중국을 향하는 분들이 적잖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 더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재취업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애국심에 호소해 가지말라고 붙잡는 것은 옛날식인 데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공감대가 크다. 국내 반도체 기술자인 A씨가 퇴직 이후 한국이 아닌 중국 회사를 돕게 된 것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재취업이 힘든 우리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탓이란 지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국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창업이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나서 조성해줘야 한다"며 "지난 3년 동안은 어떻게 하면 인재들의 중국행을 방해할 수 있을까, 불이익을 줄까 등을 고민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보다 국내 환경을 개선해서 이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쪽으로 힘써야 한다"면서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중요하다. 반도체는 장비.부품.소재.설계 산업의 환경이 각각 다른데 '반도체 산업'으로 획일적으로 묶는 순간 이미 지원은 실패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달리해 지원한 것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직 후 3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돼도 심각한 인력 유출은 피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중휘 인천대 교수는 "반도체는 몇 년만 지나면 옛날 기술이 돼버린다"며 "설령 퇴직 후 3년 뒤에 중국에 기술이 넘어간다고 해도 일정한 기술격차는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권승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