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7.05.10 03:14 수정 2017.05.10 11:02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삼성 반도체도 죽을 뻔한 때가 있었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삼성 반도체도 죽을 뻔한 때가 있었다
단군 이래 반도체가 최대의 황금알을 낳고 있다. 삼성전자는 24년 만에 인텔을 제치고 올해 반도체 1위 기업에 등극할 모양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예사롭지 않지만 반도체 수퍼호황의 전망은 여전히 밝다. 시장조사 기관인 IC인사이츠와 가트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외에도 신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며 “특히 클라우드(인터넷 저장공간 대여)와 자율주행차는 반도체를 빨아들이는 새로운 블랙홀”이라고 했다. 반도체 황금시대다.
요즘 세계 시가총액은 애플-알파벳(구글 모기업)-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순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독무대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클라우드가 새로운 핵심 사업이다. 빅 데이터 시대를 맞아 이들이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50% 이상 늘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 특수도 폭발 중이다. 자율주행차는 주행 중 데이터 처리를 위해 고성능컴퓨터 한 대씩을 장착한 것이나 다름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반도체도 한때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조선일보 안병훈 전 부사장의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를 보다가 30여 년 전 사진 한 장에 시선이 꽂혔다. 그 밑에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을 신라호텔로 초청, 삼성이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에 관해 설명했다. 이 회장과 악수를 나누는 필자. 가운데는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과 이건희 부회장. 1986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아래 사진). 당시 안 부사장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다.
돌아보면 86년은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83년 2월 반도체 투자를 결심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84년부터 깊은 불황이 덮쳐와 4달러였던 64K D램이 85년 중반에 30센트까지 떨어졌다. 삼성은 반도체 하나를 팔면 1달러40센트씩 손해가 났다. 또 삼성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특허 배상금으로 8500만 달러(그해 영업이익의 80%)나 뜯겼다. 86년은 세계 반도체 지각 변동의 한 해였다. 미국 TI가 일본 NEC에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겼고, 인텔은 아예 백기를 들고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86년의 국내 분위기는 더 험악했다. 반도체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삼성의 반도체 누적적자가 1300억원에 이르자 “삼성이 반도체 때문에 망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정부는 연초에 자동차·건설중장비·발전설비 등에 대한 주요 산업 합리화조치를 예고했다. 반도체도 한때 살생부 도마에 올렸다가 막판에 간신히 빠졌다. 따라서 위의 사진은 86년 2월로 추정되는 삼성의 반도체 살리기 총력전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의 최고 핵심들이 총출동해 “삼성 반도체에 대해 잘 써 달라”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장면인 것이다. 77세의 이 회장과 70세였던 홍진기 회장으로선 황혼의 마지막 투혼이었다. 홍 회장은 불과 5개월 뒤 타계했고, 이 회장도 이듬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삼성 반도체 출신인 신용인 박사의 『삼성과 인텔』(2009년)에 따르면 두 어른이 타계하자 삼성 간부들은 87년 말 작심하고 이건희 신임 회장에게 “반도체를 포기하자”고 건의했다가 엄청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삼성 반도체는 88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황금알을 낳기 시작했다.
경제는 무균의 진공관 속에서 키워지는 게 아니다. 히트 상품은 거친 시장 속에서 온갖 경쟁을 이겨내며 자란다. 삼성은 반도체가 흑자를 낸 88년 아날로그 무선전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모토롤라에 밀려 7년간 적자행진을 이어가다 94년에야 애니콜로 판세를 뒤집었다. 기업들은 이처럼 ‘언젠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오랫동안 적자를 참고 견디기도 한다. 이런 것이 저력이자 경쟁력이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을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저마다 그 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3차처럼 모든 산업혁명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주인공이다. 기업은 본능적으로 상어와 마찬가지다. 상어는 가만히 있으면 물속에서 질식해 숨진다. 기업들도 사업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도 정부가 개입하기보다 가만히 기업들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정부가 꼭 관여하겠다면 드론이 마음대로 날고 줄기세포를 자유롭게 실험하도록 규제를 확 풀거나 교육을 개혁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영국 자동차의 실패 경험을 꼭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1801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마차조합과 마부들을 위해 만든 ‘적기조례’가 1889년까지 지속된 게 문제였다. 이 조례에 의해 영국 자동차는 빨간 깃발을 든 신호수(手)를 뒤따라가야 했고, 말과 마주치면 반드시 멈춰야 했다. 19세기 내내 영국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느렸다. 이에 비해 독일·프랑스·미국은 고속도로를 만드는 등 자동차들이 마음대로 질주하게 했다. 이러니 영국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모조리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완벽하게 몰락한 것은 당연했다.
이철호 논설주간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삼성 반도체도 죽을 뻔한 때가 있었다
요즘 세계 시가총액은 애플-알파벳(구글 모기업)-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순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독무대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클라우드가 새로운 핵심 사업이다. 빅 데이터 시대를 맞아 이들이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50% 이상 늘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 특수도 폭발 중이다. 자율주행차는 주행 중 데이터 처리를 위해 고성능컴퓨터 한 대씩을 장착한 것이나 다름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반도체도 한때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조선일보 안병훈 전 부사장의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를 보다가 30여 년 전 사진 한 장에 시선이 꽂혔다. 그 밑에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을 신라호텔로 초청, 삼성이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에 관해 설명했다. 이 회장과 악수를 나누는 필자. 가운데는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과 이건희 부회장. 1986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아래 사진). 당시 안 부사장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다.
86년의 국내 분위기는 더 험악했다. 반도체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삼성의 반도체 누적적자가 1300억원에 이르자 “삼성이 반도체 때문에 망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정부는 연초에 자동차·건설중장비·발전설비 등에 대한 주요 산업 합리화조치를 예고했다. 반도체도 한때 살생부 도마에 올렸다가 막판에 간신히 빠졌다. 따라서 위의 사진은 86년 2월로 추정되는 삼성의 반도체 살리기 총력전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의 최고 핵심들이 총출동해 “삼성 반도체에 대해 잘 써 달라”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장면인 것이다. 77세의 이 회장과 70세였던 홍진기 회장으로선 황혼의 마지막 투혼이었다. 홍 회장은 불과 5개월 뒤 타계했고, 이 회장도 이듬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삼성 반도체 출신인 신용인 박사의 『삼성과 인텔』(2009년)에 따르면 두 어른이 타계하자 삼성 간부들은 87년 말 작심하고 이건희 신임 회장에게 “반도체를 포기하자”고 건의했다가 엄청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삼성 반도체는 88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황금알을 낳기 시작했다.
경제는 무균의 진공관 속에서 키워지는 게 아니다. 히트 상품은 거친 시장 속에서 온갖 경쟁을 이겨내며 자란다. 삼성은 반도체가 흑자를 낸 88년 아날로그 무선전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모토롤라에 밀려 7년간 적자행진을 이어가다 94년에야 애니콜로 판세를 뒤집었다. 기업들은 이처럼 ‘언젠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오랫동안 적자를 참고 견디기도 한다. 이런 것이 저력이자 경쟁력이다.
DA 300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을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저마다 그 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3차처럼 모든 산업혁명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주인공이다. 기업은 본능적으로 상어와 마찬가지다. 상어는 가만히 있으면 물속에서 질식해 숨진다. 기업들도 사업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도 정부가 개입하기보다 가만히 기업들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정부가 꼭 관여하겠다면 드론이 마음대로 날고 줄기세포를 자유롭게 실험하도록 규제를 확 풀거나 교육을 개혁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영국 자동차의 실패 경험을 꼭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1801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마차조합과 마부들을 위해 만든 ‘적기조례’가 1889년까지 지속된 게 문제였다. 이 조례에 의해 영국 자동차는 빨간 깃발을 든 신호수(手)를 뒤따라가야 했고, 말과 마주치면 반드시 멈춰야 했다. 19세기 내내 영국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느렸다. 이에 비해 독일·프랑스·미국은 고속도로를 만드는 등 자동차들이 마음대로 질주하게 했다. 이러니 영국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모조리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완벽하게 몰락한 것은 당연했다.
이철호 논설주간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삼성 반도체도 죽을 뻔한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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