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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고교시절 단짝이 청첩장 건네주던 날

Shawn Chase 2017. 4. 2. 02:59

이주윤 작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31/2017033101830.html


입력 : 2017.04.01 03:02

[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직선과 곡선'이라 칭하며 그렇게 붙어다녔는데
대학 진학하면서 멀어져…오랜만에 만나니 어색
밥 한 술, 술 한 잔에 어느새 예전의 우리로


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주윤


'직선'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언젠가 "직선적인 글을 써서 직선인가요?"라고 묻는 누군가에게 "어, 저기, 그러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하며 어물쩍 대답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나의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다. 만약, 그녀가 나를 '젓가락'이라 칭했다면 아마 나는 젓가락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마음이 잘 맞았던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수업 시간에는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서로의 글이 너무 재미있다며 등짝을 때려가며 웃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 출판사를 차리기로 약속했다. "너는 키가 크고 말랐으니까 직선, 나는 키가 작고 통통하니까 곡선. '직선과 곡선 출판사' 어때?" 그렇게 나는 '직선'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약속을 하지 않아도 학교에만 가면 당연히 볼 수 있었던 그녀를, 시간과 장소를 잡아가며 만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직장에 다니면서 더해지고, 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더해져서 이제는 거의 만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근근이 관계를 이어오기는 했지만, 너무나 달라진 서로의 생각에 가끔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그녀를 만나기가 더욱 꺼려졌다. 그나마 남아있던 우정마저 산산이 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추우니까 봄이 오면 만나자, 생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생일에 만나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식장에서 만나자. 괜한 농담을 건네며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농담이 현실이 되었다.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모바일 청첩장이면 충분하다는 나에게 그녀는 굳이 청첩장을 직접 주고 싶다며 만남을 청해왔다. 그렇게 우리는 삼 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서먹했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팔짱을 꼭 끼고 다니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우리는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 길을 걸었다. 프러포즈는 어땠는지,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지, 신혼집은 구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혹시나 실례되는 질문이 아닐까 싶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지낸 세월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밥 한 술, 술 한 잔에 어색함이 사르르 녹아 없어지자 그동안 참아왔던 이야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는 궁금할 게 없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친구가 나에게 슬며시 팔짱을 꼈다. 순간 뭉클했던 것이 내 옆구리살이었는지, 내 마음이었는지는 말하기에 쑥스러우니 나만 알고 있으련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만나지 않을 것이다. 혼자에서 둘이 된 그녀는 전보다 훨씬 바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앞으로도 꽤나 싸워댈 것이다. 그녀는 인생 선배랍시고 나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을 테고, 나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그녀에게 짜증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가끔 만나 웃고 떠들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선과 곡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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