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케이스스터디>변호사가 본 '박근혜 구속수감', 이런 전략 썼더라면

Shawn Chase 2017. 4. 2. 02:50
  • 양은경 법조전문 기자
  • 박은주 기자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1/2017040100703.html



    입력 : 2017.04.01 12:45 | 수정 : 2017.04.01 18:22

    변호사로서도 박 전 대통령은 '쉬운 의뢰인'은 아냐
    박 측, "장관들 잘못 모두 내 책임" 전략 썼다면,
    구속 여부도 여론 향방 따라 달라졌을 수도
    '법대로' 앞서 정치적으로 해결했어야


    대통령 구속 수감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 역시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을까.
    양은경 변호사 겸 법조전문기자에게 박 전 대통령의 수감이 운명이었는지,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지 법률적 관점에서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다.

    Q:박 전 대통령 개인 문제를 떠나, 국가적 비극이 또 벌어졌습니다. 정말 구속을 피할 수 없었던 건가요?
    A: 구속 직전 박 전 대통령의 수척한 얼굴, 헝크러진 머리는 상당한 심리적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됐어야 했을까요.
    박 전 대통령이 구속을 피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왜 구속됐는지 봐야 합니다. 영장전담 판사들이 꼽는 주요 결정요소는 ‘혐의의 중대성+소명 정도+구속 필요성’ 입니다. 구속의 필요성은 증거인멸, 도주우려, 주거부정을 포함하는 개념이지요. 쉽게 말해 중대한 범죄 사실이 어느 정도 소명됐고, 구속하지 않으면 수사나 재판에 지장이 오는 경우 영장이 발부되는 겁니다.
    이 사건에서 ‘혐의의 중대성’은 부인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대표적 혐의 두 가지,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수석,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공모해 기업들로 하여금 정체불명의 재단에 총 774억을 내게 한 것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433억을 받기로 했다는 것만 봐도 국가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사상초유의 범죄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죄로 인정될 경우입니다. 입증의 정도 또한 박 대통령이 좌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음파일, 수많은 관계 공무원들의 진술 등이 있어서 이를 뒤집을 새 증거를 내놓지 않는 한 힘든 상황이죠.
    조절 가능했던 변수도 있습니다. 구속의 필요성 그 중에서도 특히 ‘증거인멸의 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공범들과 말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고, 지금까지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한 태도로 볼 때 앞으로도 제대로 조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소한 이 부분에서 검찰을 설득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죠.

    1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Q:변호사 역량이 미흡해던건가, 전략이 잘못됐나 의심이 드는데요.
    A:지난해 11월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기도 했던 유영하 변호사가 법적대응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탄핵심판 과정에서 서성건 이중환 손범규 정장현, 채명성 변호사 등이 합류했고 말미에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동흡 변호사와 정기승 전 대법관 김평우, 조원룡 변호사 등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파면 이후 검찰 대응 및 구속영장 방어는 유영하, 정장현, 채명성 변호사 등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초기부터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의 변호인단을 살펴볼까요. 대법관 출신 이용훈 변호사, 감사원장 출신 한승헌 변호사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다소 ‘급’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에도 헌재 재판관 출신이나 대법관 출신이 있으니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고, 법조인의 역량을 반드시 출신으로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국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게 탄핵심판정에서 태극기를 펼쳐 드는 돌출행동 주심재판관에게 ‘국회(청구인)수석대리인’이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입니다. 변호인은 재판관을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극하고 모욕했으니까요.
    그리고 검찰수사 대응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초기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검찰수사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을 저버린 셈이 됐지요. 특검 전 검찰 수사 당시에도 대면조사가 무산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과 최순실을 ‘공범’으로 적시한 데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게 배경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특검에서도 박 전 대통령측은 ‘녹음 녹화는 절대 안된다’, ‘특검이 합의를 깨고 조사일정을 유출했다’며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를 ‘헌법수호의 의지가 없다’며 파면 근거로 적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자연인 신분이 된 21일에야 순순히 조사를 받았지요. 이후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는 다소 생뚱맞은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피의자 입장에서 수사기관과의 ‘기 싸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내놓을 만한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이를 테면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든가 다른 수사협조 등 수사기관에서 선처를 고려할 만한 사정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보면 현직 대통령이라는 직위로 그냥 ‘버틴’거지요. 그렇다면 초기부터 순순히 조사에 응해 여론이라도 좋게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물론 초기 대응에 박 전 대통령의 의사가 많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략상 불리하다면 최대한 설득시켜 다른 선택을 하게 하는 게 변호인의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좋은 변호를 받으려면 의뢰인이 변호사를 충분히 만나고 모든 얘기를 솔직하게 해야 합니다. 의뢰인 박 전 대통령이 그런 협조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변호인단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전 검찰 차량에 타고 서울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Q:이런 위기에서 양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면, 어떤 조언을 했겠습니까.
    A: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이 정도 사안이면 사실 어떤 변호사라도 의뢰인의 구속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는 있겠네요. 문제가 까다로와서 저도 주변의 의견을 좀 들어 봤습니다.
    한 중견 법조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면 영장청구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모든 혐의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여론이 덜 악화되거나 오히려 동정론도 생겼을 것이고, 그렇다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는 데 있어 좀 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검찰로서도 구속시 여론 악화라든지 국격 실추 등 불구속 수사의 명분이 있어야 하고, 변호인들이 그런 명분을 만들어 줬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겁니다.
    “아예 초기부터 통큰 자세로 임했어야 한다”고 또 다른 법조인은 지적합니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공범과의 형평성’이었습니다. 안종범 전 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김종 전 문체부차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참모들이 줄줄이 구속된 상황에서 지시의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 게 오히려 힘든 상황이지요
    이 법조인은 박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차라리 나를 구속하고 참모들은 봐달라”고 했으면 참모들의 줄구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박 전 대통령에게도 운신의 여지가 생길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모두 유죄를 인정하라는 말이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된 사실관계는 인정을 하고, 대신 사익을 취할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하는 겁니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가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단히 유리한 정황입니다. 특히 뇌물죄에서는 이 점을 최대한 살리는 게 필요합니다.

    Q: 이런 위기에서 벗어난 사례가 있습니까.
    A:법조인 중 누군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이야기하더군요. 4·19 의거로 국민의 거센 저항과 맞딱뜨렸지만 하야 후 망명길에 오르면서 공분(公憤)이 희석되고 결국 사법의 잣대 대신 역사의 저울에만 올랐다는 겁니다.
    사건 초기 ‘4월 퇴진 6월 대선’이 대안으로 꼽힌 것도 국민화합이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법처리보다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도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만 ‘법대로’한다는 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적 해결이나 다른 연착륙방안이 모두 막혔을 때 마지막으로 취하는 방식이 ‘법대로’니까요.
    물론 구속은 유죄판결이 아니고, 실제 재판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릅니다만 헌정 사상 세 번째 맞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어째됐든 역사에 큰 생채기를 남길 듯 합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1/20170401007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