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아우토반 위에 지은 아파트, 매연과 진동잡은 기술은?

Shawn Chase 2017. 3. 5. 15:51

김우영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입력 : 2016.11.12 03:0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내년이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닷컴의 부동산·인테리어 콘텐츠 플랫폼 땅집go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⑤도로 위의 아파트 ‘슈랑겐’

베를린 A100 아우토반 터널 위에 건설
부지 확보 쉽고 환경 훼손 최소화 장점
아파트와 도로 기초 분리해 진동 줄이고
배기가스 배출 쉽도록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건설비는 2.3배 더 들어 경제성은 문제

독일 베를린 시내 슈랑겐바더 지역의 고속도로 위에 들어선 슈랑겐 아파트. 총 1064가구로 1981년 준공됐다.
2008년 서울 서초구는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반포나들목에서 서초나들목 구간 400m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정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 위의 빈 공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지 확보를 위한 별도 노력이 필요없고 고속도로로 분할된 양쪽 공간을 연결하며,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 이와 비슷한 개념을 가진 매우 독특한 아파트가 있다. 슈랑겐바더(Schlangenbader Strasse)라는 도로 위에 지은 쉬랑겐 아파트(Schlangen Apartment)다. 베르텔스만(Bertelsmann)이란 건축가가 설계해 1981년 준공된 건물이다. 당초 계획은 도로변에 길게 아파트를 배치하고 도로 소음을 막기 위해 방음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획 과정에서 도로의 진동을 아파트에 전달하지 않으면서 공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으로 도로 위 아파트를 기획하게 됐다.

이 아파트는 당시 신설된 A100 아우토반(고속도로) 위에 지어졌지만 고속도로가 다른 도로와 교차하면서 일정한 높이를 유지할 수밖에 없어 고속도로 아래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었다. 또 입주민 편의를 고려해 지하 주차장에서 직접 세대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배기가스와 진동, 어떻게 해결했나?

이 아파트는 지상 46m 높이에 총 길이가 600m에 달한다. 최고 층수는 15층이며 옆으로 길다란 모양을 하고 있다. 총 1064가구로 단일 아파트로는 유럽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아파트는 원룸형도 있고, 방 2개 이상을 갖춘 멀티룸형도 있다. 전체 가구의 절반 정도에는 테라스와 발코니도 딸려 있다.

이 아파트 기획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대목은 터널을 지나는 차량에서 뿜어내는 배기가스가 아파트에 미칠 영향이었다. 터널 내 배기가스 배출을 쉽게 하기 위해 우선 터널 내 차량 흐름을 일방통행으로 했다. 터널 입구와 출구에서 배기가스가 상부의 아파트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파트 길이보다 터널 입·출구를 50m 더 연장하도록 설계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엔진과 타이어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함께 구조물에 많은 진동을 발생시킨다. 소음이야 터널로 인해 쉽게 차단될 수 있다. 하지만 차량 운행으로 인한 진동은 구조물을 따라서 전달되기 때문에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아파트와 고속도로를 구조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아파트와 고속도로의 기초 부분이 별도로 시공된 슈랑겐 아파트의 배치도.
배치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터널 부분과 아파트 부분은 서로 다른 독립된 기초를 구성하고 있고 구조적인 연관성 없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 다만 입주민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달리 지하 주차장은 터널 하부에 배치돼 터널과 동일한 기초 위에 구축되고 그로 인한 진동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입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 진동은 허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파트는 쓰레기 문제가 항상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1980년대에 건축된 이 아파트는 집안 특정한 곳에 쓰레기 수직 투하 장치를 설치해 입주민이 쓰레기를 들고 내려와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일정한 레벨에 투하된 쓰레기는 진공 흡수 방식으로 쓰레기 수평 집하 장치에 의해 일정한 장소로 집결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쉬랑겐 아파트는 입주자 필요에 맞춰 내부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가변형 벽체를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었다.

고속도로 위에 지어진 슈랑겐 아파트의 단면도.
■“건설비 많이 들어 경제성이 문제”
쉬랑겐 아파트는 평균 건설단가인 ㎡당 1500마르크(약 97만5000원)보다 2000마르크가 더 들어간 3500마르크(약 227만5000원)가 투자됐다. 약 2.3배로 결국 경제성에는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그나마 베를린시가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도로 좌우측 택지를 기증해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고속도로나 철도 위의 공간을 이용한 건축을 고려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박근혜 정부들어 철도 선로 위에 행복주택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는 시점에서 쉬랑겐 아파트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다만 이 아파트는 고속도로와 동시에 설계되고 건설됐던 만큼 기존 고속도로 위의 시설물을 고려한다면 보다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즉, 차량 진동이 상부 구조물에 전달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또 기존 고속도로 운영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아파트를 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검토가 필요하다.

쉬랑겐 아파트는 2개 이상의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짓다보니 지하 주차장을 터널 아래에 배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고가도로가 아닌 지상 도로 위에 시설물을 기획한다면 지하 주차장을 아파트와 일체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