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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혁명 이끈 농부 아들… 반세기 쿠바의 통치자

Shawn Chase 2016. 11. 29. 00:23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8/2016112800292.html
  • 뉴욕=김덕한 특파원
  • 김진명 기자

  • 입력 : 2016.11.28 03:00

    [카스트로 사망]
    피델 카스트로 90세 사망… "한 시대의 끝이자 새 시대의 시작"

    혁명 동지 체 게바라와 게릴라전
    집권후 美와 대립하며 국교 단절, 구소련 核 배치하려다 전쟁 위기
    전제 군주 외엔 최장 통치 기록… 차기 권력 두고 死後 혼란 가능성
    개혁·개방 속도는 더 빨라질 듯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이하 현지 시각)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26일 자정이 지난 직후 국영 TV에 나와 "쿠바 혁명의 최고 사령관이 25일 밤 10시 29분에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2006년 장출혈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데다 고령으로 쇠약해진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쿠바 정부는 이날부터 9일 동안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카스트로의 유해는 26일 화장을 거쳐, 수도 아바나에서 고향인 동부 지역의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전국을 순례하는 운구 과정을 마친 뒤, 다음 달 4일 고향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혁명으로 풀헨시오 바티스타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 정권을 세운 뒤 2008년 건강을 이유로 은퇴할 때까지 49년간 쿠바를 통치했다. 1976년까지는 총리를, 이후에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았다. 20세기 이후 각국 지도자 중 전제 군주를 제외하곤 최장의 통치 기록을 세우며, '위대한 혁명가'라는 찬사와 '야만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피델 카스트로의 역사적 순간들 정리 그래픽


    사망 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26일 아바나의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의 음악 소리도 끊겼으며 대학생들은 캠퍼스에 모여 쿠바 깃발을 흔들며 "피델 만세, 라울 만세"를 외쳤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반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 등 쿠바계 주민 밀집 지역에서는 쿠바계 주민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죽을 터뜨리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카스트로 집권 후 50만명 이상이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26년 스페인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하면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후 특사로 석방된 그는 곧바로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 게릴라 조직을 결성하고 쿠바 정부 전복에 나서 1959년 1월 마침내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렸다.

    집권 후 토지개혁, 민간기업 국유화, 외국자본 몰수 등 공산화 정책을 추진한 그는 미·소 냉전 체제하에서 소련을 추종하며 서방과 맞서다 1961년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다. 1962년 10월에는 구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다 미국과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까지 가는 '미사일 위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카스트로의 그림자가 사라진 쿠바는 개혁·개방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라울 카스트로의 실용적 개혁 노선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쿠바 역사학자 엔리케 로페스 올리바는 뉴욕타임스에 "카스트로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며 "라울이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되면서 변화 과정이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 85세인 라울이 공언한 대로 오는 2018년 권좌에서 물러나면 차기 권력을 놓고 혁명 세대와 비혁명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쿠바 권력 서열 2위인 미겔 마리오 디아스-카넬 베르무데스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은 올해 56세로, 쿠바 혁명에 참가하지 않은 세대다. 미국 연구기관인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 회장은 "권력층 내부에 분쟁과 대립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라울은 얼마나 빨리 대미(對美) 관계를 개선해 경제 제재에서 벗어날 것인지가 가장 큰 숙제이다. 미국과 쿠바는 2014년 적대 관계 청산을 선언했고 지난해 8월에는 국교를 회복했다. 올 3월에는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쿠바가 정치·종교의 자유 , 정치범 석방 등을 수용해야 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어 대미 관계 개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 외교 당국은 쿠바와 관계 개선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쿠바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김일성 전 주석과 깊은 유대 의식을 갖고 있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존재 때문에 실천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