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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관왕 박태환, 이제야 이해되는 기대 이하의 리우

Shawn Chase 2016. 11. 21. 00:45

데일리안 |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 입력 2016.11.20 16:18 | 수정 2016.11.20 16:22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박태환(27·인천시청)이 아시아선수권 4관왕에 등극했다.

박태환은 19일 일본 도쿄 다쓰미 국제수영장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48초 57의 기록으로 1위에 오른 데 이어 남자 자유형 1500m에서도 15분7초86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박태환은 자유형 100m가 주종목이 아님에도 ‘군계일학’의 역영을 펼쳤다. 4번 레인에서 결승을 치른 박태환은 첫 50m를 23초67의 기록으로 3위로 턴을 했지만, 결국 48초57의 기록과 함께 최후의 승자가 됐다. 2012년 중국의 뤼저우가 세운 종전 대회 기록(49초27)을 0.7초 단축한 신기록이다.

아시아선수권 4관왕 등극으로 박태환의 존재감이 새삼 드러난 같은 날 박태환은 또 하나의 이슈로 하루 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 연합뉴스
아시아선수권 4관왕 등극으로 박태환의 존재감이 새삼 드러난 같은 날 박태환은 또 하나의 이슈로 하루 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 연합뉴스

더 놀라운 것은 1500m 결과다. 자유형100m 경기가 끝난 지 불과 40분 후에 열린 최장거리 종목인 자유형 1500m에서 박태환은 200m 구간부터 1위로 치고 나온 이후 1500m까지 고른 페이스로 줄곧 선두를 달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자유형 200m에서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에 해당하는 기록이자 라이벌 쑨양(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아시아선수권 기록을 갈아 치우는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자유형 400m에서도 2위를 차지한 일본 선수에 6초 이상 앞서는 압도적인 레이스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라이벌 쑨양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개인사로 인해 불참한 것도 박태환의 4관왕 등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태환의 압도적인 레이스를 볼 때 최소한 쑨양 외에는 적수를 찾기 어려운 아시아 최정상의 수영 선수라는 것은 확실히 입증했다.

아시아선수권 4관왕 등극으로 박태환의 존재감이 새삼 드러난 같은 날 박태환은 김연아와 함께 또 하나의 이슈로 하루 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박태환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라는 사실상의 협박을 한 사실이 담긴 녹취록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

박태환이 김 전 차관에게 협박을 당한 시점은 박태환이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가운데 소위 ‘이중 처벌 규정’에 막혀 리우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문제의 대한체육회 규정이 이중 처벌을 금지하는 국제적 원칙과 판례에 반하는 독소 규정이었음에도 대한체육회는 리우 올림픽 전에는 이를 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대한체육회를 배후 조종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 중심에 김 전 차관이 있다는 추측도 나왔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스포츠 4대악 척결’이라는 목표 가운데 ‘도핑 무관용’이라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박태환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중이 작용하고 있고 그 중심에 ‘스포츠 대통령’ 김종 전 차관이 존재한다는 추측이었다.

박태환 ⓒ 데일리안DB
박태환 ⓒ 데일리안DB

결국, 박태환은 대한체육회의 이중 처벌 규정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 가져가는 한편, 국내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부장 염기창)는 지난 7월 1일 박태환 측이 대한체육회와 대한수영연맹을 상대로 낸 ‘국가대표 선발 규정 결격사유 부존재 확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박태환이 국가대표 선수가 될 자격이 있음을 공식 인정, 박태환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국내 법원의 판결이 나고 CAS의 결정이 나는 그 사이에도 박태환에 대한 공식적인 국가대표 선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추태를 벌였다. 물론 그 뒤에 정부가 있을 것이란 의심은 더욱 더 커져갔다.

이번 김종 전 차관의 녹취록으로 인해 그와 같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사실 리우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출전한 전 종목에서 메달을 고사하고 결선에도 오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소한 주종목 자유형 400m에서만큼은 결선에 올라 메달을 다툴 것으로 기대가 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리우에서의 박태환은 기대 이하였다. 기대 이하 정도가 아니라 무기력해 보일 정도였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칼을 갈고 또 갈았을 박태환이었음을 떠올려 볼 때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였다.

그런데 이번 ‘SBS’ 보도에 따르면, 박태환은 김종 전 차관을 만나 협박을 당한 이후 며칠간 운동을 접고 고민에 빠져 있느라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런 고민을 털어내고 훈련을 이어가려 했지만 국내에서는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결국 외국으로 나가 훈련을 이어갔지만 올림픽에서 뛸 컨디션을 만들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이제야 박태환이 리우에서 왜 그토록 무기력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의 퍼즐이 마지막 조각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금지약물 복용 스캔들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무대로 박태환이 선택한 무대는 리우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리우에서 부진했던 박태환에 대한 비난 여론은 높지 않았다. 올림픽 출전 자체를 위해 박태환이 기울인 노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태환이 김종 전 차관의 협박에도 끝까지 올림픽 출전을 이뤄낸 과정이 밝혀진 지금, 박태환의 아시아선수권 4관왕 등극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스포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