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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나도, 딸 재아도 '닥공'이 트레이드 마크"

Shawn Chase 2016. 11. 18. 13:14

본보 인터뷰, "우선 아시아축구연맹 챔스리그 우승컵 안겨주겠다"


출처 한국일보 | 윤태석 | 입력 2016.11.18 04:42


지난 11일 전북 완주군 프로축구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이동국(37)을 만났다. 그는 닷새 전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전북은 11월 6일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3만5,000명이 넘는 홈 관중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FC서울에 0-1로 졌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지만 패하며 눈앞에서 트로피를 놓쳤다. 충격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과 2016시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을 준비하기 위해 10일 다시 소집했다. 결승 1차전은 19일 전주, 2차전은 26일 아부다비에서 열린다.

이동국(왼쪽)은 축구공, 딸 이재아는 테니스라켓을 손에 들었다. 테니스코리아 제공
이동국(왼쪽)은 축구공, 딸 이재아는 테니스라켓을 손에 들었다. 테니스코리아 제공

두 번 실패는 없다

이동국은 “아직도 상처를 치유 중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우리가 우승컵을 들었어도 몇 번을 들었어야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전북은 2위 서울에 압도적으로 앞섰지만 구단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징계로 승점 9점을 깎였다. 하지만 그는 “잘못이 있다면 우리도 팀으로 같이 책임지는 게 맞다”고 부연했다. 이동국은 무엇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전주하면 ‘비빔밥’이 아니라 ‘축구’가 떠오르게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말한 적이 있다. 허언이 아니었다. 전북은 최근 몇 년 동안 프로축구를 선도하는 ‘축구도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유독 안방에서 우승 복이 없다. 2011년에도 ACL 홈 결승에서 알 사드(카타르)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이동국은 “팬들 모두 우승하는 상상을 하며 경기장에서 오셨을 텐데 그게 젤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9년 전북에 입단해 4번(2009ㆍ11ㆍ14~15)이나 리그 우승컵을 들었지만 ACL 정상에는 서지 못했다. 이동국은 “이번에야말로 ACL 우승으로 더 큰 축하를 받을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동국이 지난 2일 상주와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하는 모습. 전북 현대 제공
이동국이 지난 2일 상주와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하는 모습. 전북 현대 제공

나도 딸도 ‘닥공’

다소 무겁던 인터뷰 분위기는 가족 이야기에 한결 가벼워졌다.

이동국은 이재시-이재아(이상 9), 이설아-이수아(이상 3) 두 쌍둥이 자매와 두 살인 막내아들 대박이(본명 이시안)를 둔 ‘다둥이’ 아빠다. FC서울과 경기 때도 온 가족이 경기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손수 만든 응원 팻말을 들었고 특히 셋째 수아는 ‘아빠가 제발 한 골 넣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까지 했다. 그날 저녁 어깨가 축 처진 아빠를 위로해 준 존재도 가족이었다.

큰 딸인 초등학교 3학년 재아는 아빠처럼 운동을 한다. 축구는 아니고 테니스 선수다. 지난 6월 회장배전국여자테니스대회 10세부, 7월 전국주니어테니스선수권대회 여자 10세부에서 한 살 많은 언니들을 제치고 잇달아 우승한 실력자다. 이동국은 “그 나이 때는 한 살 차이도 기량 차이가 커서 기대를 안 했는데”라며 흐뭇해했다.

이동국은 지난 20년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간판 공격수로 살았다. 부침도 환희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K리그 통산 192골로 최다 득점 주인공이고 2009년부터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동기생 대부분이 은퇴했지만 전성기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독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지 새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딸도 아빠를 닮아 간다. 예전에 재아는 경기에서 지고 온 날 분을 못 이겨 자주 울곤 했다. 이동국이 “연습장에서 울어야 시합장에서 웃는다”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자 그런 모습이 줄었다. 재아가 발목을 접질리거나 물집이 생겼다고 하소연하면 이동국은 자신의 발을 보여주며 말한다.

“재아야 이거 봐. 바늘로 찔러도 안 들어갈 정도로 굳은살이 박혀있지? 물집? 수 백 번은 생겨야 이렇게 단단해져. 운동선수라면 조금씩의 부상은 다 안고 있는 거야. 참는 것도 훈련이다.” 그러면 딸은 “아빠한테는 무슨 말을 못한다”라고 삐쭉하면서도 나름 느끼는 바가 있는 지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동국은 “운동선수로 클 때는 옆에서 정신적으로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평소엔 친구 같은 아빠지만 경기장 안에서 어리광 피우면 용납 못 한다는 걸 재아도 안다”고 답했다.

작년 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 촬영하는 이동국 가족의 모습. 이동국은 올해 ACL 우승으로 가족들, 그리고 전북 팬들과 환희를 맛보겠다는 각오다. 전북 현대 제공
작년 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 촬영하는 이동국 가족의 모습. 이동국은 올해 ACL 우승으로 가족들, 그리고 전북 팬들과 환희를 맛보겠다는 각오다. 전북 현대 제공

전북의 트레이드 마크는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이동국은 “재아의 테니스도 ‘닥공’이다. 서브 때리고 곧바로 공격하는 서리나 윌리엄스(미 여자테니스 선수) 같은 스타일이다”며 “물론 성공률이 높지 않아 문제다”고 껄껄 웃었다.

이동국은 2014년 10월 코스타리카와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딸을 위해 테니스 세리머니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딸은 “나중에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뒤 발리 세리머니(이동국의 전매특허가 발리 슛)를 하겠다”고 화답해 아빠의 마음을 녹였다. 이동국은 “재아가 앞으로 그랜드슬램(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석권)으로 아빠보다 많은 트로피를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며 “일단 이번 ACL 우승으로 나부터 메달을 추가해야겠다”고 활짝 웃었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mailto:sport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