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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파이터 된 '으리'의 사나이… "소아암 환자 도우려 잽 날린다"

Shawn Chase 2016. 11. 5. 21:05

전현석 기자  

입력 : 2016.11.05 03:00

배우 김보성, 로드FC와 뜻 모아 입장수익 전액 기부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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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이 종합격투기 데뷔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사진을 보며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파이터의 눈빛과 주먹이다. 꼭 이 사진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지호 기자


배우 김보성(50)이 때리고 맞고 굴렀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지만 또 자빠졌다. 그가 매트 위에 누운 채 숨을 고르자 상대방 선수가 달려들어 팔을 꺾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김보성은 항복 표시를 한 뒤 "다시" 하고 외쳤다. 그의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했다.

김보성이 최근 '파이터'로 변신했다. 거의 매일 서울 압구정동 로드 FC체육관에서 3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그는 다음 달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른다. 소아암 어린이 환자를 돕기 위해서다. 종합격투기 단체인 로드FC와 뜻을 모아 이날 입장수익과 그의 대전료 전액을 기부한다. 그가 직접 썼다는 계약서 1조 1항은 이렇다. '김보성과 로드FC는 행복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대회 개최의 큰 뜻에 합의하고, 국가적 국민적 나눔문화를 의리로 전파하여 따뜻한 대한민국을 도모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는 평소 "삼손처럼 힘이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말했는데 머리를 빡빡 밀었다. 소아암 환자 가발을 위해 모발을 기부했다. 지난 2일 체육관에서 김보성을 만났다.

"격투기 대회 출전은 하늘의 뜻"

―종합격투기 출전은 위험해 보이는데요.

"많은 분께서 걱정하시는데, 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닙니다. 태권도와 복싱으로 단련했죠. 혼자 깡패 10명하고 싸워서 제압한 적도 있어요."

허세처럼 보이지만 연예계에서 그의 주먹은 정평이 나 있긴 하다. 대표적인 '터프가이'로 꼽힌다. 하지만 김보성이 싸워야 할 상대는 일본 유도 선수 출신인 곤도 데츠오(48)다. 공식 전적 17전 3승 14패인 프로 격투기 선수다.

―어릴 때 다쳐서 왼쪽 눈이 하나도 안 보이죠.

"오른쪽 눈을 최대한 보호하며 싸우려고 합니다."

―예전 부상 때문에 코뼈도 약하다던데요.

"이번에 운동하면서 처음 느꼈어요. 제가 이 세상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꼭 출전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들, 힘들고 아픈 이 시대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그런 감동적인 경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만 50세입니다.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죠. 저는 이게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이 있습니까.

"저는 체력이 약점이에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지붕 위로 날아다니진 못하지만 격투기 선수들도 제 주먹 하나만큼은 인정합니다. 화끈하게 초반에 승부를 내겠습니다."

―상대 선수 측이 볼 수 있으니 이 부분은 기사에서 빼겠습니다.

"상관없어요. 이미 기자회견 때 얘기했습니다."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진 김보성은 "초등학교 때부터 정의를 위해 싸웠다"고 했다. "뒷골목에서 친구들이 맞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바로 달려갔어요. 붕 날아가서 뒤돌려차기로 한 방에 딱(그는 무릎을 '딱' 쳤다) 한 뒤에 '다시는 이 동네에 오지 마라' 그랬죠. 영화의 한 장면처럼요. 제가 그때도 바바리를 입고 다녔는데, 정의의 바바리맨으로 통했습니다."

―의리의 사나이가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때 위인전 100권을 읽었는데, 위인들 공통점이 의리였어요. 김홍신씨 소설 '인간시장'을 감명 깊게 읽으면서, 악당을 응징하는 주인공 장총찬처럼 살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홍콩영화 '영웅본색'을 100번 이상 봤지만 사나이 인생은 역시 의리더군요."

김보성은 1989년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영화배우가 된 이유도 "의리 때문"이라고 했다. "공원에서 깡패 3명이 데이트하는 커플을 해코지하려는 걸 보고 싸움이 붙었어요. 그쪽은 몽둥이까지 들었고 저는 혼자 맨주먹으로 싸웠는데 쌍방폭력으로 결론이 나더라고요. 그때 '이 세상 의리와 정의라는 게 이런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배우가 돼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세상에 전파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는 1996년 영화 '투캅스2' 흥행 성공으로 액션 배우 이미지를 굳혔다. 하지만 2004년 '클레멘타인'에 우정 출연한 이후 2013년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에 주연으로 나올 때까지 영화판에서는 거의 잊힌 존재였다. TV에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친한 후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한 투자자가 후배한테 욕하는 장면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시사회장을 뒤엎었는데, 이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고 자랑했어요. 두 아들과 함께 TV를 보는데 드라마 끝날 때까지 안 나오는 거예요. 편집할 때 전부 잘린 거죠. 그때 남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아내 박지윤씨)

"돈과 주먹으로 군림하는 이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걸 못 참는" 성격 탓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의리 때문에 피해도 많이 봤다. "고3 때 친구를 괴롭히는 불량배들과 13대 1로 붙어서" 시각 장애인이 됐고 이때 코뼈도 다쳤다. "제가 산 주식이 4번이나 상장 폐지됐어요. 주식은 의리로 투자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보증을 잘못 서서 집에 가압류 딱지가 붙은 적도 있어요.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뒤 차용증 쓰는 대신 영웅본색을 같이 봤다가 돈을 떼이기도 했죠."

2014년 세상은 김보성의 의리를 다시 봤다. 그가 한 화장품 광고에 출연해 "으리(의리)"를 외쳤는데, 여성 코미디언 이국주가 김보성 분장을 하고 이를 흉내 낸 게 대박을 쳤다. 김보성도 같이 떴다. 김보성이 모 업체의 음료 광고에 나와 '신토부으리(불이)' '으리(우리)집 으리(우리)음료'를 외친 이후 인터넷에선 '독도는 으리(우리)땅' '모나으리(리)자' 등 패러디가 유행했다. 그가 '의리'를 '으리'로 발음하는 탓에, 일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발음 교정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보성은 "의리로 망한 자, 의리로 흥하게 돼 있다"고 했다.

―왜 의리가 떴을까요.

"사회가 혼탁해지면서 의리나 사회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커진 것 같아요."

―"의리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광고에만 출연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죠.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겠죠. 의리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게 싫었어요. 잘나갈 때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고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대신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의리의 진정성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의리로 망한 자 의리로 흥한다

김보성은 세월호 사건 때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월호 사건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속에 묻고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의 아내 박지윤(43)씨는 "남편이 선글라스를 쓰는 건 실명한 한쪽 눈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 눈물이 많아 이를 감추기 위한 것도 있다"고 했다.

김보성은 '기부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소아암 환자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국제 기아아동 등을 위해 기부했다. 현재 방영 중인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비롯해 출연료 전액을 기부한 적도 수차례다. 김보성은 2014년 남자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그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 99㎡(30평)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다.

―부인을 '의리의 여장부'라고 부른다면서요.

"아내 의리가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어요. 결혼 전 '생활비 쓰고 남는 돈은 모두 기부하자'고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하더라고요. 이번에 아내도 함께 소아암 어린이 환자를 위해 모발 기부를 했습니다."

그의 아내 박씨는 "사실 결혼 전에는 이렇게 기부를 많이 할 줄 몰랐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부들부들 떨면서 집에 왔어요.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거예요. 당첨금이 수십억원이었는데, 남편이 대뜸 그래요. '여기서 10원도 쓸 생각 마. 전부 기부할 거야'라고. 이튿날 은행에 갔는데, 꽝이래요. 로또를 1만원어치 사 놓고는 그중 숫자가 6개 맞았다고 1등이라고 한 거였어요. 너무 웃기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때 알았어요. 이 남자 진심이구나."

김보성은 "요새 안타깝고 우울하다"고 했다. 최순실씨가 '의리'를 언급해서다. 최씨는 "언니(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내가 이만큼 받잖아"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누구를 비방할 자격도 없고 정치를 잘 알지도 못해요. 하지만 '의리계몽운동가'로서, 의리라는 단어가 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정에만 이끌리면 의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김보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익을 위한 정의가 있어야 진짜 의리입니다. 영어로 저스티스(Jus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