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순수 캐릭터로 강동원

Shawn Chase 2016. 11. 5. 20:55

글 | 황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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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간첩, 초능력자, 사제, 사기꾼에 이어 이번에는 13살 소년이다. 데뷔 이래 가장 순수한 캐릭터로 돌아온 배우 강동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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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하는 배우 강동원(35). 그는 한결같이 잘생겼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장난기 넘치는 악동도사였다가 세상과 벽을 쌓은 사형수도 됐고 아픈 아이를 둔 아빠로도 분했다. 백성들의 적으로 서늘한 미소를 짓는 악역을 연기하기도 하고 사기꾼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3살 소년을 연기한다. 영화 <가려진 시간>을 통해서다.

“매 작품마다 변신하는 과정들이 있어서 즐거워요. 물론 힘들기도 하죠. 그렇지만 배우로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고 좋습니다.”

이번 영화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던 감성 판타지 멜로물이다.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첫 장편 상업영화에 도전하는 엄태화 감독 작품으로, 강동원은 <검은 사제들>과 <검사외전>에서도 신인감독들과 작업을 했다.

“신인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하죠. 시나리오를 본 후 감독님을 뵙고 확신이 서면 바로 결정하는 스타일이에요. <검사외전> 촬영할 때 엄태화 감독님께서 직접 부산까지 내려와 주셨어요. 저도 사실 이 영화를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갈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부산까지 와주셨고,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죠.”
 
 
13살 소년을 연기하다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의 시나리오를 제일 먼저 강동원에게 건넸다. 엄 감독은 “몸은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강동원 배우의 전작을 보면 서늘한 느낌도 있고 가끔은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풋풋한 소년 같은 장난꾸러기 모습도 있는데, 이런 모습들이 ‘성민’이라는 캐릭터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준 이후 실제로 만났을 때 더 강하게 확신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몸만 성인 남성이 된 13살 소년을 연기하기 위해 눈빛과 대사 톤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한다.
“연기라는 게 저 스스로 만족한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분들도 항상 만족하는 건 아니니까요. 적정선을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대사 톤을 세 가지 정도로 준비를 해 갔죠. 그중에서 가장 타당한 정도의 선으로 선택해서 연기를 했는데 적정선을 잘 찾아서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일단 제일 중요했던 건 감정선이었어요. 섬세한 감정이 많다 보니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죠. ‘가려진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고 얘기를 하는 캐릭터지만 관객들에게 계속 의심을 줘야 했고, 한편으로는 믿음도 줘야 했거든요. 이런 지점들이 쉽지 않은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날까지 오게 됐고요.”
 

21살 어린 여배우와 연기 호흡
강동원의 상대역은 21살 연하인 신인 신은수 양(14)이다.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는데, 그것도 태어나 처음 본 오디션이었다. 은수 양으로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대 배우를 만난 것.
“제가 현장에서 장난을 많이 쳤는데도 은수가 저한테 계속 선배님, 선배님 그러더라고요. 본인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편하게 불러. 오빠라고 해’ 그랬어요. 그런데도 잘 못 불러요. 그러면서 저보다 분명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매니저한테는 ‘오빠’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매니저 나이를 물어봤더니 저보다 조금 어리데요. 그래도 은수한테 그랬어요. 아무리 봐도 내가 어려 보이는데 왜 나는 오빠라고 안 부르냐고요.”(웃음)
지금까지 김윤석, 황정민, 송강호 등 대선배들과 연기를 해온 그가 이번에는 선배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하는 상황.
“제가 해야 될 일이 좀 더 많았던 것 같긴 한데 그런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어요. ‘밥 먹으러 가시죠’ 하는 건 늘 선배님들 역할이었는데 제가 해야 했고요.(웃음) 그런데 은수 양이랑 연기하면서 나이를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은수도 처음이지만 프로같이 관리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어린 친구고 신인이라 부담스럽다거나 걱정이 된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어요.”
 
 
알아봐 주고 믿어주는, 어머니
영화에서 두 사람은 세상의 의심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겉모습을 갖게 된다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알아봐 주고 믿어줄 이는 얼마나 될까. 영화 <가려진 시간>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또 그 믿음의 기반에 깔린 순수한 사랑을 되새겨보게 한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자신을 믿어줬고 또 믿어줄 사람을 딱 한 명만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어머니라고 답했다.
“지금 모습만 봐서는 제가 쉽게 성공한 걸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학업을 중단하고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저를 뜬구름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취직하려고 공부하는데 쟤는 정신을 못 차린다는 분위기였죠. 저는 연기가 너무나 재미있고 또 저 스스로 가능성을 보고 결정한 건데,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네가 무슨 배우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안정적인 길을 가길 원하셨던 거죠. 그래도 어머니는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믿음이 큰 힘이 됐습니다.”
지난 12년간 그는 20편에 육박하는 영화에 출연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새로운 도전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언제나 굳건하게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