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미국선 스쿨버스 멈추면 대통령車도 스톱… 한국선 쌩쌩 추월

Shawn Chase 2016. 8. 18. 12:51
  • 문현웅 기자
  • 주희연 기자



  • 입력 : 2016.08.18 03:00 | 수정 : 2016.08.18 08:41

    [안전 사각지대의 스쿨버스] [下]

    캐나다선 학생들 다 앉기 전 출발해도 처벌… 한국선 유명무실한 法

    韓, 정지 표지판·점멸등 아예 없거나 제대로 사용 안해
    英, 카메라 6~8대 설치 내부감시… GPS 달아 운행상태도 파악 가능


    지난 16일 오후 4시 40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상가 골목. 노란색 9인승 유치원 버스가 원생들을 내려주려고 길가에 섰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스쿨버스 운전자는 어린이가 타고 내린다고 알리기 위해 차량 왼쪽의 정지(stop) 표지판을 옆으로 펴고 점멸등을 켜야 하지만 이 스쿨버스는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아이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다른 스쿨버스가 한 대 나타났다. 시속 40㎞ 정도로 달려오던 이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차해 있는 스쿨버스 옆을 지나쳤다. 법적으로는 스쿨버스에서 어린이가 타고 내릴 때 주변 차량은 일시 정지해서 안전을 완전히 확인하고 난 뒤 서행해야 한다. 스쿨버스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정을 스쿨버스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한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내려주기 위해‘STOP(정지)’표지판을 펼치며 점멸등을 켜자 뒤따라오던 차들과 반대 차로로 마주오던 차들이 일제히 멈췄다.
    반대편 차선도 정차 -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한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내려주기 위해‘STOP(정지)’표지판을 펼치며 점멸등을 켜자 뒤따라오던 차들과 반대 차로로 마주오던 차들이 일제히 멈췄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태우고 내리기 위해 정차할 경우 어떤 차량이든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정차해 있는 스쿨버스를 다른 차량들이 추월하는 것은 미국 등 교통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정지 표지판을 펴고 정차하면 주변 모든 차량이 멈춰야 한다. 왕복 2차선에서 스쿨버스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차도 스쿨버스가 멈춰 있는 동안 똑같이 차를 세워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탄 차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어기면 각 주(州)의 스쿨버스 법(School Bus Law)에 따라 강력히 처벌한다. 조지아주에서는 도로에서 정지한 스쿨버스를 마주친 차량이 일단 정지하지 않으면 1000달러(약 110만원) 이하의 벌금과 벌점 6점이 부과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벌금과 함께 운전면허를 1년간 정지한다. 캐나다에서도 스쿨버스가 정차하기 위해 빨간색 신호등을 켜면 주변 차량이 모두 정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400캐나다달러(약 35만원)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반면 한국은 스쿨버스를 보호하는 규정 자체가 취약하고,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16일 오후 5시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학원 앞 골목길에 스쿨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이 버스는 반대쪽 차로로 역주행해서 정차했다. 잠시 뒤 학원에서 나온 아이들이 인도가 아닌 차도 쪽으로 가서 이 스쿨버스에 탔다. 학생 20여 명이 스쿨버스에 줄지어 오르는 동안, 차량 30여 대가 시속 30~40㎞ 속도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 버스는 마지막 학생이 타자마자 문을 닫고 출발했다. 아직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기도 전이었다.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골목에 한 스쿨버스가 반대쪽 차로로 역주행해 정차해 있다.
    아수라장 -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골목에 한 스쿨버스가 반대쪽 차로로 역주행해 정차해 있다. 학원에서 나온 어린이들이 이 버스를 타기 위해 차들이 지나다니는 차로로 나오고 있다. /박상훈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스쿨버스가 학생들이 다 앉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도 가중처벌을 받지 않는다. 스쿨버스도 일반 차량과 똑같이 안전 의무 위반으로 20만원 이하 범칙금을 물을 뿐이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어린이가 스쿨버스 좌석에 앉기 전에 차를 움직이면 최고 징역 6개월형을 받는다. 호주는 교통 당국이 스쿨버스 안전 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다 어린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버스운행사업자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쿨버스 안에 어린이를 방치한 채 버스 문을 잠가버려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반면 외국에서는 운전자와 탑승 교사가 스쿨버스 안에 어린이가 남아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스쿨버스 크기에 따라 감시 카메라 6~8대 를 설치해 스쿨버스 내부를 사각지대 없이 감시하고 녹화한다. 또 보호자들이 스쿨버스 운행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스쿨버스에 위치정보시스템(GPS)을 달아 운영하고 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선진국의 스쿨버스 제도가 잘 정비된 것은 어린이가 국가의 미래로서 그 무엇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