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숙박·호텔

'불륜의 아이콘' 모텔의 변신...야놀자 '좋은숙박연구소'

Shawn Chase 2016. 6. 22. 22:35

하나의 기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空間)이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 경영자의 철학, 임직원들의 삶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 공간엔 새로운 기업 문화와 시대 흐름을 선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특색있는 공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기업 이야기를 글과 사진, 영상으로 담았다.

      입력 : 2016.06.22 14:33

      어두침침한 복도, 야릇한 조명, 방 호수가 적힌 길쭉한 플라스틱 막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쇠. ‘모텔’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야놀자’가 만들었다는 ‘모텔 모델하우스’에 대해 상상한 이미지도 마찬가지였다. ‘불륜과 음란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모텔에 대한 모델하우스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야놀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모텔 예약·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야놀자 사옥 2층에 도착하니 드라마 세트장처럼 공간을 구분한 5개의 모텔 객실이 있었다. 안내 직원이 객실 한 곳의 현관문에 설치된 황금색 잠금장치에 휴대전화를 가져다 댔다. 열쇠나 카드키를 쓰지 않았는데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출입문이었다. 특급 호텔에서도 본 적 없는 최첨단 시스템이다. 

      2016년 6월 3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 '야놀자'. 모텔 인테리어 모델하우스 모습 /김지호 기자

      야놀자는 올해 2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고층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총 9개 층을 임대했는데 2층 전체를 이른바 ‘모텔 모델하우스’로 만들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5종류의 객실을 꾸미고 ‘좋은숙박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좋은숙박연구소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현재 모텔을 운영하고 있거나 모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요 손님이다. 객실 콘셉트, 인테리어 디자인, 공사비 등을 다르게 만든 가상의 객실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모텔 운영에 대한 컨설팅이나 프랜차이즈 가맹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다. 전시된 가구와 소품, 침구류 등은 모두 구매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모텔 사업에 관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원스톱 공간’이다.

       

      좋은숙박연구소 중앙엔 192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호텔을 모티브로 꾸민 객실이 있다. 이 방은 최근 숙박업계가 주목하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도입, 스마트폰으로 문을 여닫는 등의 시설을 만들었다. 정경미 야놀자 홍보팀 매니저는 “좋은숙박연구소를 방문하고 나서 ‘모텔이 뭐 크게 다르겠냐’는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람들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스마트폰만으로 객실 문이 열리고 전원이 공급되는 ‘키리스(keyless) 시스템’을 보기 위해서 방문하는 모텔 사업주도 꽤 많다”며 “중장년층 모텔 주인들은 몇 번이고 핸드폰을 도어락에 대면서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는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모티브를 얻은 객실이 있었다. 정 매니저는 “대청마루 위에 올려둔 매트리스, 삼베 직물로 만든 침구·커튼, 다기(茶器) 같은 소품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흥미를 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출장 때 모텔을 자주 이용한다던 한 중년 남성이 객실을 둘러보며 “요즘엔 이런 모텔도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실제 모텔을 운영하는 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곳은 이른바 ‘여관급’ 모텔 객실이다. 야놀자 측은 싸구려 여관에서 연상되는 지저분하고 조잡한 방 이미지를 개선해 ‘적은 비용을 들인 깔끔한 객실’로 탈바꿈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 야놀자 F&G 숙박디자인연구소 이명진 디자이너는 “벽 일부에 포인트 벽지를 써서 세련된 인상을 주고, 객실 전체를 화이트톤으로 맞추거나 최소한의 가구와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을 이용해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저렴한 가격대지만 야놀자에서 근무하는 20~30대 싱글 직원들은 “내 자취방보다 훨씬 좋다”고 입을 모았다.

      작년에 매출 367억원의 매출을 올린 스타트업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한 층을 통째로 ‘모텔 전시장’으로 꾸미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지훈 프랜차이즈 사업부 팀장은 “스타트업이 강남에 이렇게 큰 전시관을 여는 것은 무도한 시도라는 시선도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좋은숙박연구소가 회사와 국내 숙박업계의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공간이라는 데엔 직원 모두가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다음 카페에서 출발한 야놀자가 지난 11년 동안 4000여개의 모텔과 제휴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일반 모텔업주와 공유해 더 좋은 숙박 문화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15년 전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텔과 인연을 맺었다는 이 대표는 “모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는 게 숙박업계 성장의 핵심이라고 판단했고, 좋은숙박연구소는 장기적으로는 숙박업 시장을 키우기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