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사는 법

[장석주의 일요일의 문장] 때때로 무위도식하는 호젓한 시간을 가지라

Shawn Chase 2016. 5. 31. 01:20

장석주 시인



입력 : 2016.03.25 15:00 “호젓한 시간의 호젓한 만(灣)을 만들어라"
“삶이라는 기적은 오직 시간 여행으로만 경험한다”

[장석주의 일요일의 문장] 때때로 무위도식하는 호젓한 시간을 가지라

“진리는 그 자체로 이미 시간 현상이다. 진리는 지속적인 영원한 현재의 반영인 것이다. 휩쓸려가는 시간, 쪼그라드는 덧없는 현재는 진리의 알맹이를 갉아먹는다.”-한병철 ‘시간의 향기’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하고 20만 년이 흘렀다. 선조들이 처음 나타나고 20만 년이 흐른 지금-여기 시간의 기슭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뇌에 남은 가장 오래된 기억의 잔해를 뒤져도 우리가 어떻게 이 지구에 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붉은 것(피, 내장, 심장)을, 아버지에게 흰 것(골수, 신경, 뇌)을, 그리고 신에게 숨결을 받”고, 지구 생명체의 일원으로 태어난다.(크리스티안 생제르)

우리는 저마다 인류의 전 역사를 안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인류의 전 역사다. 우리 뇌와 무의식 깊은 어딘가에 바코드와 같이 인류의 전 역사를 새기고 태어난다! 시간이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더듬고 쓰다듬으며 사람으로 키우고 빚어낸다.

삶이라는 기적은 오직 시간 여행으로만 경험한다. 다시 20만 년이 지난 뒤 또 다른 인류가 이 시간의 기슭에서 사랑하고 애를 낳으며 살아갈 것이다. 선조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이 지구를 내주고 떠나야만 한다.

어쨌든 인간은 시간을 살아내며 무엇인가가 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득히 먼 미래를 상상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먼저 난 자들은 노인이 되었다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시간을 초, 분, 시, 하루, 주, 달, 계절, 해 단위로 분절하고, 크고 작은 계획을 짜고 목표를 세우며, 갈망하는 것을 얻고자 삶을 단락짓는다. 삶이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미정형의 것에게 형태를 부여하고, 추상의 것들을 형태로 바꾸어 고정한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내며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음식은 부패하고, 건물은 낡아가며, 사람은 늙는다. 시간은 사람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사물과 현상, 제도, 가치, 금기, 이데올로기들의 출현에서 사라짐까지 늘 함께한다. 가장 짧은 시간은 순간이고, 가장 긴 시간은 영원이다.

시간은 순간에서 영원 사이에 걸쳐져 있으며, 사건의 경과 속에서 피상성의 표피를 찢고 번뜩이며 제 존재를 드러낸다. 시간은 저 너머로 흐르면서 궤적과 흔적을 남기는데, 지나간 시간은 과거로 퇴적하고 지층을 이루며 화석화한다. 오지 않은 시간, 도래할 수 없는, 도래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 미래는 무한과 영원을 향해 뻗어 있다. 무한과 영원을 수량화하거나 계측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닿을 수 없는 추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유한자원이다. 우리가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펼친다는 뜻이다.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시작과 끝, 실패와 성공을 겪으면서 삶을 빚는다. 시간은 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혹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행위와 무위 사이의 빈둥거리는 시간이 ‘나'를 느끼게 한다

“진리는 그 자체로 이미 시간 현상이다. 진리는 지속적인 영원한 현재의 반영인 것이다. 휩쓸려가는 시간, 쪼그라드는 덧없는 현재는 진리의 알맹이를 갉아먹는다.” 휩쓸려가는 시간은 모든 것들을 부서뜨리고, 깨뜨리며, 쪼그라들게 한다. 그 무진리의 시간은 세상의 자원들을 거머쥐며 약탈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것은 완만하게, 혹은 매우 급박하게 흐르며, 많은 것들을 고갈, 파괴, 소멸에 이르게 한다. 아무도 시간의 소실점 너머로 사라짐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시간도 함께 사라진다.

초봄의 햇빛은 환하고, 공기는 차갑다. 기분 좋게 맑은 날이니 걷기에도 딱 좋다. 나는 집 근처 북카페에 나와 커피를 마신다. 책을 뒤적이고 느적거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간간이 떠오르는 착상들을 종이에 끼적인다. 시간은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서 길게 늘어진다. 사람들은 같은 시간대에서 만나며, 이 만남에서 사랑이 싹튼다.

어디 사랑뿐인가. 우리는 모든 경험을 다 시간 속에서 겪는다. 시간은 우리의 안과 밖에서 우리를 그악스럽게 거머쥔 채 흐른다. 우리는 시간을 가로질러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곧 도래할 내일의 시간을 그려보는데, 이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점으로 응축해서 관조하는 행위다.

한 철학자는 “시간은 승리, 패배, 성취, 불만의 전반에 걸친 거대한 아르페지오를 연주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행위와 무위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의 호젓한 만(灣)에서 흘려보내는 이 시간이 ‘나’를 의미의 존재로 빚는다.

[장석주의 일요일의 문장] 때때로 무위도식하는 호젓한 시간을 가지라

◆장석주는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른 해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여름,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일요일의 인문학’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최근 40년 시력을 모아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시인 박연준과 결혼 식 대신 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