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기 기자
입력 : 2016.05.20 03:07
드론 100대로 불꽃놀이… 해발 1200m 무인 배송… 말라리아 예방위해 모기채집
'해가 지자 밤하늘에 색색의 불빛이 떠올랐다. 어두운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수놓는가 싶더니, 불빛들이 모여 나비의 날개와 같은 모양을 그려냈다.'
불꽃놀이가 아니다.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에서 반도체 회사 인텔이 드론(drone·무인비행체) 100대를 한꺼번에 띄워 연출한 '드론 100' 행사의 한 장면이다. 인텔은 드론을 세 무리로 나눠 각각 1대의 PC로 조종하고, 이를 또 다른 PC 1대로 총지휘하는 방식으로 100대의 드론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 배송용 드론(무인비행체)이 독일의 산악 지역에 있는 무인 물품 보관소에 접근하고 있다. 보관된 물품을 드론이 실어가고, 외부에서 이 지역으로 보내는 물건을 실어와 보관소에 맡긴다./DHL 제공
미 연방항공청(FAA)은 한 사람이 여러 대의 드론을 동시에 날리는 것을 안전상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인텔에 다중(多重) 비행 허가를 내줘 드론 100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브라이언 크루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면 드론 산업에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며 "스포츠 경기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드론 쇼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출범한 드론산업자문위원회 회장이다.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차기(次期)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드론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드론의 성능이 좋아지고 활용 분야도 운송, 제조업, 보건 등 다양한 분야로 넓어지고 있다.
◇드론, 날아다니는 스마트폰
IT 업계에서는 드론을 '날아다니는 스마트폰'이라고 부른다. 현재 IT 산업의 대표 제품인 스마트폰과 비슷한 기술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드론에는 촬영용 카메라, 지상의 조종자와 연결하는 통신 부품, 정확한 경로를 비행하기 위한 GPS(위성항법장치)나 자이로스코프(회전의) 등이 탑재된다. 촬영한 영상·사진을 담는 저장 장치와 각종 센서도 있다. 모두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자 IT 기업들이 드론을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응용프로세서(AP) 분야의 강자 퀄컴은 드론에 최적화한 AP인 '스냅드래건 플라이트'를 내놨다. 드론의 두뇌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품은 AP 기능은 물론이고 초고화질(4K) 영상 처리와 와이파이(무선랜)·블루투스 등 통신 기능을 하나로 모은 모듈(부품 덩어리)이다. 이를 활용하면 여러 기능을 가진 부품을 하나씩 따로 갖추는 경우에 비해 부품 수와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중국 텐센트 등이 올 초 스냅드래건 플라이트를 활용한 드론을 공개했다.
스마트폰 반도체에서 퀄컴에 밀렸던 인텔도 드론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올 초 독일 드론 벤처기업 '어센딩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16'에선 자사의 반도체를 탑재한 드론을 선보였다. 나무를 세워 무대를 숲길처럼 꾸미고, 그 사이를 달리는 자전거를 피해 드론이 비행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인텔의 장애물 회피 기술 '리얼센스'를 적용한 것이다. 리얼센스는 카메라가 공간을 3차원으로 인식해 각 물체까지의 거리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출시한 대용량 마이크로SD카드도 드론을 염두에 둔 제품이다. 초고화질 영상을 12시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용량이다. 드론을 활용한 항공 촬영이 확산되면서 대용량 저장 장치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본 것이다.
LG전자는 최신형 스마트폰 'G5'와 결합해 사용하는 드론 조종기 출시를 준비 중이다. 조종기에 G5를 끼운 뒤 드론을 조종하면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 G5 화면에 나타난다.
◇운송·보건·재난 구호까지… 팔방미인 드론
스마트폰이 산업 전반에서 '모바일 혁명'을 불러온 것처럼 드론도 IT 업계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쓰임새가 많아지고 있다. 가장 활발한 분야는 운송이다. 드론을 활용해 배송 효율성을 높이고, 자동차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도 손쉽게 물건을 보낸다.
물류 기업 DHL은 올 1~3월 독일에서 드론을 활용해 130여 차례의 배송 시험 비행을 했다. DHL은 해발 1200m의 산악 지역 마을 2곳에 무인(無人) 물품 보관소를 설치했다. 소비자가 이곳에 물건을 넣어 두면 드론이 자동으로 찾아 배송한다. 반대로 드론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싣고, 보관소에 가져다 두면 소비자가 찾아가는 방식이다. 산 아래부터 왕복 8㎞ 거리를 자동차로 배송하는 데 30분이 걸렸지만 드론은 8분 만에 배송을 마쳤다.
호주의 벤처기업 플러티는 지난 3월 미국에서 드론을 이용한 도심 택배에 성공했다. FAA의 허가를 받고 드론이 미국의 도심에서 물건을 배송한 첫 사례다. 프로펠러가 6개 달린 드론이 약 800m를 날아가 목적지인 주택 현관에 식량·약품 등이 든 상자를 정확하게 내렸다. 지난해 말에는 '유통 공룡' 월마트도 FAA에 드론을 활용한 배송 시험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드론의 활용 분야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저가 항공사 이지젯은 지난해 드론을 활용한 항공기 점검 기술 테스트를 마쳤다. 항공기 기체의 손상 부위를 드론으로 신속하게 찾아내는 기술이다. 항공기가 점검을 받느라 운항하지 못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기 채집 기능이 있는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말라리아처럼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을 연구하고 예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KT가 지난해 드론을 활용한 재난망 서비스를 시연했다.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 곳에서 조난자가 발생했을 때 기지국 시설을 갖춘 드론을 보내 통신망을 임시로 복구하는 것이다.
스포츠로서 드론 경주 대회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 드론 경주대회 '월드 드론프리(World DronePrix)'에서는 한국 초등학생 김민찬군이 우승했다.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은 오는 8월부터 드론 경주대회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드론은 본래 적지에 은밀하게 접근해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군용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군의 드론 '프레데터(predator)'는 정찰뿐 아니라 폭격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활약했다. 미군은 9·11 테러 주범 빈 라덴의 사살 작전을 구상할 때도 프레데터 투입을 검토했었다.
민간 분야의 드론 이용이 늘면서 미 정부는 기업과 협의하며 드론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FAA는 이달 초 연구·교육용 드론은 사전 허가 없이 비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유통업체 아마존은 지난해 미 항공우주국(NASA)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드론 고속도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지상 200~400피트(약 61~122m) 고도를 드론 고속도로로 지정하자는 제안이다. 이 고도는 빠른 속도로 장거리 비행하는 드론이 이용한다. 아마존은 이보다 낮은 고도는 조종자의 시야 안에서 저속으로 비행하는 드론, 높은 고도는 유인(有人) 항공기가 다니는 구간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법규는 아직 드론 산업을 키우기엔 너무 규제 위주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대 항공우주공학과 홍성경 교수는 "조종자의 시야 안에서만 비행이 가능하고, 촬영 목적일 경우 국방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의 규제가 있다"며 "취미용 드론 정도가 가능할 뿐 산업용으로 활용하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 DHL의 물품보관소 근처에 사는 주민이 드론이 배송해 준 물건을 찾아가고 있다.
- ▲ 인텔이 이달 초 미국에서 진행한 ‘드론100’ 행사에서 드론들이 밤하늘에 날개 모양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다. 인텔은 컴퓨터 4대로 100대의 드론을 동시에 조종했다. /인텔 제공
- ▲ 3월 열린 LG전자 개발자 대회 참가자가 드론 조종기 ‘스마트 콘트롤러’를 사용하고 있다. LG전자는 연내 스마트폰 G5와 연동하는 드론 조종기를 출시할 예정이다./LG전자 제공
- ▲ KT의 재난 통신망 시연회에서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를 탑재한 드론이 조난자에게 접근하는 모습. 드론으로 임시 통신망을 만들어 깊은 산 속에서도 휴대전화로 조난 신고를 할 수 있게 했다./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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