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1) 누리호의 하늘길 밝힌다

Shawn Chase 2022. 4. 13. 22:53

대전=고재원 기자 입력 2022. 04. 13. 17:10

 

덕산넵코어스, 누리호 위성항법 수신기 개발

누리호에 쓰인 위성항법 수신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덕산넵코어스 제공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오는 6월 두 번째 시험 발사에 나선다. 누리호는 지난해 10월 첫 시험 발사에 나섰지만 3단 액체 엔진이 충분한 추력이 나오지 않아 모형위성을 최종 궤도에 진입시키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1단과 2단이 목표한 성능을 냈다는 점에서 아쉬운 실패라는 평가가 많다. 누리호가 이번 재도전에서 싣고간 검증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으면 한국은 자국에서 자국이 개발한 발사체로 위성을 쏘아올리는 명실상부한 독자 우주개발 역량을 갖추게 된다. 누리호 개발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해 크고 작은 30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는 지난해 이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는 한국의 강소 우주기업을 소개하는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 시리즈 2를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독자 우주개발의 꿈을 함께 키우는 도전적인 기업들을 소개한다. ##

1980년대 첫 등장한 차량 내비게이션은 이제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자동차는 물론 트래킹이나 자전거를 탈 때도 이제는 내비게이션이 활용된다. 도로 상황을 파악해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 모르는 길도 수만 번 다닌 길처럼 안내한다. 최근에는 증강현실(AR)을 결합하거나 교통신호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등 신기술이 적용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비단 지구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에서도 발사체의 길을 찾아줄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발사체에 들어가는 내비게이션에도 우주에서 위성 신호를 수신해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는 위성항법 수신기 개발이 요구된다. 극저온과 진공 등 우주에서 접하는 극한 환경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개발해야 하는 우주 내비게이션에서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6월 15일 두 번째 발사를 앞두고 있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에는 국내에서 개발된 위성항법 수신기가 장착됐다. 국방 위성항법기술 전문기업이자 자동차 내비게이션 개발 1세대 기업인 덕산넵코어스가 개발했다. 지난 3월 18일 대전 유성구에서 만난 주정갑 덕산넵코어스 전자전그룹 선임연구원은 “한양네비콤을 전신으로 두고 있는 덕산넵코어스의 위성항법 기술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소형 발사체와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덕산넵코어스 관계자가 위성항법 수신기에 대한 전자파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누리호는 길이 47.2m, 무게 200t인 3단형 중소형 발사체로 무게 1.5t의 인공위성을 600∼800㎞인 지구 저궤도(LEO)로 실어나를 목적으로 개발됐다. 누리호는 발사 직후 시속 2만 7000km의 맹렬한 속도를 내며 날아가는데 발사 후 몇 초면 시야에서 금새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관제소에서는 누리호가 예상 궤도로 나아가고 있는지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장치가 차량에도 사용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다. 위성이 쏘는 신호를 측정해 누리호 현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는 원리다. 덕산넵코어스가 개발한 위성항법 수신기도 GPS 위성들이 보낸 신호를 포착하고 분석해 누리호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낸다. 만에 하나 이 장치가 고장나면 자칫 누리호는 '우주미아'가 될 수도 있다.   

주 선임연구원은 “누리호에는 120도마다 안테나 3개와 수신기 1개가 달려있다”며 “이들 장비는 서로 다른 정보를 수신해 항법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리호는 GPS를 기반으로 한 항법 장치와 함께 설정된 위치로 유도하는 관성항법 장치를 활용해 비행한다”며 “이중 보호 장치처럼 둘 중 하나가 고장이 나도 실제 비행에는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는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덕산넵코어스는 위성신호 수신 기술에서 오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전신인 한양네비콤은 1996년 설립된 회사로 2012년 넵코어스로 이름을 바꿨다. 회사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축적한 기술을 장갑차와 무인수상정, 다련장로켓 천무, 대공미사일 천궁에 적용하고 있다.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 때도 개발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지상에서 발생하는 다른 신호나 다른 위성이 쏘는 신호를 막아내는 ‘항재밍’ 기능,  또 항재밍을 테스트할 기술도 갖추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주목받는 자율주행차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활용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시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전문기업이 덕산그룹이 지난해 3월 넵코어스를 인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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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선임연구원은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극저온이나 진공과 같은 극한의 우주 환경에서도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고 이를 검증하는 게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 분야는 방산품보다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일반 부품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새로운 부품과 함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술이 우주 환경에서 안정된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시험이 가능한 협력사를 찾고 시험방법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위성항법 수신기와 안테나를 큰 진동과 충격에 견디도록 만드는 것도 숙제였다. 이들 장치가 누리호 3단 상단에 설치되다보니 누리호 발사와 1단 분리, 2단 분리 때 킥모터가  발생하는 진동 충격을 견뎌야 한다.  주 선임연구원은 “이런 조건은 방산품 생산에서 요구하는 조건보다 훨씬 까다로운 수준”이라며 “초반에는 관련 문제점이 많이 발생했지만 칠전팔기 노력 끝에 조건들을 만족하는 제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누리호 지난 1차 발사 때에도 위성항법 수신기에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왼쪽을 보면 덕산넵코어스 본사 내 국방항공 우주 관련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덕산넵코어스 전자파실험을 진행하던 관계자들. 사진 속 가장 오른쪽이 주정갑 선임연구원이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주 선임연구원은 대학에서 전파공학을 전공한 뒤 약 11년간 덕산넵코어스에서 일했다. 회사는 아직은 우주 분야 사업이 많지 않다보니 관련 사업이 생길 때마다 평소 각 파트에서 활동하는 경험이 많은 연구개발(R&D) 인력을 모아 팀을 구성해 유연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손석보 덕산넵코어스 연구개발(R&D) 본부장은 "덕산그룹이 지난해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 자금력 상황이 나아지며 우주사업 관련 인력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우주사업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덕산넵코어스 지난해 약 307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2020년은 약 374억원, 2019년 약 325억원, 2018년 약 351억원을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 꾸준한 매출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LIG넥스원이나 한화 등 체계종합 기업들을 통해 해외 수출을 하거나 국방사업에 참여해 얻은 매출이다.  

덕산넵코어스는 누리호 사업 참여로 우주에서도 안정된 동작을 하는 위성항법장치를 개발한 기업으로 인정받으며 우주 분야 사업의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또 다른 우주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총 예산이 3조7200억원에 달해 건국 이래 가장 큰 연구개발(R&D) 사업이자 우주개발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KPS)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해호 덕산넵코어스 대표는 “초정밀 위성항법장치 분야에서 20년 이상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형위성 발사체는 물론 자율주행차, UAM에 적용할 항법장치 상용화에 나섰다”며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우주항공 전문회사로 도약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대전=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