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각별 관심
보급 대수 세계의 절반
선진국 자동차사들은
수소차 연이어 포기
수소경제 정말 중요하지만
우선순위 재검토 필요
입력 2022.04.13 00:00
현대차, 글로벌 수소차 판매 3년 연속 1위…점유율 53.3% 차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7일 인천광역시 서구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투자 예정지에서 열린 수소경제 성과 및 수소 선도국가 비전 보고와 차세대 수소연료전지 특화단지 기공식을 마친 후 현대모비스가 독자 개발한 수소연료전지 파워팩 내장 도심형 근거리 콘셉트카 'M 비전2GO'를 시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2050년이면 국내 에너지의 3분의 1을 수소가 담당한다는 것이 정부 예측이다. 세계적으로도 수소 에너지 비율이 4분의 1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 있다(블룸버그 NEF). 탄소 중립으로 가려면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 수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제철, 시멘트, 항공 등 수소를 쓰지 않으면 탈탄소가 어려운 산업 분야도 있다.
수소 시대로 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탈탄소 에너지(태양광·풍력, 원자력)로 만든 청정수소의 확보다. 한국은 태양광·풍력 자원이 부족해 필요 수소의 80%를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호주, 칠레,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생산한 청정수소를 액화하거나 수소합성물(암모니아 등)로 전환시켜 들여오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초저온 단열의 특수 선박이 필요하다. 수소 하역·저장·전환 설비와 활용 공장들을 집결시킨 항만 공단도 곳곳에 갖춰야 한다. LNG 관망 비슷한 수소 보급 인프라도 필요하다. 30년 사이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다.
수소를 석탄·석유 같은 채굴 자원으로 보면 안 된다. 인프라 산업이자 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제조업 생산품이다. 기술 선도국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일 긴급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수소경제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의아한 부분이 있다. 정부가 청정수소의 생산·확보·유통보다는 수소경제 생태계의 수요 측 끝단인 수소차 보급에 과도하게 매달린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작년 8월 수소경제정책관(국장) 자리를 신설했다. 정부 내 수소경제 주무 조직이다. 여기서 올해 수소의 생산·유통·저장·충전·안전 등 10개 기술 개발 사업에 투입하는 돈이 790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환경부가 수소차 구매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 구축에 쓰는 예산은 8900억원에 이른다.
수소차 보급에 열중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작년 연말 기준 국내 수소차는 1만9000대라고 한다. 상당수가 관용차일 것이다. 최근 3년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혼다 등은 최근 1~2년 사이 수소차를 포기했다. ‘미라이’ 모델로 현대차 ‘넥쏘’와 경쟁했던 도요타도 수소차를 접었다는 해석이 있다. 현대차도 작년 11월 3세대 연료전지 개발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연료전지는 수소차의 심장이나 마찬가지다. 그 기술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주행 거리가 길고 충전 시간이 짧은 장점이 있다. 반면 에너지 효율은 전기차의 2분의 1, 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는 수소차 연료전지(fuel cell)를 ‘바보 전지(fool cell)’라고 불렀다. 수소 충전소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충전소를 짓기도 힘들다. 국내 전기차 충전기는 10만기를 넘지만, 수소차 충전기는 170기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가 수소차 홍보 모델’이라면서 수소차를 지원해왔다. 수소차 시승(2018년 2월), 프랑스 수소 택시 충전소 방문(2018년 10월), 연료전지 공장 기공식 참석(작년 10월) 등에 나섰다. 전기차는 정부·지자체 구매 보조금이 900만~1500만원인데 수소차는 3250만~400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올 1~2월 수소차 보급 대수는 1900대에 머물러 연간 보급 목표(2만8000대)와는 큰 거리가 있었다. 전기차의 배터리 기술 향상으로 수소차 장점(주행 거리, 충전 시간)도 차츰 잠식돼가는 분위기다. 다만 장거리 운행 대형 버스·트럭에서는 수소차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정해진 지점을 정기 운행하는 상용차라면 충전 설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수소차 집착에 이해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수소경제 생태계가 굴러가려면 수소 에너지 생산, 보급만 아니라 활용, 소비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청정수소를 사겠다는 수요처가 있어야 생산·공급 기업도 지속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수소차의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연 1조원 가까운 보조금을 써가며 인위적으로 시장을 유지시켜야 되는 건지 납득하기 힘들다. 특정 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점도 있다. 물론 수소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수소차를 발판 또는 희생타로 삼는 전략도 있을 수는 있다. 수소차 연료전지는 청정 발전 또는 공장·가정 에너지 설비로도 역할을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수소차 회의론의 걱정을 덜어줄 만큼 정책 합리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수소차가 일정 수준 이상 보급된 다음엔 다시 되돌리려 해도 큰 혼란이 불가피해진다. 신정부에서 수소차 지원의 타당성과 수소경제의 우선 순위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