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3월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20대 대통령선거 패배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거치며 탄생한 정권이 5년 만에 교체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0.73%포인트 차이(24만7077표)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당선인에게 패했다. 득표율 격차가 채 1%포인트도 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며 ‘승복 선언’은 지난 3월 10일 새벽 4시 무렵에야 나왔다. 이 후보는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윤석열 당선인께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비록 선거에서 이 후보가 패배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지지율 격차는 확연히 줄었다. ‘정권교체’라는 구도에 맞서 ‘정치교체’를 내세운 이 후보의 예상 밖 선전과 선거 막판 지지세력이 결집한 결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권교체’는 맞지만 ‘정권심판’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후보 역시 선거결과를 두고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니다”며 다시 한 번 지지층을 끌어안았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 후보의 정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대선 역사상 가장 작은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며 결과에 대한 분석이 더욱 중요해졌다. 초박빙 결과는 승자에게 경고를, 패자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의 극단적 분열만 보여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정권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 구도로 승패가 갈리면 선거결과를 더욱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정권연장을 방해한 세력에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끗 차이로 승부가 나면서 ‘범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양당 체제’라는 기득권에 막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정의당에 패배의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재명 후보가 밝힌 것처럼 패착은 민주당과 이 후보한테서 먼저 찾는 것이 순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3월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민주당의 이재명, 이재명의 민주당
“이 후보보다 부동산, 조국 사태 때문에 정권과 민주당이 싫었다.”(최호진씨·33·부산 진구)
이 후보는 선거유세 기간 동안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점퍼를 갈아입기에 바빴다. 호남에서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김대중 정신’을 강조하고,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식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대선을 지배한 구도가 ‘정권교체’를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일부 국민에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분명 심판의 대상이었다.
이런 구도는 여론조사결과 공표를 금지하기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분명히 확인됐다. KBS, MBC, SBS 방송 3사가 (주)한국리서치, 입소스 주식회사,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 3월 1~2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54.5%에 달했다. 반면 “정권 연장을 위해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35.8%에 그쳤다. 해당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과 이 후보 지지율은 각각 34.5%, 37.1%였다(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2.2%포인트). 정권 연장 필요성, 민주당 지지율, 이 후보 지지율 등 세가지가 동기화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 평가와 이 후보 지지율 사이에는 보다 복잡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3.4%에 달했다. 이는 해당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이 얻은 지지율 42.1%보다 높은 수치다. 결국 문 대통령 지지여론은 이 후보 지지로 온전히 이어지지 않은 반면 정권교체를 앞세운 비판 여론은 이 후보가 고스란히 흡수했다.
이 같은 상황은 대선 과정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반복됐다. 이 후보는 두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정부, 민주당, 후보가 더욱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과 전면적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처음 이 후보는 ‘이재명이 당선돼도 정권교체’라며 중도 확장 전략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지적된 ‘부동산 문제’, ‘인사 검증 문제’ 등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사과했다. 대선 전 마지막 주말 유세에서도 “부동산 정책 잘못했다. 저도 인정한다”며 “이재명이 이끄는 실용통합정부는 여러분이 겪고 계신 부동산과 관련한 많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안타깝지만 인사 문제나 조국 사태 이런 데서 우리의 잘못에 대해선 관용적 태도를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시에 ‘당’보다는 ‘능력’을 전면에 내세워 정권교체라는 ‘구도’에 맞설 ‘인물론’을 띄웠다. 이는 토론회 등에서 윤 당선인에 대한 비교우위를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이 후보의 행보를 민주당이 지켜만 보는 모양새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당 차원의 사과나 쇄신방안 등은 제시되지 않았고, 여전히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이냐’는 적극 지지층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 열세 상황이 이어지자 이 후보 역시 차별화와 지지층 결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후보보다 민주당과 정권이 싫다는 중도층 유권자를 공략하지도 못했고 민주당 및 정부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도 완벽히 결집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이 후보는 민주당 후보이면서 정권교체 여론에 편승하는 일종의 ‘자해전략’을 썼다가 선거 막판에 이를 수습하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차라리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치겠다고 하고, 문재인 정부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선거전략 측면에서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역시 아집·독선을 떨쳐내야 한다”며 “언제까지 우리만 옳다,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3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3월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 송영길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