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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로켓팀이 버린 자료도 뒤졌다, 누리호 부품 37만개 국산화

Shawn Chase 2021. 10. 25. 22:36

누리호 발사 이끈 세 주역, 그리고 300개 기업 엔지니어 500명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최인준 기자

입력 2021.10.25 03:00

 

지난 21일 한국이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고흥 나로우주센터를 떠나 우주로 날아갔다. 마지막 위성 모사체의 궤도 진입은 못 했지만 1단 로켓의 엔진 4개를 한 치 오차 없이 동시에 작동시키는 클러스터링과 로켓 고공 점화 등 핵심 기술은 첫 시험에서 완벽하게 성공했다. 외신들은 “한국이 첫 발사 시험에서 한 걸음 부족했지만 자력 위성 발사국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1년 7개월 동안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국내 300여 기업의 엔지니어들이 숱한 난관을 극복한 결과다.

◇쓰레기통 뒤져가며 부품 국산화 이뤄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2010년부터 누리호 개발 연구를 이끌었다. 그는 미국 텍사스A&M대에서 위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0년 항우연에 오면서부터 로켓 연구에 뛰어들었다. 고 본부장은 “미국에선 외국인에게 로켓처럼 민감한 연구는 맡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리호 발사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개발진

고 본부장은 한국 로켓 개발의 산증인이다. 지난 2000년 한국 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인 과학로켓(KSR) 3호 개발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나로호 공동 개발, 이번 누리호까지 20년 넘게 발사체 연구에만 매달렸다. 그는 나로호 개발 당시 러시아 엔지니어가 흘리고 간 종이를 주워 밤새워 번역하고 버린 기름까지 분석했다.

로켓 부품과 소재는 모두 직접 개발했다. 낯선 부품과 소재를 만들어줄 기업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결국 누리호에 들어간 부품 37만개 중 압력 센서, 온도 센서처럼 기성품을 쓸 수 있는 것을 빼고는 94.1%를 국산화했다. 그는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마지막 남은 계단을 꼭 넘겠다”고 말했다.

 

◇무시하던 러시아, 공동 개발도 제안

 

김진한 항우연 발사체엔진개발단장은 누리호 개발의 최고 난관인 액체 연료 로켓 상용화를 이끌었다. 김 단장은 나로호 사업부터 로켓 엔진 개발에 참여해 지난 2018년 75t 엔진 시험용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세계 일곱 번째 성과였다. 독자 기술로 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데 해외에서 평균 10년이 걸리는데 한국은 7년 반 만에 실제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누리호의 핵심 동력인 75t 엔진 개발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지상 연소 시험 도중 설비가 폭발해 고장이 났고, 엔진도 연소 불안정으로 여러 차례 터졌다. 이 때문에 발사 일정을 두 차례 미뤄야 했다. 결국 20차례 넘게 로켓 엔진 설계를 새로 바꾸고, 184회 1만8290초의 연소 시험을 하며 엔진 완성도를 높였다. 김 단장은 “나로호 사업 당시만 해도 ‘한국이 로켓을 만드는 게 사실이냐’며 무시하던 러시아 연구진이 액체 연료 로켓 상용화 이후 공동 개발을 제의할 정도로 우리 기술력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300기업 엔지니어 500여 명 참여

 

누리호 개발에는 300여 국내 기업의 엔지니어 500여 명도 참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조립을 총괄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로켓 엔진, 두원중공업은 탱크와 동체 개발에 참여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손을 잡았다.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주축이 돼 구축했다. 총사업비의 약 80%(약 1조5000억원)가 국내 산업계에 집행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우주 산업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엔지니어들은 외국 기업과의 경쟁을 이겨냈던 독창적 아이디어와 놀라운 개발 속도를 누리호에도 십분 발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지니어들은 처음 조립에 6개월이 걸리던 75t 엔진 제작 기간을 3개월 이내로 줄였다. 이제 1년에 엔진 최대 13기를 조립할 역량을 갖췄다. KAI 엔지니어들은 작업자들이 실수 없이 발사체를 조립할 수 있도록 누리호의 둥근 동체를 돌려가며 볼 수 있는 대형 링 형태의 작업대를 처음 개발했다.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발사대는 냉각수 공급량이 러시아 기술로 만든 나로호 발사대의 2배, 추진제는 3배 규모다. 강선일 항우연 발사대팀장은 “발사대 개발에 참여한 협력 업체가 도중에 도산하면 개발하던 장비를 밤새워 옮겨 다시 작업을 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