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레깅스 입고 잠수교 러닝... 미모의 쇼호스트 정체는

Shawn Chase 2021. 9. 1. 20:57

롯데홈쇼핑, 가상 쇼호스트 ‘루시’ 공개
“피부 솜털까지 구현”

정채빈 기자

입력 2021.09.01 19:50

 

롯데홈쇼핑이 선보인 가상 모델 '루시'./루시 인스타그램

롯데홈쇼핑이 선보인 가상 모델 '루시'./루시 인스타그램

막 찍어도 화보에, 수화로 상품설명도 하는 다재다능한 인플루언서가 탄생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만명을 보유한 이 인플루언서의 이름은 루시다. 루시는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9월부터 자체 개발한 가상모델로, 올해 2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1일 롯데홈쇼핑은 국내 최고의 메타버스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업해 가상모델 루시를 쇼호스트로 발전시키는 등 메타버스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루시 인스타그램

롯데홈쇼핑은 실제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피부의 솜털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교하게 루시를 개발했다. 인스타그램 속 루시는 ‘불금용 드레스’를 선보이고, 잠수교에서 러닝을 하기도 하며, 바람을 맞으며 ‘따릉이’를 타기도 한다.

루시는 기존의 가상 인플루언서들 보다 더욱 실제 인간에 가까운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인공지능 기반 음성 표현 기술을 적용하는 등 루시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음성까지 더해져 앞으로 가상 상담원, 가상 쇼호스트로 활동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올해 안으로 루시는 홈쇼핑 방송에서 수화를 통해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롯데홈쇼핑 측은 밝혔다.

 

/루시 인스타그램

최근 가상 인플루언서들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상 인플루언서는 코로나 방역지침에서 보다 자유롭게 홍보 활동을 할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한 보험사의 TV광고로 얼굴을 알린 ‘로지’ 또한 가상 인플루언서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수영장, 호텔 등을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출생, 나이는 영원히 22세… 가상인간 로지의 탄생비화

[논설실의 뉴스 읽기]
‘로지’ 만든 백승엽·이유리나
“MZ세대와 인스타 소통이 성공비결”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1.08.06 03:00

 

보험사 신한라이프 광고에 발탁된 가상 인간 로지. / 신한라이프 제공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 법인 ‘신한라이프’ 출범을 석 달 앞둔 지난 4월, 이 회사 브랜드팀과 광고대행사 TBWA의 담당 직원들은 매주 회의를 거듭하며 머리를 싸맸다. 새 출발 하는 대형 보험사가 젊은 세대의 주목을 받으려면 역동적이고 참신한 광고를 내보내야 하는데 광고 콘셉트에 걸맞은 모델을 좀처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미투 등 유명 연예인들의 추문이 줄줄이 터져 나올 때였다. 신선하고 물의 빚을 걱정도 없는 가상 인간을 써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한라이프 송정호 브랜드팀장은 “가상 인간으로 기대했던 수준의 광고를 제작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도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신한라이프'광고 모델인 가상 인간 '로지'가 출현한 광고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500만뷰를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가상인간의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인스타그램 rozy.gram

7월 1일. 통합 법인 출범과 함께 신한라이프 TV 광고가 전파를 탔다. 발랄하게 춤추는 20대 여성을 보고 “신인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가상 인간이었다”며 기사가 쏟아졌다. 유튜브 조회 수가 1000만을 넘어 이제 총 1500만 뷰에 달한다.

이름 오로지. 나이는 영원히 22세. 출생지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벤처 1세대 김형순씨가 이끄는 컨텐츠 기업 로커스의 자회사다. 로커스는 광고, 게임 시네마틱, 영화 등의 VFX(시각특수효과) 분야에서 업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며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직접 제작한다. 로커스의 마케팅 총괄 이사를 겸하는 백승엽(50) 대표와 게임 시네마틱 영상 등을 연출하던 이유리나(34) 감독이 벤처 창업하듯 자회사로 옮겨와 만든 야심작이 가상 인간 로지다.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가상 인간 로지 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승엽 대표, 차아영 CD, 로지, 김진수 이사, 이유리나 감독, 이민혜 작가. 이 사진을 촬영한 후 3D 합성을 통해 로지를 구현했다. 2021.8.3/ 고운호 기자

-왜 가상 인간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2018년 영국의 가상 모델 슈두가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발망의 가을 컬렉션에 등장하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외국에서는 가상 인간을 활용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활발한데 정작 IT 강국 한국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1년 정도 구상했고 2020년 1월부터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제작하는 데 오래 걸리나요.

“3D 제작 과정이 6개월 걸렸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얼굴을 만들어 내느라 제작 기간 절반은 얼굴 구상하고 만드는 데 쏟았습니다. MZ 세대에게 호감 주는, 약간 중성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얼굴을 만들려고 국내외 유명인 얼굴을 두루 봤고 사진 형태로 이미지를 만든 뒤 이를 토대로 얼굴 3D를 제작했습니다. 거기에 피부 질감 만들고 머리 심고 몸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대개 기본 표정을 54개 정도 만드는데 우리는 감정을 좀더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800개가량 만들어 두었어요.”

-LG전자의 래아를 비롯해 국내에도 가상 인간이 여럿 있습니다. 로지가 주목받게 된 비결이 뭔가요.

“가상 인간 제작 기술은 몇 년 전부터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습니다. 국내 3D 스튜디오에서도 제작 가능하고 이제는 사람과 닮았다는 ‘기술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로지는 단순한 가상 인간을 넘어서 자신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구축하고 SNS에서 젊은 세대와 소통하면서 ‘국내 첫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차이점입니다. 작년 8월 로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 때 가상 인간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완전 멋져요” “매력 있어요” “인테리어도, 스타일도 너무 내 스타일”이라는 댓글이 붙으면서 3개월 만에 팔로어가 1만3000명 됐습니다. 작년 12월 30일에야 가상 인간임을 공개했지요. 그 후에 팔로어가 1만명 더 늘었고 올 7월 신한라이프 광고가 나간 뒤 한 달 만에 2만명 넘게 늘어 팔로어가 총 4만4000명 됐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169개 있고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댓글도 일일이 답하는 걸 봤습니다. 주된 활동 공간이 인스타그램인 거지요.

“아무 사진이나 막 올리는 건 아닙니다. MZ 세대에 다가갈 방법이 무얼까를 고민한 끝에 패션, 여행, 환경, 일상생활로 테마를 4개 정하고 그에 맞춰 스토리 있는 사진을 제작해 올립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혔지만 가상 인간이니 세계 곳곳을 다니고, 하늘 위, 바다 밑도 자유자재로 누비면서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킵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주당 1~2개 꾸준히 올립니다. 이런 사진 한 컷 만드는 데 2D, 3D 작업 포함해 이틀 정도 걸리고 작가와 아티스트를 포함해 인력도 여럿 필요합니다. 로지팀원 대부분이 실제 로지 나이와 비슷한 20대 초중반 여성이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냅니다.”

-TV 광고로 유명세를 타기 전에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지요?

“영국의 가상 모델인 슈두는 한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로지는 아프리카 의상을 입은 사진을 3개월간 각각 제작해 같은 날 하나로 붙여서 인스타그램에 동시 공개했습니다. 우리 로지는 아직 신인이라 슈두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상 모델과 패션 화보를 촬영하면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시도한 것이지요. 가상 인간들이니 굳이 만나지 않고도 한 공간에서 촬영한 듯한 사진을 내보낼 수 있었어요. 슈두 측에서 한 번 더 협업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나라 진짜 모델 아이린과 함께 ‘액추얼과 버추얼의 만남’ 화보도 찍었습니다.”

가상인간 슈두와 로지/ 인스타그램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처럼 로지와 음성 인터뷰도 할 수 있나요?

“올해 안에 목소리를 내려고 로지에 맞는 음성을 찾고 있습니다. 다만 이루다처럼 AI 기반으로 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데이터가 없어 섣불리 갔다가는 사람들이 유도하는 대로 엉뚱한 대답을 해 논란을 야기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로지의 활동 계획은?

“올해 2~3월만 해도 로지를 알리려고 여기저기 전화해도 별 반응이 없었어요. 신한라이프 광고가 나간 뒤 70건 넘게 광고 제안을 받았지만 다 소화할 수는 없지요. 광고를 2건 더 찍었고 추가로 2건 더 준비 중입니다. 가상 인간을 쓰면 앞서간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 그런지 패션, 자동차, 친환경, 디지털 경영에 관심있는 기업 등에서 연락이 많이 옵니다. 연내에 가상 남성도 만들 계획인데 무조건 제일 먼저 쓰겠다는 광고주도 있습니다.”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발탁된 가상 인간 로지. /신한라이프

-사람 닮은 로봇이나 가상 인간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도 있던데 로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까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은 1970년대에 나온 것입니다. 소통이 잘 안 되니 호감도가 떨어지는 골짜기에 빠지는 건데 지금은 기술 수준이나 소통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MZ 세대는 가상 인간을 나와 다른 ‘버추얼’로 보는 게 아니라 나와 소통하는 ‘인플루언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로지가 가상 인간임을 밝힌 이후에도 변함없이 찾아주는 인스타 친구들이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힘입니다. 상업적 목적에만 치중하기보다 앞으로도 쭉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쳐 보이면서 MZ세대와 잘 통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굳건히 자리 잡게 할 계획입니다.”

조만간 기업들이 실제 인플루언서보다 가상 인플루언서에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지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로지만 해도 첫 TV 광고를 찍을 때보다 광고료가 2배 넘게 뛰었다. 로지 같은 가상 인간이 유명해지고 돈까지 많이 번다면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지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로지 제작진을 만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외모를 싹 뜯어고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연예인은 ‘진짜 인간’, 현대과학의 힘으로 외모가 만들어지고 제작진의 집단 지성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가상 인간은 ‘가짜 인간’이라고 구분짓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무엇보다 로지가 유명해지고 바빠지면서 로지 운영팀이 점점 늘어난다. 콘텐츠 산업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로지가 세계적인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성공해 돈도 많이 벌어들이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내길 바라기로 했다.

[팔로어 540만, 年수입 130억원… 인간 뺨치는 가상인간들]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나 유튜브 등에서의 유명인을 뜻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기업 마케팅에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는 실제 인간 아닌 가상 인간까지 인플루언서로 활동한다. 이를 ‘버추얼(virtual·가상의) 인플루언서’ 또는 ‘CGI(컴퓨터로 만든 이미지)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 온라인 매체 버추얼휴먼스(virtualhumans.org)에 게시된 전 세계 가상 인간만 100명이 넘는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숫자로는 브라질의 ‘루’(팔로어 540만명)가 세계 1위다. 루는 브라질의 대형 유통업체 마갈루에서 2009년부터 활용한 가상 인간인데 브라질에서만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LA에 사는 19세 팝가수 릴 미켈라(팔로어 303만명)다. 브라질계 미국인 미켈라는 2016년 등장해 이듬해 신곡도 내고 프라다·지방시 같은 유명 패션 브랜드 모델로도 활동했다. 2018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방탄소년단 등과 함께 뽑혔다. 지난해 130억원(약 1170만달러) 넘게 번 것으로 추산된다. 릴 미켈라는 미국의 신생 기업 브러드(Brud)에서 만들었는데 이 회사는 사치스러운 백인 여성 버뮤다(팔로어 29만명), 섹시한 남성 블로코22(팔로어 15만명)도 제작해 내놓았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성향의 버뮤다가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해킹하고, 또 둘이 화해했다면서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화제거리를 계속 생산해낸다.

제일 유명한 가상 남성은 미국 애틀란타에 사는 21세 청년 녹스 프로스트(팔로워 73만명)다. 지난해 코로나가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젊은이들에게 코로나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녹스 프로스트에 맡겼다.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2017년 등장한 아프리카계 슈두(팔로어 22만명)다. 영국의 사진작가 캐머런-제임스 윌슨이 “실제 모델로 패션사진 찍는 데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면서 만든 가상 인간이 슈두다. ‘세계 최초의 가상 수퍼모델’ 슈두에 이어 6명의 가상 모델을 더 만들어 아예 가상 모델 대행사까지 차렸다. 이 회사에는 준영이라는 한국 이름의 남자 가상 모델도 있다. 일본에서는 분홍색 단발머리가 특징인 이마(팔로워 34만명)가 이케아 점포 모델로 기용돼 눈길을 끌었다.

연예인도 유명세가 다르듯 가상 인간도 마찬가지다. 등장한 지 몇 년 지나도록 별 주목을 못 받는 무명들도 있다. 2018년 두바이에 등장한 라일라 블루는 중동 최초의 가상 인플루언서로 눈길을 끌었지만 3년 넘도록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000명이 안된다. 나라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에 대한 활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