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추미애, 타협 없는 개혁 직진…‘외골수’ 성향 강해 세력확장 한계

Shawn Chase 2021. 8. 27. 07:46

심우삼 

2021.08.27. 05:00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피아 구분’이 확실하다. ‘개혁’을 ‘암구호’로 적군과 아군을 칼같이 가른다. 개혁은 추 전 장관 제일의 정치 목표다. 그래서 개혁을 명분으로 내건 이상 싸움을 거는 것도, 싸움에 응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아무리 심한 내상을 입어도 좀처럼 후퇴하지 않는다. 외려 “악의 부활은 더 큰 악이 된다”는 드라마

속 대사를 ‘정면 돌파’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그는 피아 식별 능력만큼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평시에도 전시를 방불케 하는 ‘전투태세’는 통합과 화합의 가치와 거리가 있다. 독선적 태도로 적진이 아닌 아군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혹평도 받는다. 개혁은 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단어다. 추 전 장관이 대선 출마에 앞서 출간한 대담집의 제목은 ‘깃발’. ‘개혁의 깃발’과 ‘점령군의 깃발’이란 극과 극의 평가 속에서 과연 그는 지지층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까.

© 제공: 한겨레

5선·당대표·장관 ‘화려한 이력’…개혁성과 강한 소명의식까지

그의 정치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소임이 주어졌으니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고, 의미가 있으니 돌진을 불사한다. “하늘의 뜻에 자신을 아무 계산 없이 던졌다”는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 다르크’를 떠올리는 것도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태도 때문이다. 추 전 장관의 무기는 ‘선명성’이다. “세상의 모순을 바꾸지 못하면 무기력함을 느낀다”는 그는 자신이 ‘소명’이라고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세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결국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시도가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무산됐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도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없다”며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추 전 장관은 자신이 옳다고 믿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며 “이슈를 선점하고 추진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득권에 대한 비판의식,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특유의 반골 기질은 아버지를 빼닮은 것이라고 한다. ‘세탁소 주인’으로도 유명한 그의 아버지는 20대 시절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맞서 대선에 출마한 신익희 선생의 선거 유세에 참여했고, 잠깐 대구지역 민선의원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아버지가 어린 자식들을 앉혀놓고 유신 정권과 독재 통치의 부당성을 비판하곤 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추 전 장관은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한다. 26살부터 10년6개월을 판사로 일한 그는 1995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대구가 고향인 현직 법관이 호남 출신의 디제이가 세운 야당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안정적으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정권교체를 통해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그의 첫 선거 슬로건도 “세탁소집 둘째 딸이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였다. 자칫하면 불통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외골수적 면모도 그의 도전적 행보와는 궁합이 잘 맞았다. 그는 1997년 대선 당시 반야당 정서가 강했던 대구에서 ‘잔 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디제이를 알렸다. “야당 간판으로 유세하다 돌 맞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지만 “지역감정의 악령에서 대구를 구하겠다”며 호기롭게 맞섰다. 그렇게 얻은 ‘추다르크’란 별명은 지금까지도 정치인 추미애의 대표 브랜드로 각인돼 있다.

‘오랜 정치’에도 세력기반 미약…대선주자 윤석열 키운 책임론도

 

강한 작용은 강한 반작용을 부른다. 이른바 ‘추-윤 갈등’에서 보인 강경 일변도의 모습은 윤 전 총장을 ‘권력에 핍박받는 피해자’로 보이게 만들면서 결국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추 전 장관은 결과적으로 윤 전 총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띄워준 일등 공신”이라며 “추-윤 갈등을 거치면서 민주당 지지층을 비롯한 진보 지지층이 분열했고, 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뚜렷하고 좋고 나쁨이 분명한 그의 정치 스타일은 동료들에게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추 전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2010년 민주당 소속 환경노동위원들의 반대에도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노조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희한한 날치기’를 벌였다. 자신이 낸 중재안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로써 당원자격 정지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헌정사상 첫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2년 임기를 채운 첫 민주당 대표에 이름을 올렸으면서도 ‘추미애계’라 부를 수 있는 독자 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것도 이런 태도와 관련 있다. 실제로 그의 대선 경선 캠프에는 현역 의원들이 한명도 없다. 성한용

선임기자는 “추 전 장관은 정치를 오래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잘 화합하지 못해 당내 세력이 없다”며 “선거인단 50%, 여론조사 50%로 치르는 경선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원칙과 소신에 과도하게 얽매여 불을 지피기만 하고 끄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슈를 쟁점화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결과물을 도출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직진 본능’과 ‘비타협주의’로 인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세간의 지적을 되레 “원칙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일축한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추 전 장관 하면 무엇을 만들어내는 정치인이라기보단 특정한 화두를 들고 깃발을 드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고 평가했다.

여권의 유일한 여성 대선주자이지만 의도적으로 ‘여성 이슈’와 거리를 둬왔다는 점은 그의 개혁 색채를 반감시킨다. 그는 ‘여성 정치인’으로 규정되는 것 자체를 꺼린다. “남자든 여자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최근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 페미라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가 동료 여성 정치인들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질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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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민주당 통합시 지지율 상승 기회

추 전 장관은 조직력에서 밀리는 후발주자임에도 비교적 단기간에 여당 내 3~4위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소수일지라도 강성 민주당 지지자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지층이 명확하지 않은 후발주자들 사이에선 차별점을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열린민주당과의 통합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자신의 지지층을 넓혀보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더 강하게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열린민주당 당원들과 일체감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 전 장관에 대한 선호도는 더불어민주당보다 열린민주당 지지층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여론조사 기관 한길리서치가

의뢰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유선 전화면접(19.1%)과 무선 자동응답시스템(80.9%) 방식을 섞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만 18살 이상 1015명,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의 추 전 장관 지지율은 7%였지만, 열린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율은 15.7%로 2배가 넘었다.(자세한 내용은 전국지표조사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만약 대선을 앞두고 양당 통합론에 불이 붙는다면 추 전 장관이 좀더 유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지지율 측면에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의 ‘반등’도 추 전 장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추 전 장관과 윤 전 총장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는 만큼, 윤 전 총장이 부상할수록 ‘꿩 잡는 매’를 자처한 추 전 장관의 역할론이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강성 지지층에 부응하다 고립 심화 가능성

추 전 장관을 지지하는 강성 친문 지지층은 ‘본선 경쟁’에서 필수적인 외연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강성 지지층에 부응하려 할수록 발언 강도를 계속 높이게 되고, 그러면서 고립이 심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윤태곤 실장은 “추 전 장관이 강성 지지층의 도움으로 지지율이 올라간다면 최대한 10% 정도까지일 것이다. 현재 유권자 성향을 볼 때 그 이상은 한계가 있다”고 내다봤다.

그동안 예비경선 과정에서 추 전 장관은 ‘명추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토론회 등에서 검찰개혁 의지 부족 등을 문제 삼으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매섭게 몰아세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안정감을 주지 못해 지지율이 내려앉는다고 해도 그 반사이익이 추 전 대표에게 돌아오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윤태곤 실장은 “여권 지지자들은 이 지사가 흔들릴 경우 이 전 대표로 옮겨가는 구조”라며 “차라리 이 전 대표가 1위 주자였다면 오히려 추 전 장관에 유리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3위 쟁탈전도 추 전 장관에게는 부담이다. 추 전 장관은 출마 선언 직후 지지율이 상승세였으나 최근 정체 상태다. 정세균·박용진·김두관 후보가 치고 올라오면 추 전 장관이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