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현대미술 이야기 no. 24- 호안 미로(Joan Miro)

Shawn Chase 2015. 11. 26. 00:47

[J플러스] 입력 2015.11.23 09:27

                                        

 

 

 현대미술 이야기 no. 24- 호안 미로(Joan Miro)
 

기호로 가득 찬 세계로의 초대

호안 미로, <농장>, 1921-1922

      따사로운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어느 시골 농장의 풍경.  <농장>은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 1893.4.20-1983.12.25)의 초기 작품으로, 미로의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한 몬트로이그의 시골농장을 그린 작품이다.  언뜻 평온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농장>은 찬찬히 들여다 볼 수 록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세부묘사에 당황하게 된다. 여느 풍경화라면 생략되고도 남을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물건 하나하나가 투명한 광선속에서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다.  전경의 옥수수 줄기에서부터 물 조리개, 신문, 농가의 잡동사니를 지나 헛간과 닭장이 자리 잡은 중경뿐만 아니라 저 멀리 물을 긷는 아낙네와 방아를 찧는 노새를 둘러싼 언덕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까지 집요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림 속 모든 사물은 원근의 차별 없이 정확한 모습으로 포착되며 그 결과, 전체 화면은 이미지로 우글거리는 전쟁터가 된다.  미로의 농가 이미지는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호안 미로, <경작지>, 1923-1924

   <경작지>는 미로의 작품에서 본격적인 형태 변형이 시작된 작품이다. 강아지, 말, 닭 등의 생명체와 나무와 신문, 헛간까지 <농장>에서 등장하던 사물들이 다시 재등장하고 세밀한 붓끝으로 세세하게 묘사된 방식은 여전하지만 <경작지>의 등장인물은 더 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형될 수 있는 생명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  미로의 기호의 세계가 창조된 것이다.
 
 
시각적으로 분출된 미로의 무의식

호안 미로, <어릿광대의 사육제>, 1924-1925.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화가가 되고자 했던 미로의 파리 정착기는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극도의 가난으로 주린 배를 움켜지고 물끄러미 벽면을 바라보던 미로의 눈앞에 환영이 출현하였다. 미로는 이 환영이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고 회고 한다.  “나는 하루에 말린 무화가 몇 개만 먹고 살았다. <어릿광대의 사육제>는 배고픔으로 인해 생긴 환상을 표현한 것이다.”
   기아 상태에서 마주한 환영을 종이위에 옮겨 완성한 <어릿광대의 사육제>는 제1회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잡지에도 실리는 등 미로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1928년 네덜란드를 방문한 미로는 암스테르담의 왕립미술관에 소장되어있던 네덜란드 바로크 거장들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미로는 곧바로 작품의 그림엽서를 구입해 파리로 돌아왔고 <네덜란드 실내>연작을 그리게 된다. <네덜란드 실내 2>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였던 얀 스텐(Jan Steen)의 <고양이의 무용수업>을 미로의 방시으로 모작한 것이다.

얀 스텐, <고양이의 무용 수업>, 1665-58.

호안 미로,  <네덜란드 실내 2>, 1928.

    바로크시기 작품과 초현실주의적인 미로의 작품 사이에는 언뜻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실내의 풍경 속에 일상의 온갖 내러티브로 가득한 17세기 네덜란드회화는 개인적인 삶의 낙서와도 같은 미로의 작품세계와 스타일만 다를 뿐 공유되는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미로의 <네덜란드 실내>연작은 고전작품의 형태와 색을 현대 언어로 재창조해낸 것이다.
 
 
그 밖의 작업들
     미로는 회화 이외에도 콜라주, 세라믹 오브제, 벽화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작품을 남겼다.

호안 미로, <달 혹은 밤> 1955-1958

    <달 혹은 밤>은 1955년 파리에 새로 건립된 유네스코 빌딩의 외부벽화를 의뢰받고 완성한 두 개의 조형물중 하나로 주위 콘크리트 건축물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강렬한 색상이 사용되었다.
 
   노년의 미로는 기발한 조각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오브제의 유머러스한 요소와 원색의 강렬한 컬러의 표현은 75세의 노인의 작품으로 보기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호안 미로, <도망치는 소녀>, 1968.

   미로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무렵 유럽엔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진행 중이었다. 미로는 각각의 사조에서 모두 영향을 받았지만 사조에 동참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어냈다. 미로의 대표작 <성좌>시리즈는 전쟁 중 외교관들 주머니 속에 숨겨져 미국으로 밀수 될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 후 잭슨 폴락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