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조현민 “배려의 중요성 깨달은 시간...언니와 연락 안한지 2년”

Shawn Chase 2021. 5. 19. 17:21

하주희의 라운지/ 한진家 막내딸에서 기업인으로, 조현민 한진 부사장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입력 2021.05.19 13:06 | 수정 2021.05.19 13:06

 

우리는 지난 7년간 한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시작은 장녀였다. 2014년 직장에서 부하 직원의 태도를 지적하며 내린 조치가 문제가 됐다. 회사를 떠나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몇 년 후인 2018년, 막내딸의 업무 태도가 논란이 됐다. 그 역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 어찌 된 일인지, 집안에서의 내밀한 모습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별별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가장인 아버지도 무사하지 못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20년간 경영해온 회사에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연임 반대를 주장한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다. 그러고 그다음 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눈에도 갑작스러워 보인 죽음이었다.

바로 한진가(家)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는 주기적으로 마녀를 찾아내 처단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들의 항변을 듣는 데는 인색하다. 이들은 지난 7년간 어떤 시간을 보낸 걸까. 무엇보다, 우리가 마녀로 몰아세웠던 그들은 진짜 마녀였을까. 지난 4월 29일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에서 막내딸, 조현민 한진 부사장을 만났다.

매일 생각나는 아버지

사무실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비행기 옆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조양호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8일은 조 회장의 2주기(周忌)였다.

-언제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나요.

“매일 생각해요. 제일 생각날 때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예요. ‘아빠한테 얘기했으면 통과됐을까’ 뭔가 결정하기 전에 고민해요. 지금은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기억이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 저에게 유리하게 아빠의 생각을 바꿀 것만 같아요.”

아버지와 깊은 소통을 하는 자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식이 있다. 그는 전자였던 것 같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아빠가 이런 걸 혼자서 몇십 년을 하셨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고민과 불안감, 나는 이 작은 걸 갖고 고민되고 잠도 안 오고 그러는데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빠 이런 걸 어떻게 하셨어요? 이러니까 몸이 아프셨죠’ 자주 생각해요.”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요. 더 사실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반응들도 있었고요.

“폐 이식 수술은 잘됐어요. 잘 회복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안 좋아지신 건 맞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악화됐어요.”

‘배려’의 중요성 깨달아

-지난 7년 동안 여러 일이 있었는데요,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잘못한 점을 반성하겠다’ 이런 얘기는 빼고요.

“근데 전 진짜 잘못했어요. 맞잖아요. 후회해요. 저는 일에 욕심이 많았고 일을 잘하고 싶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때는 ‘왜 못해?’밖에 생각을 못 했어요. ‘왜 나를 못 따라와’였어요. 지금은 ‘우리 어떻게 하면 같이할 수 있을까?’라는 걸 배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말의 내용은 똑같아요. 전에는 같이 가야 되는데 왜 못 와만 생각했으면, 지금은 우리 같이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걸 배웠어요.”

-심리 상담 같은 것도 받았나요.

“네. 온라인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얼굴 보는 건 꺼려져서요. 채팅 상담을 몇 번 해봤어요.”

 

-신원을 안 밝히면 얘기가 겉돌잖아요. 모호한 상담이 되겠는데요.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요. ‘어떤 사람이 나보고 자꾸 갑질을 한다는데, 나는 그냥 화를 낸 거예요. 화내는 것과 갑질이랑 지적이 어떻게 다르죠.’”

갑질과 지적의 차이

-상담사는 갑질과 지적의 차이가 뭐라던가요.

“저한테 되레 물어봐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깨달았어요. 저는 배려가 부족했어요. 스스로 배려가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인 일에는 배려가 많아도 일에는 확실히 부족했어요. 이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어요.”

- 이중성이 무슨 말인가요.

“공과 사를 구분하겠다면서도 어설프게 구분해서 행동한 거예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정도는 아니지만요. 나는 사적으론 배려가 많은 사람인데 공적으로는 깐깐하게 행동하고 화내고 하니 그런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걸 또 스스로 감당을 못했어요. 진짜 나는 이건데, 화내는 것도 싫은데 힘들고 어리석었어요. 업무적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면 감정을 능숙하게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당시 논란이 됐을 때 아버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네가 잘못했어. 네가 일을 열심히 하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네가 잘한 건 없어. 너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어. 그런 것까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줄 순 없어.’ 그렇잖아요. 일하는 건 배울 수 있지만, 감정 컨트롤은 제가 깨닫고 제가 해야 되는 거잖아요.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걸 확인하신 후에는 다른 말씀 안 하셨어요.”

‘그룹을 지키자’

지난해부터 이어진 한진가의 경영권 다툼은 지난 4월 마무리됐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조현아씨가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반기를 들었다. 조현민 부사장과 어머니 이명희씨는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현아씨는 왜 그런 거예요.

“언니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겠나요. 제 마음도 잘 모르는데요.”

-가족인데 얘기도 안 해봤나요?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시도는 했죠. 언니랑 연락 안 한 지 2년이 돼가는 것 같아요. 언니 입장에선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머니와 같이 성명도 발표했잖아요.

“그룹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창업을 하시고 아빠가 평생 지켜오셨고 저희도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았어요. 물론 저희가 없어진다고 직원들에게 큰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큰 틀에서 그룹을 지키자는 의도였단 말이군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말이 있어요. ‘지고 이겨라’ 항상 그 얘기를 하셨어요. 양보를 하면서 큰 걸 얻어야 된다는 말씀이었어요.”

-경영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지고 이기는 건 뭘까요.

“내가 갖고 싶은 게 5개면, 두 개는 양보를 하고 다섯 개 중 두세 개를 받으면서 전체 그룹을 지키는 게 지고 이기는 거죠. 다섯 개 다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요. 같이 양보해야 되는 부분인 거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였다.

-어머님께서 속상하셨겠네요.

“제일 속상한 건 엄마죠. 심지어 남편까지 떠나보냈잖아요. 형제와 자식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