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교토국제고, 고시엔 야구대회 첫 출전… NHK 통해 생중계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21.03.25 04:02 | 수정 2021.03.25 04:02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24일 일본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 구장.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처음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국제고가 연장 접전 끝에 시바타고(미야기현)에 5대4로 역전승을 거뒀다.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 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앞서 1회 말 공격이 끝난 후, 모든 출전 학교 교가를 소개하는 전통에 따라 이 학교 교가가 처음으로 고시엔 구장에서 불려졌다. 두 차례 모두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방송됐다.
24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 구장에서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고시엔 대회)에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시바타고(미야기현)를 5대4로 이긴 뒤 장내에 울려 퍼지는 한국어 교가를 듣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10회 연장전 승부 끝에 승리했다. /교도연합뉴스
삼루 측에 위치한 약 1500명의 교토국제고 응원단은 감격한 표정으로 교가가 방송되는 것을 지켜봤다. 이 학교의 왕청일 전 이사장은 “한국어 교가가 방송될 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 중이라는 3학년 구로가와 아스카는 “고시엔 구장에서 교가를 듣게 돼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교토국제고는 오는 27일 2차전 시합을 갖는데, 이때에도 다시 교가가 방송된다.
선수 전원이 일본 국적인 교토국제고는 이날 6회까지 2대0으로 끌려갔다. 7회 초 만루 기회에서 3득점,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시바타고가 1점을 만회해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10회 2점을 얻어 5대4로 승리했다. 박경수 교장은 “다른 학교와는 달리 운동장이 작아 외야 연습은 다른 구장을 빌려서 해왔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고시엔에 진출해 1승을 거둬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교토국제고는 전체 학생 수가 131명에 불과하다. 이런 미니 학교가 일본의 약 4000개 고교 야구단 중 32개 팀만 출전하는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 진출한 데 이어 첫 승리까지 거둔 것이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고시엔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24일 아침부터 재일교포들은 전세 버스 20여 대에 나눠 타고 고시엔 구장에 집결했다. 오사카의 같은 한국계 학교인 건국, 금강학교도 학생들을 보내 응원했다.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1990년대 심각한 운영난을 겪었다. 학생 수가 줄자 학교를 살리기 위해 1999년 창단한 것이 야구부였다. 그때부터 야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 지금은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성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일본 학생이 60% 이상이어서 사실상 ‘한일 연합’ 성격을 갖고 있다. 당시 이사장을 역임한 이우경(87) 교토 민단 고문은 “학교의 성격을 바꿔 일본인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학교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우리 학교 졸업생과 학생들이 한일 관계를 밝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했다.
일반 관람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는 일본 경찰과 주일(駐日) 한국 공관이 긴장한 가운데 펼쳐졌다. 한국계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한 데 대해 일부 일본 우익은 반감을 보였다. 특히 ‘동해'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전국에 생방송되는 걸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교토국제고는 일본 경찰에 학생과 선수 보호를 요청했고, 오사카총영사관과 고베총영사관도 경찰에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했다. 이 학교 선수들도 ‘만약의 사태’를 우려, 기존과 다른 출입구를 통해 야구장에 들어가야 했다.
NHK는 교토국제고 교가를 방송하면서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교가 자막을 내보냈다. 하단엔 “일본어 번역은 학교가 제출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경수 교장은 “우리는 교가 음원(音源)을 제공했을 뿐, 그런 일본어 자막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마이니치신문과 함께 대회를 주최하는 일본고교연맹이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자막을 만들어 NHK에 제공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은 “학교가 그런 자막을 보낸 적이 없는데 NHK가 왜곡 방송을 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학교의 김안일 야구부 후원회장은 “일본에는 다른 외국계 학교도 많아 영어 등으로 된 교가도 부른다”며 “70년 넘게 불러온 교가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첫 출전, 한국계 교토국제고에 잇단 후원
외국계 학교 중 처음으로 진출, 한일의원연맹 등서 성금 전달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21.03.24 04:28 | 수정 2021.03.24 04:28
코트라 오사카 무역관의 노우영(왼쪽) 부관장이 22일 교토국제고를 방문, 박경수 교장에게 관서 지역 한국기업인연합회의 후원품을 전달하고 있다. /교토국제고
지난 19일 시작된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처음 출전한 한국계 학교 교토(京都)국제고에 후원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다. 학생 수가 131명에 불과한 교토국제고는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고시엔에 진출, 한일 양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재일본대한체육회는 최근 교토국제고에 성금을 전달, 선수들을 격려했다. 최상영 재일본대한체육회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고시엔에 진출한 선수들이 대견하다”며 “좋은 결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사회를 대표하는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상공회의소도 성금을 모아서 전달했다. 관서(關西) 지역 한국 기업인 연합회는 음식과 음료수 등을 차에 실어 보내 선전을 당부했다.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진표 민주당 국회의원)도 소속 의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아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서울사무소에 보냈다. 재일교포 사업가들이 자금을 모아 창립된 신한은행도 후원금을 냈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23일 “소규모의 우리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한 것이 알려진 후 많은 개인과 조직이 후원하고 있다”며 “선수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24일 역시 고시엔에 처음 출전한 미야기현의 시바타고와 첫 경기를 가진다.
일본 학생이 한국어 교가 부르며 고시엔 선다
한국계 교토국제고교 일본야구 꿈의 무대에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21.03.17 03:00 | 수정 2021.03.17 03:00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는 일본에서 프로야구 인기를 능가하는 초대형 행사다. 오는 19일 시작하는 이 대회에 한국계의 교토(京都) 국제고가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진출해 한일 양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야구부 선수 40명은 모두 일본 국적이어서 “사실상 한일 연합팀이 거둔 쾌거”라는 말도 나온다. 일본 각지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은 응원을 위해 경기가 열리는 효고현 고시엔(甲子園) 구장에 모이기로 했고, 400여 교포는 후원금을 내놓았다.
교토국제고의 야구부 학생들이 16일 교내 운동장에 모여 3일 앞으로 다가온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고시엔)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오는 19일 시작되는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 진출했다. /교토=이하원 특파원
이 학교는 전체 학생수가 131명이다. 남녀 학생이 절반씩이고, 재일교포 학생은 40% 정도 된다. 이런 미니 학교가 4000개 넘는 고교 야구팀이 경쟁하는 고시엔에 진출한 32개 학교에 포함된 것은 기적으로 불린다. 16일 방문한 교토 국제고는 3층짜리 교사(校舍) 1개에 불과했다.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하는 운동장을 보니 외야가 작아 보였다. 홈베이스에서 외야 끝까지 거리가 최대 60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학교는 지역 예선에서 연속 8승을 거둬 고시엔에 진출, 23일 센다이의 시바타고와 첫 시합을 치른다. 박경수 교장은 “우리 학교는 야구장이 작아 외야수 수비 훈련은 다른 구장을 예약해서 해야 한다”며 “열악한 상황에서 고시엔에 진출한 선수들이 대견하다”고 했다.
재일교포 사회는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시작한 교토 국제고의 고시엔 진출로 축제 분위기다. 교포 사회를 대표하는 대한민국민단은 연일 신문과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선수들의 투혼에 감동했다”는 격려 전화가 이 학교에 계속 걸려 온다. 간사이 지역의 다른 한국계 학교인 금강, 건국학교는 공동 응원을 펼치기로 했다.
이 학교에 야구부가 생긴 건 학교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애초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1990년대 후반 심각한 운영난으로 학생 수가 70명으로 줄었다. 선생님들은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때 야구를 특화해 학교를 살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1999년 야구부가 만들어진 후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는 0-34로 5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첫 승을 거둔 건 야구부 창단 2년 만인 2001년이었다.
이 학교는 당시 운영난을 계기로 사실상 ‘한일 연합학교’로 전환했다. 2004년부터 일본 문부성 지원을 받으며 일본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매년 한국(10억원)과 일본(15억원) 양국의 교육 당국에서 약 25억원을 지원받는다. 지금은 일본 국적 학생이 60%로 한국계 학생보다 많다. 박 교장은 “일본 남학생들은 야구가 하고 싶어서, 여학생들은 K팝이 좋아서 오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여학생들이 주축인 댄스반 학생들은 교토 지역의 여러 행사에 자주 초청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교토 국제고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한국 관련 교육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수학여행, 개별 체험 연수를 통해 매년 한국에 4~5회 학생들을 보내 교육했다. 조선통신사 관련 역사를 비롯,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양국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1학년생 김우희 양은 “한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과 한국말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재일교포 중에는 교토 국제고의 고시엔 진출로 한국어 교가(校歌)가 TV 생방송으로 일본 전역에 방송되는 데 의미를 두는 이도 많다. 고시엔은 모든 출전 학교의 교가를 경기 중 최소 1번 이상 방송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 학교의 교가 1절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한다. 4절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大韓)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있다. 일본인 야구부 학생과 응원단이 이 노래를 부른다.
일본 사회 일각에선 이 학교 교가에 동해가 들어간 것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일본고교연맹은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교가 자막을 만들어 경기를 중계하는 NHK 등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학년 주장인 야마구치 긴타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한국어 교가를 당당하게 부르겠다고 했다. 고마키 노치쓰구 야구부 감독도 “우리 학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학교다. 코로나 등으로 엄중한 시기에 일본과 한국에 모두 감동을 주는 시합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시엔 야구
매년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일본 고교 야구 대회. 마이니치신문이 주최해 3~4월 열리는 ‘봄의 고시엔’은 선발고교야구대회, 아사히신문이 여는 8월의 ‘여름 고시엔’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라고 부른다. 모두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고시엔이라는 같은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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