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1.02.11 15:00 수정 2021.02.11 15:24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왼쪽부터), 박인영 부산시의원,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왼쪽부터), 이언주 전 의원, 박민식 전 의원,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기호순). 연합뉴스
2018년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부산 유권자 절반 이상(55.23%)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찍었다. 부산 16개 구·군에서 모두 민주당이 앞섰다. 하지만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 보는 부산시민은 거의 없다. 오 전 시장 성추문으로 실시되는 선거인 데다 정권심판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부산시장 선거가 민선으로 전환된 1995년 이후 단 한 차례(오 전 시장)를 제외하고 국민의힘 계열이 독식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에도 부산 시민들이 국민의힘에 온전히 마음을 준 것 같지는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도드라졌다. 부산일보 의뢰 리얼미터 여론조사(1월31일~2월1일)에선 국민의힘 지지가 38.6%, 민주당 25.9%로 12.7%포인트 차이였지만, 무당층(없음·무응답)이 22.4%로 두 정당 간 격차보다 많았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중앙일보는 지난 8~9일 이틀간 부산 바닥 민심을 들었다. 시민들에게선 “민주당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동정론과 “더는 안 속는다”는 교체론이 엇갈렸다. “여느때보다 인물과 공약을 좀 더 보고 뽑겠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가덕신공항엔 ‘기대반 불신반’
뒤처진 민주당의 승부수는 가덕신공항이다. 가덕신공항에 직접적 수혜를 입는 부산 서부권(사하·사상·강서·북구) 유권자는 82만3338명(2018년 지방선거 기준)으로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동부권(85만9966명)에 맞먹는다. 그래서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 세력을 차차 동쪽으로 옮김)’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셈법이다. 부산일보·리얼미터 여론조사(1월31일~2월1일)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서부권 지지율 격차는 5.9%포인트로 동부권(17.8%포인트)보다 작다.
부산 권역별 지지율 어떻게 다른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신공항은 서부권 시민들에게 뜨거운 이슈였다. 여·야가 모두 짓자고 하지만 시민들에겐 ‘민주당표’ 공약으로 인식돼 있었다. 강서구 대항동에 거주하는 김모(72·여)씨는 “민주당은 좀 나을 거라 믿고 지난번 오 전 시장을 찍었지만, 실망도 컸다”며 “그래도 ‘신공항이 이번에 안 되면 민주당 지지는 끝이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서부권에 있는 연산구에 거주하는 50대 홍모 씨는 “해저터널같은 국민의힘 공약보단 가덕신공항이 현실성 있어 민주당을 한번 믿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방향의 여론도 있었다.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에서 만난 김용한(55)씨는 “민주당이 특별법을 2월에 처리한다고 하지만 질질 끌면서 내년 대선까지 우려먹으려는 거 아니냐”라며 “첫 삽 뜨기 전엔 안 믿는다”라고 말했다. 강서구 대저동에 거주하는 정모(52)씨는 “가덕신공항은 너무 오래 끌어온 사안이라 부산사람들이 고마워하면서 민주당을 찍을만한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기대하는 또다른 변수다. 2000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 를 내걸고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에서 도전했다 낙선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말 출마를 위해 부산에 내려와 가덕도보다 봉하마을을 먼저 찾았다. 노사모 출신 박인영 부산시의원은 연일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내몬 이명박 세력에 부산을 내어줄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20년 전 선거에선 별로 존재감도 없었고 대통령이 돼서도 별다른 기억이 없다”(김모 씨, 88세, 강서구 거주)는 시선과 “생전엔 미워만 하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이 있다”(최모 씨, 43세, 사하구 거주)는 반응이 엇갈렸다.
가덕신공항 부지가 보이는 부산 강서구 대항동 대항전망대 인근에 붙은 현지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 김효성 기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다섯째) 등 지도부는 지난 9일 부산을 대거 찾아 가덕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약속했다. 송봉근 기자
서부권 이외의 지역에선 정권심판론에 가덕신공항 이슈가 밀리는 분위기였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정두수(61)씨는 “얼마 전에 여당 국회의원(박재호 민주당 의원)이 ‘부산 사람들이 조·중·동을 많이 봐서 한심하다’고 말한 걸 들었는데 참 오만한 소리”라며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도 그렇고 나라를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에서 만난 최모(68)씨는 “어떤 여론조사는 부산에서 민주당이 이기는 거로 나오던데 민주당 싫은 사람들이 응답을 안 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지난해 총선처럼 막판에 야당표를 찍으러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서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키 큰 사람에 눈길” vs “고생한 사람 시켜줘야”
인물론도 부산시장 선거의 큰 변수다. TV에 자주 출연해 온 국민의힘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인지도는 단연 높았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세환(68)씨는 “다른 후보들은 잘 모르겠는데 ‘키 큰 사람’(박 전 수석)이 눈에 띄었다”라며 “차분하고 부드러운 모습에 시장감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이언주 전 의원(가운데). 민주당 예비후보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연합뉴스
김영춘 전 장관의 무게감에 매력을 느끼는 유권자도 꽤 있었다. 서면역에서 만난 신모(45·여)씨는 “여러 차례 부산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김 전 장관에게 동정심이 있다”며 “‘한번 시켜줘야 안 되겠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언주 국민의힘 전 의원의 선명성이나 박인영 민주당 시의원의 신선함을 꼽는 유권자도 마주칠 수 있었다.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이모(65)씨는 “박 전 수석은 속을 알 수 없는 ‘회색분자’다. 정권심판 메시지가 선명한 이언주 전 의원이 본선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구 문현동에서 만난 회사원 박모(34·여)씨는 “박인영 시의원이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젊은 여성 후보라 민주당에선 가장 낫다”고 평가했다.
부산시장 선거 역대 판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조국·오거돈·코로나 변수는?
여성과 2030의 표심의 향배도 주목되는 변수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치러지는 선거인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녀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부정입학 의혹으로 인한 여파도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12월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1심 실형 판결 이후 조씨에 대한 입학취소와 장학금 회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부산대 교정에서 만난 이모(22)씨는 “조씨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불만이 왜 없겠느냐”며 “다만 감정적인 부분보단, 정말 우리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분을 뽑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대 학생 김모(21)씨는 “불만이 있지만 선거 생각까진 못 해봤고 서로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오른쪽)은 총선 직후 사퇴했다. 여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난해 6월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오 전 시장 엄벌 및 2차 가해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활동가가 피해자 입장문을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뉴스1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사는 박민주(33·여)씨는 “현직 시장의 성추행은 충격적이었고 여성 직장 동료들과도 얘기를 많이 했다”며 “오 전 시장이 미워서라도 민주당 후보는 못 찍는다”고 말했다.
8일부터 부산을 포함한 비(非)수도권에서는 변경된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제한시간이 오후 9시에서 10시로 완화됐다. 그러나 소상공인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여전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정모씨는 “숨통은 트였지만 오락가락하는 정부 방침에 불만이 적잖다”며 “후보들의 소상공인 공약을 유심히 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부산 르포] "가덕도, 함 믿어보자" vs "與 오만, 더 안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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