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639호] 2020.12.28
거제= 이성진 기자 reveal@chosun.com
▲ 2020년 12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일부 모습(1)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12월 15일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각종 크레인 설비들은 작동을 멈췄고 일부 작업 차량만이 도크를 오갔다. 조선소 입구를 가득 메운 직원들의 출퇴근용 오토바이와 차량들을 보자 이곳이 수년 전부터 불황에 시달리던 한국 조선업의 중심지라는 것이 의아했다. 조선업의 부진은 2020년에도 지속되던 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지역경제를 강타했다. 조선소 외벽 곳곳엔 직원들을 응원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경축 대우조선해양 초대형 원유운반선 3척 2820억원에 수주!’ ‘3년 연속 흑자! 대우조선 거제시민이 지킨다!’ ‘거제시민의 힘으로 코로나19와 지역경제 위기를 이겨내자!’….
현수막에서 감지되듯 최근 이곳 조선소 직원들 사이에선 조선업 반등의 기대감이 적지 않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날 오후 작업에 앞서 옥포조선소 앞 아주천을 산책하던 한 조선소 직원은 “수주가 마르면서 특근이나 잔업이 모두 사라지긴 했다. 당장 해가 바뀐다고 좋아질 거라고는 확신하지 않지만 최근 조선업 국내외 여건이 바뀐 점에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박 설계팀의 한 15년 차 직원은 “상선 건조 과정의 선행 파트로부터 일감을 넘겨받은 후행 파트는 여전히 바쁘다”며 “우리는 늘 기대를 갖고 있는데 늦어도 내후년(2022년)부터는 수주들이 꼬리를 물면서 괜찮아질 거란 기대도 해본다”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삼성중공업의 경우 6년 연속 영업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대우조선해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일찍 퇴근길에 나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한 직원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노는 작업장이 늘었다”면서도 “그만큼 100여척가량의 선박을 미리 선수주한다는 이야기도 돈다. 올해 밀린 일감이 내년에 터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늦어도 2021년이 반등의 원년, 2023년엔 조선업이 다시 활기를 띨 거라는 것이 이곳 직원들의 기대이자 희망이다.
2020년 연말 국내 조선업 수주 1위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은 2020년 4분기 선박 수주량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국내 조선업은 표준화물선환산톤수(CGT) 기준으로 지난 10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50.4%에 해당하는 99만4063CGT(19척)를, 11월엔 60.1%인 98만6107CGT(24척)를 수주했다. 조선업 경쟁국인 중국이 10월에 90만6486CGT(21척), 11월에 60만3134CGT(24척)를 수주하는 데 그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2020년 1~11월 한국과 중국의 누계 수주물량으로 보면 한국은 501만7080CGT(137척), 중국은 666만9190CGT(298척)를 기록했다. 중국이 100만CGT 이상 앞서는 모습이지만 국내외 조선업계는 중국이 상당수 물량을 자국에서 채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신규 선박을 발주해 이를 자국 조선소 수주물량으로 넣은 데 따른 결과다. 한마디로 자급자족인데 해외의 선박 수요를 직접 끌어당긴 한국과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내 조선업체가 12월 한 달 사이에도 가시적인 수주실적을 거두면서 다시 중국을 앞지를 거란 분석이 적지 않다. 국내 조선 3사의 기업별 실적을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12월에만 2820억원 규모의 초대형 원유운반선 3척과 1000억원의 초대형 LPG운반선 1척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4082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눈여겨볼 점은 수주물량이 채워진 시점이다. 삼성중공업은 11월에만 3조원이 넘는 수주계약을 따냈는데 1~11월 누계 신규 수주 규모가 약 4조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 중 절반 이상을 연말에 채운 셈이다. 이를 두고 조선업계 안팎에선 삼성중공업이 2021년엔 영업손실을 흑자로 전환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12월 수주 규모도 상당하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6척, LNG운반선 7척, 컨테이너선 4척으로 총 2조4546억원의 수주물량을 기록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대다수 조선사가 2020년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수주목표액의 50~60% 정도만 달성했지만 상당수 수주가 연말에 몰렸고 이 기세가 2021년까지 이어질 거란 기대감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 2020년 12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일부 모습(2)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세계 선박 노후화와 환경규제, 발주 늘려
최근 국내 조선업 수주물량 증대와 이에 따른 업황 반등의 기대가 커지는 데엔 전 세계 선박 교체 사이클이 한몫하고 있다. 보통 선박들의 평균 내용연수는 20~30년이다. 선령이 증가할수록 철판 두께는 얇아지고 연료 소모량은 증대된다. 기기 고장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선주들은 통상적으로 30년 이상된 선박을 노후선으로 분류하곤 폐선 조치한다.
현재 전 세계 바다를 오가는 상당수 선박의 내용연수는 20년이 넘은 상황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전 세계 선박 9만9533척의 평균 내용연수는 21.6년을 기록했다. 대륙별로 보면 아메리카와 유럽권에서 노후선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북아메리카 국가들이 소유한 선박 6206척의 평균 내용연수는 27.5년, 여타 아메리카 국가 소유 선박 3699척은 30.1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EU 회원국들의 선박 1만9147척의 내용연수는 19.7년, 그 외에 유럽권 국가 선박 1만1368척은 24.5년이다. 이밖에 아프리카·중동·남아시아 국가 소유의 선박 9701척은 24.0년, 아시아·태평양권 선박 4만5831척은 18.4년으로 집계됐다. 신규 선박이 발주를 거쳐 건조되기까지 통상 2~3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 발주물량은 향후 2~3년 안에 증대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2020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는 각국의 선박 교체 속도를 더하고 있다. IMO는 항로·교통규칙·항만시설의 국제적 통일을 위해 UN 산하에 설치된 국제기구다. IMO는 2016년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해 2020년부터 국제항로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의 연료유 황함유량의 상한선을 3.5%에서 0.5% 이하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선주들은 선박 연료를 기존 고유황유에서 저유황유로 교체하거나 선박에 탈황설비인 스크러버(scrubber)를 장착해야만 한다. 혹은 선박 자체를 LNG 연료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해야 한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근데 저유황유의 사용은 선박 추진엔진에 무리를 줘 손상시키는 경우가 많고 극동아시아나 미국 등 주요 항구에선 스크러버 설치선의 입항을 금지하고 있다. 스크러버가 걸러낸 황산화물 폐기물이 또 해양을 오염해서다. 결국 대다수 선사들은 LNG 연료 추진선으로 선박을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IMO가 2050년부터는 개별 선박 기준으로 배기가스량을 70%로 줄여 저탄소가 아닌 사실상 ‘탈탄소’를 목표하는 걸 고려하면 이 같은 경향은 더 뚜렷해질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선업체들 입장에선 새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당장의 선박 노후화, IMO 환경규제에 따른 신규 선박 발주물량은 현재로서 국내 조선업 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LNG 관련 선박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조선 3사의 경우 LNG 연료 공급 시스템 등 친환경 선박 부문에 일찌감치 투자를 진행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미 LNG 관련 선박 시장은 국내 조선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많은 발주가 이뤄지고 있는 ‘140K 이상급 LNG운반선’ 수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6년 시장점유율 100%(전 세계 발주량 6척 중 국내 수주 6척), 2017년 55.6%(9척 중 5척), 2018년 100%(65척 중 65척), 2019년 94.1%(51척 중 48척)를 기록했다. 2020년의 경우 1~11월 사이 53.6%(28척 중 15척)의 점유율을 보였다. 앞서의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LNG운반선 기술은 LNG 연료 추진선에 그대로 접목된다”며 “기술력 면에선 아직까지 중국이나 일본이 쫓아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LNG 연료 추진선 건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최근 1~2년 사이 발생한 사건·사고는 중국 조선업 기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운반선 글래드스톤호가 2018년 6월 엔진 고장으로 해상에서 멈춰 결국 폐선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선박공업이 프랑스 선사로부터 수주한 LNG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9척은 2019년 인도될 예정이었으나 기술 부족으로 1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중국 선주들까지 한국 조선소에 발주를 늘리는 시기가 다가올 것”이라며 “일본 같은 경우는 더 이상 선박 설계인력이 없어 일본 선주들이 한국 조선소를 찾는 사례가 3년 전부터 시작됐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불황에 따른 낮은 신조선가도 요인
이 밖에 최근 해상 물동량의 증가도 국내 조선업 반등 기대를 높이고 있다. 해상 운임률과 운송 수량, 운임액 등을 지표로 산출하는 주요 운임지수는 최근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SCFI(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2020년 4월 10일 867.82에 그쳤던 SCFI는 지난 12월 11일 2311.71로 급등했다. 2010년 이후로 2000을 돌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초에 물동량이 워낙 줄어들다 보니 이에 따른 반등 효과로 운임지수, 즉 해운 시황이 좋아져 보이는 것도 있지만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상으로 넘어가는 화물이 늘어난 것이 한몫하고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사들 입장에선 물동량 증가로 선박 운항이 늘면 선박 발주 문의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 대내외 여건을 고려하면 그 상당 부분을 국내 조선업체가 처리할 거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선이다.
여기에 최근까지 지속된 조선업 불황은 신조선가(new building price)를 낮추면서 선주들의 신규 선박 발주의 추가 동기를 만들고 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선사들 입장에선 좋은 배를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향후 중고선으로 시장에 팔 때 차익을 남길 계획도 세우기 때문이다. 선주들 사이에서 최근 시장 선가가 낮다는 판단이 서면 발주는 자연스레 늘어날 거다”라고 말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신조선가 지수는 1월 130포인트를 찍은 이후로 매달 하락하고 있다. 지난 11월 신조선가지수는 125포인트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2021년 국내외 조선업황은 호황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2020년보다는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클락슨리서치는 2021년 전 세계 발주량이 515억달러 규모인 2380만CGT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0년 1~11월 기준 전 세계 누계 발주량이 1447만CGT인 것을 고려하면 두 배 가까이 증대될 거란 이야기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021년 전 세계 발주량이 2020년보다 111% 증가한 3000만CGT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여기서 국내 조선업은 2020년보다 127% 증가한 1000만CGT를 수주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른 수주액은 2020년 110억달러에서 105% 증가한 225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란 분석이다.
“저가 수주 경쟁 지양해야”
전문가들은 이를 일시적 반등이 아닌 장기 호황의 기반으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조선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을 거듭한 데엔 전 세계 수주절벽 현상과 중국 조선업체의 성장세도 있지만 이에 따른 국내 조선업체들의 저가 수주 경쟁이 적지 않은 원인이 됐다. 앞서의 김영훈 경남대 교수는 “과거처럼 저가 수주로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을 반복하면 안 된다. 국내 조선 빅3사는 물론 중소형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까지 모두 공멸하는 길이다. 잠깐 반짝 하고 말 것이다. 공통의 기술이나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는 식으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연말에 수주가 급증한 데엔 일부 조선소들이 비어 있는 도크를 활용하기 위해 급한 대로 마진율을 상당 부분 낮춰 물량을 받은 측면도 있다. 좋은 내용으로 계약한 것이 아니며 이미 저가 수주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조선업계 일각에선 2021년 EU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함 심사를 승인해 합병이 마무리되면, 적어도 두 업체 사이에선 전략적 제휴 등으로 저가 수주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소형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측은 “대형 조선소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딩 시스템, 용접 자동화 로봇 등을 개발·적용해 선박 제조의 스마트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견·중소형 조선소는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며 “조선소 취급 물류가 무겁고 크며 의사결정은 현장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스마트 야드(작업장) 개발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선박 건조의 스마트화를 상당 부분 추진 중이라는 것이 이 기관의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직원들은 국내 조선업 기술력을 그 누구보다 믿는다고 말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경험이 없어 LNG운반선 한 척 만드는 데만 상당 시간이 걸렸다. 이젠 모두 10년 차 이상의 베테랑이 됐다. 제작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대량 수주보다도 꾸준한 수주가 중요하다. 한국 조선업은 다시 재기할 수 있다.”
▲ 오후 6시 퇴근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직원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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