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코로나 경제 위기라는데 멈추지 않는 명품 판매

Shawn Chase 2020. 12. 19. 11:12

조선비즈 

 

입력 2020.06.14 07:00

오픈런에 완판에… 명품에 빠진 소비자들
불황기 더 잘팔리는 명품… 이성 아닌 감성 소비
죽음을 느끼거나 우울해지면 명품 더 찾게 된다

지난달 샤넬이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에 백화점 앞엔 샤넬백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 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샤넬 매장으로 사람들이 달려가는 '오픈런' 사태까지 빚어졌다. 지난 3일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에스아이빌리지가 면세점이 재고로 가지고 있던 명품을 할인 판매하자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에스아이빌리지가 준비한 물량은 판매 3시간 만에 80%가 팔려나갔다. 중국에선 지난달 11일 두 달여 만에 재개장한 광저우의 에르메스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에서 하루 매출 270만달러(한화 33억여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5월 12일 오전 8시 50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백화점 개장 시간(10시 30분) 전부터 줄을 서 있다./민서연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기라는데, 명품 산업은 오히려 더 번창하고 있다. 지난달 초 연휴 기간엔 백화점의 명품 매출이 전년 연휴 대비 20%가량(신세계 22.1%, 롯데 19%, 현대 21.7%) 상승했다.

이어지는 구매 행렬에 명품 브랜드들은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섰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들이 상품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게 일반적인 대응이지만, 명품 업체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샤넬은 지난달 핸드백 주요 상품의 가격을 7~17%가량 인상했고, 루이비통도 일부 백 가격을 5~6% 올렸다. 티파니·불가리·셀린 등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호황기보다 불황기에 더 성장하는 명품 산업

불황기 명품 산업의 성장은 데이터로 증명된다. SK증권의 김수정 애널리스트는 12일 "OECD와 블룸버그가 발표한 글로벌 GDP와 럭셔리 매출을 분기별로 비교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시기(경제성장률 하위 10%)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경제성장률 상위 10%) 비해 1.7배 정도 높다"면서 "경제가 좋아지면 구매력이 높아지고 명품을 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이성적인 논리와는 다른 결과"라고 밝혔다.

왜 불황기에 명품이 더 잘 팔리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명품 산업이 경제학에서 암묵적인 명제로 삼는 이성적인 판단을 따르지 않는 산업으로 본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불황기 명품 소비에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 '불황이라 다른 사람들은 힘들다는데 나는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뽐내기' 행동이나, '나도 부자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분석한다.

사이먼 무어 이노베이션버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불황기 명품 소비 패턴을 '카타르시스(cathartic) 쇼핑'이라고 평가했다.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행동을 통해 외부에 표출하는 행동이란 것이다. 그는 "남들과 나 자신에게 내 운명과 내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확신에 찬(assertive) 소비'"라면서 "'코로나19가 영향력이 아무리 있다고 해도 코로나19는 결코 나를 이기지 못했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겠어'라는 식의 태도가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인사·조직통합 전문 컨설팅사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야마구치 슈는 강자에게 품는 열등감과 시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 명품 소비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는 '철학이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을 들고 와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르상티망은 강자에게 품는 열등감과 시기심이다. 부자들의 상징(명품)을 구입하는 형태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르상티망은 전염성이 강하다. 누군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명품백을 사는 순간, 그걸 본 다른 사람이 '쟤도 샀는데'라며 르상티망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안병현

◇죽음을 생각할수록 명품을 산다

경제 불황 뿐만 아니라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심리가 명품 구매에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나오미 맨델 교수와 스티븐 하이네 교수는 1999년 발표한 소비자 행동학 논문에서 '소비자들은 죽음을 많이 생각할수록 명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소비자는 죽음과 관련된 콘텐츠에 노출돼 자신이 사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 때 물질적 소유권을 획득함으로써 이러한 불안감을 줄이려 한다"고도 했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맛본 사람은 저축보다는 소비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몇 년 새 퍼진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죽음을 인식하다 보면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싶어지고, 자신의 가치를 올려야겠다는 행동이 명품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전 부분에 걸쳐 소비가 하락했지만 스포츠카나 보석, 고가 시계 등 럭셔리 상품은 반등했다. 이와 관련 김수정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40만명을 넘어서는 등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은 현재 럭셔리 브랜드 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아져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코로나 블루'가 소비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카네기멜런대학교의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와 하버드대학교의 제니퍼 러너 교수 등이 함께 발표한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 Is Not Miserly)에 따르면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팀은 실험군을 둘로 나눠 절반에게는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뒤 물병을 사게 했다. 그 결과 슬픈 영화를 본 그룹이 30% 더 큰 비용을 지불해 물건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너 교수는 "우울함을 느낄수록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데, 비싼 물건을 사며 자신의 낮아진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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