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입력 2020.08.22 00:28 | 700호 31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얼마 전 대학 동기인 친구가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사전 낱말 풀이를 그대로 옮긴 거라며 ‘야당스럽다’와 ‘민주대다’라는 두 단어의 뜻을 적어놨다. 야당스럽다는 ‘보기에 매몰하고 사막한 데가 있다’, 민주대다는 ‘몹시 귀찮고 싫증 나게 하다’라는 의미란다. 설마 진짜 이런 단어가 있겠나 싶어 곧장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허걱, 실제로 존재하는 순우리말이었다. 내친김에 좀 더 검색해 보니 매몰하다는 ‘인정이나 싹싹한 맛이 없고 쌀쌀맞다’, 사막하다는 사막처럼 무미건조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악하다’라고 풀이돼 있었다.
‘누가누가 못하나’ 되돌이표 끊고
민생 정치로 유권자 선택 받아야
‘누가누가 잘하나’는 최장수 동요 노래자랑 프로그램이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이 예쁜 표정 지으며 두 손 꼭 맞잡고 리듬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부모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비록 지나친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경연 명칭이 바뀌기도 했지만 1964년 첫 방송 후 56년이 지난 지금도 공중파를 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그 자체로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기 때문일 거다.
정치권은 어떤가. 조금이라도 잘하려고 애쓰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누가누가 못하나’ 경쟁에 매몰돼 있진 않은가. 여당은 야당 복, 야당은 여당 복이 만병통치약이란 착각에 스스로의 힘으로 민심을 얻으려 노력하긴커녕 오로지 서로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진 않은가. 지난 총선 때 여당의 압승은 지리멸렬한 야당 덕이었고 최근 야당의 지지율 1위 탈환은 무능한 여당 덕이 컸으니 2022년 대선 때도 ‘상대의 실수가 곧 나의 행복’이 될 것이란 맹신에 빠져 있진 않은가. 여의도 정치는 이런 야당스럽고 민주대는 구태에서 대체 언제쯤 헤어날 것인가.
‘누가누가 못하나’는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38%, ‘잘못하고 있다’는 53%로 집계됐다. 미래통합당은 더욱 심각하다. ‘야당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20%인 데 비해 ‘잘못하고 있다’는 69%에 달했다. 심지어 무당층의 긍정 평가는 14%로 민주당 지지자의 긍정 평가(19%)를 밑돌았다. 대안 제시 없이 매몰하고 사막한 대여 공세만으로는, 국정 운영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며 국민을 귀찮고 싫증 나게 해서는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게 한국 정치의 오랜 경험칙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들어 여야 모두 나름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뽑은 뒤 9월 정기국회부터는 민생과 협치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통합당도 정강 정책에 당명까지 바꾸며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는 각오다. ‘광주 무릎 사과’가 변신의 신호탄이란 얘기도 들린다. 4·15 총선 후 넉 달간의 샅바 싸움과 시행착오를 딛고 이제야 민생국회에 올인하겠다니, 만시지탄에 더해 또다시 공수표에 그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민생이 딴 게 아니다. 자기 당과 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民)의 삶(生)을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 된다. ‘누가누가 잘하나’ 기준도 결코 복잡하지 않다. 여당은 일을 처리하더라도 좀 ‘나이스하게’ 하고, 야당은 투쟁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으며, 그 과정에서 말 한마디라도 세련되고 정제되게 해달라는 요구다. 이게 그리 어려운가. 이 정도 능력도 없으면서 어찌 집권을 꿈꾸는가. 야당스럽고 민주대는 정치는 이제 그만. 1년 반 뒤 유권자의 선택은 ‘누가누가 못하나’의 되돌이표를 먼저 끊는 자가 받게 될 것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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