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강천석 칼럼] 民心 잃으면 공수처 열 개 만들어도 退任 대통령 못 지켜

Shawn Chase 2020. 8. 16. 13:00

조선일보 

입력 2020.08.15 03:20

말 따로 행동 따로… '僞善 정치'가 판 구멍에 자기네가 빠져

강천석 논설고문

민심(民心)은 대통령의 갑옷이다. 그게 사라지면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재임 중에는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만들어 주고, 퇴임 후에는 대통령의 안전을 지켜준다. 퇴임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면 이 정권이 '살아서는 감옥(監獄)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마라'며 20년 이상 징역을 선고하고 발 뻗고 잘 수 있었겠는가. 민심을 잃으면 대검찰청 위에 공수처(公搜處)를 열 개 스무 개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관례대로 정해진 길을 따라 간다.

청와대 심복(心腹)들, 내각과 여당 내에 깔아놓은 복심(腹心)들, 정보·수사기관에 심은 수하(手下)들은 민심을 살피라고 월급을 주는 자리다. 돌아왔다가도 떠나고, 떠났다가도 돌아오는 게 민심이다. 정책 역시 때론 성공하기도 하고 때론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엔 '민심에 일희일비(一喜一悲) 않겠다'는 태도가 의연(毅然)하게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이 숨이 가빠할 때마다 대통령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읊조린다면 문제가 다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가 39%, '잘못하고 있다'가 53%로 나왔다. 취임 후 최저치라고 한다. 이 난리통에도 대통령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게 우선 놀랍다. 더 놀랍기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민심을 도둑맞은 양 부산을 떠는 대통령 사람들 모습이다. 제 발로 가출(家出)한 민심이란 걸 아직도 모른다. 8월 말 9월 초면 집값이 꺾일 거라는 호언장담도 여전하다.

청주 집과 강남 집을 오락가락한 비서실장은 국민을 화나게 했다. 그러다가 결국 무주택자가 됐다. 두 집 중 한 채를 처분한다면서 팔리지 않을 비싼 가격에 내놨다가 슬그머니 거둬들인 전 민정수석은 놀림감이 돼 청와대를 나갔다. 다른 공직자에게 다주택 처분을 독려한 사람들이니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오르지 않을 집은 보유하고 가격이 오를 집은 팔아야 한다'는 걸 공직 채용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또 있을까. 이 정권 어느 누가 이런 원칙으로 세상을 한 번이라도 살아 봤는가.

이 정권은 똑같은 부동산 실험을 3년 사이 23번 실시했다. 매번 조건을 달리하면 모를까 실험실의 쥐에게도 이런 실험은 해선 안 된다. 부동산 대책은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비서관이 틀을 정하고 경제부총리·국토부장관 등이 내용을 채워 넣었을 것이다. 책임을 물으려면 그들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정권 사람들에겐 편집증(偏執症)이 있다. 그렇다 쳐도 어떻게 실험실에서 발버둥치는 개구리 사지에 핀 박듯 국민 상대로 태연하게 실험을 계속 했을까. 등 떠미는 강력한 손이 있는 것이다. 대통령 말고 달리 누가 있겠는가.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공식이 있다. '국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라. 큰 조각을 내 편으로 삼고 작은 조각을 희생양(犧牲羊)으로 만들라'가 그것이다. 장기 집권을 향한 다수파(多數派) 공작이다. 사회 각 부문 간에 대립을 격화시켜 온 이 정부 모든 정책 속 일관된 흐름이다. 그러다가 부동산에서 탈이 났다. '제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내 집 갖고 싶은 사람'을 계산에 빠뜨린 것이다.

다수파 공작을 정의(正義)로 포장하는 정치가 닿는 곳은 위선(僞善)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그렇게 선전하는 정권이 자기 자식들에겐 그 자리를 권하지 않는다. '법원 개혁'의 결과로 대법원이 김경수 경남지사와 조국 전(前)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는 쪽으로 마음 놓고 내기를 걸게 됐다. '개혁된' KBS·MBC는 '지지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한 채 정권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자유'만 누린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뽑는 권력'과 '선거로 뽑지 않는 권력' 간에 견제와 균형이 기초다. 대통령과 국회가 선거로 뽑히지 않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지배하면, 소수(少數)는 말살되고, 다수(多數) 독재가 탄생한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게임이다. 심판들이 어느 한 팀에 선수로 가세(加勢)하면 불공정한 경기가 아니라 축구가 아니다.

대통령을 지키는 마지막 갑옷은 민심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누구 하나 '문제는 대통령입니다'라고 입도 벙긋 못한다. 역사의 보복은 반복(反復)과 되풀이다. 운명의 실타래는 결국 이번에도 이렇게 풀려가는 모양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5/20200815000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