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박원순 10년전 유언장 "장례 조용히 치러라, 부음도 내지 마라"

Shawn Chase 2020. 7. 10. 13:05

 

[중앙일보] 입력 2020.07.10 09:57 수정 2020.07.10 10:04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여 년 전에 남긴 유언장에는 가족들, 특히 아내에 대한 감사함이 담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 7시간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박 시장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 뉴스1

2002년 박 시장이 출간한 책에 수록된 유언장은 자녀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한다.  
 
박 시장은 "유언장이라는 걸 받아 들면서 아빠가 벌이는 또 하나의 느닷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나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고 적었다. 또 "유산은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고 적었다.  
 
박 시장은 가난한 집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평생 농촌에서 땅을 파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워 나를 뒷바라지해 주신 그분들은 내게 정직함과 성실함을 무엇보다 큰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고 적었다.  
 
박 시장은 "내가 너희에게 집 한 채 마련해주지 못하고 세간조차 제대로 사주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며 "그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능력이 안 되는 나를 이해해 달라"고 적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면서 "너희가 아무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거창한 부모를 가지지 못했다 해도 전혀 기죽지 마라. 첫 출발은 언제나 초라하더라도 나중은 다를 수 있다. 인생은 긴 마라톤 같은 것이다. 언제나 꾸준히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인생을 잘사는 것"이라고 남겼다.  
 
박 시장은 이어 아내에게도 유언을 남겼다.  
 

 


박 시장은 "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쑥스러워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아내라고 써 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참 잘못했다는 반성부터 앞선다"며 "변호사 부인이면 그래도 누구나 누렸을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 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 고되었을 당신에게 무슨 유언을 할 자격이 있겠나. 오히려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내 참회문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라고 남겼다.  
 
박 시장은 또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게 또 하나 있다"며 "아직도 내 통장에는 저금보다 부채가 더 많다"고 털어놓았다.  
 
박 시장은 아내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남기기도 했다. 박 시장은 "당신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내가 소중히 하던 책들을 대학 도서관에 모두 기증해달라", "안구와 장기를 생명나눔실천회에 기부했으니 그분들에게 내 몸을 맡겨달라", "화장을 해서 시골 마을 내 부모님이 계신 산소 옆에 나를 뿌려달라"고 당부했다.  
 
박 시장은 또 아내에게 "당신도 어느 날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다"며 "그래서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한다"고 남겼다.  
 
장례식을 조용히 치러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내 부음조차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신문에 내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박원순 10년전 유언장 "장례 조용히 치러라, 부음도 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