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행

통독 30주년, 동서독 국경검문소를 가다

Shawn Chase 2020. 4. 28. 20:00

글·사진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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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지역에서 바라본 체크포인트 찰리. 개리슨캡을 쓴 미군이 동독 쪽을 감시하는 모습이다. 현재 찰리 검문소 건물은 레플리카이고, 실제 건물은 달렘연합군박물관에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어 1990년 통일을 완성한 독일이 올해로 통일 30주년을 맞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은 패전국 독일을 분할 통치했다. 소련 점령지 내에 위치한 수도(首都) 베를린도 4개국에 의해 분할됐다. 미국·영국·프랑스 점령 지역은 서독이, 소련 점령 지역은 동독이 되면서 베를린도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었다.
 
서독 지역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바라본 동독 지역. 정모를 쓴 소련군 병사가 보인다. 체크포인트 찰리 옆에 ‘당신은 지금 미군 점령 지역을 떠나고 있습니다(You are leaving the American sector)’라는 글이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로 적혀 있다.
  서베를린은 동독 안의 섬이었다. 소련은 한때 육로와 수로를 차단했고, 이에 연합국은 베를린 하늘을 통해 서베를린에 먹을 것을 날랐다.
 
  서독 사람들은 졸지에 서베를린에 남겨진 부모형제, 친구들과 연결하기 위해 ‘길’을 만들려 애썼다. 통일 이전까지 동독과 서독 간에는 도로 10개와 철도 8개, 내륙운하 2개, 그리고 항공로 3개 노선이 존재했다. 동·서 베를린 간에는 8개의 통과로가 존재했다.
 
1961년 10월 22일 오페라를 보기 위해 동독으로 가려던 미국 외교관 알란 라이트너의 소련 측 검문에 미국과 소련이 충돌했다. 소련군이 T–54전차 10대를 동원하자 미군은 이에 질세라 M48전차 10대로 17시간 동안 대치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 서베를린으로 가는 관문은 알파, 브라보, 찰리 등 세 곳의 체크포인트가 있었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아우토반 고속도로 A115의 처음과 끝에는 당시 연합군이 세웠던 주요 검문소 중 두 개가 자리했다. 동·서독 접경 헬름슈테드·마리엔 본이 고속도로 A115의 출발지인 체크포인트 알파(Checkpoint Alpha), 도착 지점인 서베를린 드라이린덴이 체크포인트 브라보(Checkpoint Bravo)였다.
 
체크포인트 찰리의 벽박물관(Museum Haus am Checkpoint Charlie) 입구. 체크포인트 찰리의 기념물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
  세 개의 검문소 중 그 형체가 보존된 곳이 베를린 중심 베르나우어에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당시 동·서 베를린을 왕래하는 외교관, 군인 등 외국인만을 위한 곳이었다. 국경 검문소는 브란덴부르크문(門), 베를린 장벽과 함께 독일 분단의 상징물이다. 체크포인트 찰리에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통일된 한국 판문점에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1985년 재독 작곡가 윤이상(작고)의 권유로 부인 신숙자와 두 딸 규원, 혜원을 데리고 월북했던 오길남 박사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박물관에서 북한 인권상황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허물기 시작한 날,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러시아 망명음악가 로스트로포비치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을 연주했다.

냉전시절 전설적인 스파이들의 교환이 이뤄졌던 글리니케 다리. 이 다리를 무대로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스파이 브릿지〉를 만들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다.

1961년 8월 15일 동독 경계병 콘라드 슈만이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은 유일한 경계인 철조망을 뛰어넘고 있다. 소련과 동독은 경악했고 이를 계기로 1963년 총 400만 마르크를 들여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야외 미술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변한 슈프레강 변의 장벽. 서베를린을 포위했던 총길이 약 160km, 높이 3.6m의 장벽 중 약 1.3km 구간을 남겨 시내에 복원해 명소로 자리 잡았다.

통일 이전 도로를 이용한 여객은 전체 여객 중 85%에 달했다. 고속도로 A115 도착지점인 서베를린 드라이린덴에 위치한 체크포인트 브라보. 동독은 검문소를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건축해 차량과 보도 이동인원의 통제와 검문을 했다.

고속도로 A115 출발지점의 체크포인트 알파. 박물관 내에는 트렁크에 몸을 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건 사고를 소개·전시하고 있다.

독일 중부 튀링겐 지역의 동·서독 국경 잔해물. 베를린을 제외하고는 장벽 대신 철조망 장벽을 쳤다. 방어시설이 없는 왼쪽이 서독 지역, 대전차 장애물이 있는 오른쪽이 동독 지역이다.

튀링겐 지역의 프리랜드 야외 박물관(Freiland Museum)에 있는 동독군 감시탑. 감시탑 아래 시멘트 블록길은 동독군의 순찰로다. 감시탑은 현재 정부에서 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