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현대車 '2012년 대박의 추억'

Shawn Chase 2020. 3. 20. 23:51


조선일보 
  • 윤형준 기자
  • 입력 2020.03.20 03:09

    - 생산늘려 점유율 높이기 역발상
    BMW 등 가동중단해 틈새 노려
    2012년 침체 때 유럽 투자 늘려 판매량 11% 증가했던 사례 있어
    美·유럽시장 회복 안 되면 위험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코로나 쇼크'로 생산량을 줄이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오히려 생산량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역발상 전략을 채택했다. 현대차는 19일 "최대 주 60시간 근무안을 노조에 제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내 공장 증산(增産)에 나선 것이다. 현재 현대차는 평일과 토요일 특근을 합쳐 주 48시간 근무체제인데, 일요일 특근(8시간) 및 잔업 등을 추가해 생산량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기아차도 근무 시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18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야적장에 대기 중인 완성차들의 모습.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을 중단하거나 감산에 들어갔다. 사진은 18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야적장에 대기 중인 완성차들의 모습. /연합뉴스
    미국·유럽 주요 자동차 공장이 우한 코로나 사태 여파로 잇따라 가동 중단을 선언한 상황에서, 시장의 빈틈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성공한다면 또 한 번 세계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존재감을 높이는 '퀀텀 점프'가 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수요 침체 상황에서 재고만 쌓일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의 '담대한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공하면 또 한 번 '퀀텀 점프'

    지난달 코로나 여파로 인한 중국산 부품 수급 차질로 수차례 공장을 세웠던 현대차는 이후 중국 공장 조업이 재개되면서 현재는 공장 가동률이 100%로 정상화됐다. 지난달 현대차는 약 8만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는데, 일단 생산량을 높여 차질분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제네시스 GV80(대기 기간 6개월), 팰리세이드(5개월), 그랜저 하이브리드(5개월) 등 인기 차종을 빠르게 출고해 계약 취소 사태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증산을 통해 해외 공장의 공급량 부족에도 대응할 수 있다. 18일(현지 시각)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이 공장에서 엔진을 공급받는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연쇄적으로 멈췄다. 현대차 체코 공장,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도 감염 확산 우려로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2주간 가동을 멈춘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생산이 늘어나면 일부 차종에 한해 수출 물량으로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증산을 통해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미국·유럽의 자동차 생산 대수는 2018년 총 3868만대였는데, 올해는 미국·유럽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멈춘 탓에 5~10% 정도 감소할 전망이다. 이 틈을 파고들겠다는 의도다. 현대차는 시장이 침체했을 때 오히려 대규모 투자를 하고, 공급 물량을 늘리는 '역발상'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인 성공 사례가 있다. 2012년 초 유럽에서 투자를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 위축은 위기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유럽 전략 차종(i20 등)을 따로 출시했다. 2012년 유럽 자동차 수요는 전년 대비 7.8% 감소했지만, 현대·기아차 판매량은 오히려 11.6% 증가했다. 점유율도 5.1%에서 6.1%로 높아졌다.

    실패하면 '역대급 재고' 떠안아야

    현대·기아차의 '도박'은 실패할 위험도 적지 않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유럽 시장이 조속히 회복되지 않으면 자칫 재고만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줄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BMW는 18일(현지 시각) 유럽 전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어 생산량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공장을 세운 유럽 폴크스바겐,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르노, 푸조시트로앵 그룹(PSA)과 미국 포드 등도 코로나 확산 방지와 함께 수요 급감을 공장 가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들었다. 완성차 공장이 멈추자 보쉬·콘티넨털·마그나 등 주요 부품사와 굿이어 등 타이어 제조업체들도 납
    품할 곳이 없어 생산 중단에 돌입했다. 영국 시장조사 업체 LMC 오토모티브는 올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전망치를 우한 코로나 이전에 비해 400만대 줄어든 864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현대차가 최악의 시장 상황에서 던진 승부수가 성공하려면,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고,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유연한 공략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