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576호] 2019.09.30
▲ 지난 9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의원총회에서 금태섭·이석현 의원 등 참석자들이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내년 4월 총선에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사활이 걸려 있다. 21대 총선은 시기적으로 보면 정확히 집권 3년 차에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도 있지만, 2년 남짓한 나머지 집권 기간 국정동력이 이 선거를 통해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2년 넘게 수행해온 국정 방향을 근본부터 바꿔야 할지 모른다. 요즘 여당에서는 여러 이유에서 이번 선거가 매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대 총선은 집권 4년 차, 19대는 집권 5년 차에 치러졌다. 반면 18대는 집권 1년 차, 17대는 집권 2년 차 때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정권 초기에 선거가 치러지면 대통령의 의중이 공천에 크게 반영될 수 있지만 반대로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대통령의 공천 영향력은 점점 약해진다. 그런데 내년 총선은 아예 이런 구분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기상 대통령의 영향력이 아직은 살아있지만,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벌써 레임덕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 장관 임명 전만 해도 여당이 다음 선거에서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주도하는 보수대연합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 장관을 둘러싼 검찰의 칼이 조 장관 턱밑까지 겨누면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 못 나가는 속사정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총선을 앞둔 여당 의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친문(親文) 지도부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내 현실과 조 장관 논란으로 계속 악화되어가는 지역구 여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진 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찬·이인영 투톱 체제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조 장관을 엄호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당 내부에서는 비문(非文) 의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향한 반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게시판에는 ‘서초동에서 벌어지는 검찰개혁 집회에 민주당 의원이 왜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느냐’는 불만 섞인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리지만, 누구 하나 이 집회에 쉽게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당내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이런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 오간 의견들에 대해 “외부에 절대 내용을 발설하지 말라”며 수차례 의원들을 다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주간조선이 다수의 여당 의원들을 접촉해본 결과 이날 의총에서는 일단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게 터져나왔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서울 성북을)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당내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고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다른 발언이 나오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며 “다른 의견이 오가는 것을 외부에 보여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이날 의총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의총에서 ‘조국 사퇴’를 거론했다고 알려진 금태섭 의원(서울 강서갑)은 의총 후 친문 지지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받기도 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당이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를 모두 살피면서 어정쩡한 자세만 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사실 당이 지난 일주일 동안 어정쩡하지 않았나. 그날 의총에선 당이 이렇다 할 입장도 내지 않았던 것을 지적하면서 ‘이제 당이 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제 당이 좀 나서야” 특히 이런 당내 불만의 진원지는 지역구를 둔 비문 의원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영입했던 비례대표 의원들에 비해 지역구 의원들은 갈수록 악화되는 지역구 민심에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전통적 ‘스윙 보터’인 수도권과 충청에 강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변화 추이를 보면, 지역별로 인천·경기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49%에서 39%로 10%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부정적 평가는 46%에서 55%로 9%포인트나 늘었다. 충청에서도 지지율은 46%에서 41%로 5%포인트 빠지고, 부정 평가는 47%에서 56%로 9%포인트 상승했다. 서울 역시 지지율 하락 폭은 1%포인트였지만 부정 평가는 49%에서 53%로 상승했다. 충청권 한 중진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민정수석 출신 장관 후보자와 가족을 청문회 기간에 검찰이 수사를 시작해 끌고 가는 게 정당한 거냐, 과잉수사 아니냐는 논란과는 별개로 (조국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인 인식에 비해 높다는 것에는 (지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PK(부산·경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한 초선의원 역시 주간조선에 “(조국 장관 임명과 관련해) 지역구 민심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이번 조국 사태의 영향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곳은 TK(대구·경북)이다. TK 출신인 민주당 김현권 의원(비례대표·구미을위원장)은 전화통화에서 “수도권에서는 조국에 대해 잘 알고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 민심이 돌아서고 실망했는데 TK에서는 애초에 여권 인물에 대해 관심을 많이 두지를 않는다”며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삭발을 하니 화도 나고 마음도 안타까운 분들이 있지만 기존 지지자 쪽에서 움직이지 지지층 전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여당의 전통적 약세 지역인 TK를 제외하고는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있고, 지역구 의원들이 가장 먼저 위기감을 느끼는 셈이다. 수도권과 충청 의원들의 위기감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석상에서 당청에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는 것은 공천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공천은 친문계인 이해찬 대표가 주도하고 있고, 공천룰을 만드는 것은 대통령의 복심이라고까지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은 ‘조국 정국’이 굴러가고 있는 시기에도 공천 물갈이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양 원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백원우 부원장이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해 신호탄을 쐈고, 3선 이상의 다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용퇴론이 대두하고 있다. 경기 부천 오정구를 지역구로 둔 5선의 원혜영 의원도 다음 총선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사태에 대한 당청의 스탠스에 불만을 갖고 있는 민주당 내 의원들의 더 큰 고민은 출구전략을 세우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문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청문회 직후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을 고심할 때 당에서 더 정확하게 반대 입장을 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강기정 정무수석이 이번 정국에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많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6일 오후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곧장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제13호 태풍 ‘링링’ 북상에 따른 대응상황을 점검했다. 링링 점검회의 직후인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약 4시간에 걸쳐 노영민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등과 조국 후보자 임명 여부를 놓고 장시간 회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찬반 의견과 임명 단행이나 철회가 가져올 ‘후폭풍’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후 주말 동안에는 청와대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는 찬성 의견도 있었지만 핵심 측근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강기정 수석에 대한 불만 문 대통령은 각계의 의견을 종합한 뒤 9월 8일 오후 4시쯤 측근인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대국민 메시지’ 초안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도 ‘임명할 경우, 지명 철회할 경우’ 모두를 대비해 연설문을 작성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조 장관 임명 여부를 놓고 결론을 내지 못했던 셈이다. 이때 대통령과 당 사이를 조율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당내 비문계를 비롯한 포괄적 의견보다는 ‘여기서 멈춰서는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다’는 당 지도부 의견을 주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사실 이때 당내 다양한 의견이 대통령에게 들어갔으면 조 장관에 대한 지명 철회도 가능했을 텐데, 대통령이 너무 기계적 보고만 받은 것 같다”며 “사실상 이때 당으로서는 이번 사태에서 빠져나올 타이밍을 놓쳤다”고 말했다. 강 수석은 지난 8월 30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벌해달라’는 취지의 한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사태를 수습할 타이밍까지 놓친 상황에서 민주당은 정국 주도권을 야당도 아닌 검찰에 완전히 내어준 모양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여당의 한 핵심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당의 입장이 굉장히 애매해졌다”며 “검찰이 처음에는 정경심 교수의 지시를 받아서 한국투자증권 PB(프라이빗뱅커)가 문서를 위조했다고 하다가 공소장에는 정경심이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 율사 출신 의원들에게 물어보면 공소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애매해졌다”며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실상 법원이 정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할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 역시 “수사에 관한 정보가 계속 검찰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수사 상황을 국민들이 지나치게 상세히 알고 있다”며 “피의사실이 계속 흘러나오면서 언론과 여론을 통해 상황이 주도되고 관리되고 있는데, 이 정보의 출처인 검찰 수사가 끝나야 당과 청와대도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빨리 마무리되길 바랄 뿐” 최근 지지자들의 반발에 쫓겨 당에서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검찰이 조국 장관의 서울 방배동 자택을 압수수색한 하루 뒤인 지난 9월 24일 민주당 지도부는 “피의사실 공표가 계속된다면 검찰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수사기관인 검찰을 다른 수사기관인 경찰에 고발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을 고발하는 것은 집권 여당임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본인 휴대전화에 이해찬 대표를 비방하는 문자가 들어온 화면을 보는 사진을 최근 기자에게 찍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내에서도 이견이 나올 만큼 ‘검찰을 고발한다’는 방안이 논란이 되자 민주당은 9월 25일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일부 언론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민주당이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어 이에 대해 바로잡고자 한다”며 “민주당은 현행법상 피의사실 공표는 명백한 위법행위이기 때문에 위법행위를 하는 검사에 대해 고발을 검토한다는 것이지 국가기관인 검찰을 대상으로 고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비문계 의원 중 일부는 당이 검찰과 각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이번 사태를 더 오래 끌고 가는 원인만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이미 두 달 가까이 검찰 수사가 계속되는 마당에 이제 와서 피의사실 유출을 놓고 검찰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사의 반사이익을 받아 정권을 잡았던 현 여당이 검찰과 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충청권 한 중진의원은 전화통화에서 “검찰 수사가 조기에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수사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초선의원도 “조국 사건은 조국 사건이고 선거는 선거다.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조국 정국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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