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남녀심리

감출까 말까, 멋쟁이의 선택은?

Shawn Chase 2019. 7. 20. 20:41


‘천하제일겨털대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자신의 겨드랑이를 보이고 있다. 불꽃페미액션 제공

‘천하제일겨털대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자신의 겨드랑이를 보이고 있다. 불꽃페미액션 제공

지난 6월 29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는 이색적인 대회가 열렸다. 이날 열린 ‘천하제일겨털대회’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동안 꾸준히 참가자들이 모여드는 대회다.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겨드랑이털을 노출하는 것이 점점 금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지만, 이 대회는 여전히 유독 여성들에게만 겨드랑이털을 깎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요구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 맞서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날 함께 열린 행사의 이름은 ‘찌찌해방만세’였다. 상의를 벗은 상태로 여성의 유방을 가리지 않고 노출하는 행사다. 남성이 하면 아무렇지 않지만 여성이 했을 때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유두·겨드랑이털 노출을 거리낌없이 시도해 세간의 인식에 도전한 것이다. 

유명 연예인 화사와 설리는 노브라 패션 
행사를 연 여성주의 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활동가는 “대회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목적 자체는 여성의 몸에만 가해지는 차별적인 시선과 인식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엄숙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강한 어조의 구호를 외치는 대신 겨드랑이와 벗은 상체를 노출하며 자유로움을 즐겼다. “실생활에서, 특히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브라(브래지어)를 차면 땀이 차서 답답한 정도를 넘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많은데, 마음대로 벗고 다니기 어렵다는 여성들이 정말 많다.” 한솔 활동가를 비롯해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의 바람은 ‘감추지 않아도 되는 동등한 입지’다.

불꽃페미액션은 행사 후 가슴을 드러낸 행사 사진을 그대로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다른 이용자들이 볼 수 없게 사진이 ‘차단’되는 조치를 당했다. 해외에서는 여성의 상의 탈의가 시위의 한 형태이자 패션의 요소로 흔히 활용되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사진이나 영상이 차단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페이스북코리아의 차단조치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같은 형태로 반복된 탓에 단체는 항의시위를 벌인 뒤에야 차단을 해제시킬 수 있었다. “남성의 흔한 유두 노출은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놔두면서 선정적인 이유가 아닌 여성운동 차원의 행사에는 차단조치를 반복하는 차별적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 불꽃페미액션의 주장이다. 

여성단체들이 노출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에 저항하는 움직임에 더해 유명 연예인 화사와 설리가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패션을 공개하면서 노출에 관한 논의는 더욱 불이 붙었다. 이들 연예인은 상의를 벗거나 민감한 부위를 노출한 것도 아니었지만 윗옷 겉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자취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설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노브라 사진을 올리고 여러 말이 많았지만 숨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가진)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며 “자연스러운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편안함과 건강, 차별에 맞서는 저항 등의 이유로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코르셋’을 벗어던지려는 움직임이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과는 달리 남성들에게는 외면을 더욱 꾸미고 다듬는 유행이 나타나고 있다. 외모에 치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루밍족’이라고 이름 붙은 이 집단의 유행은 그동안 남성적인 것이라고 지칭되던 외양이나 행동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머리카락 길이는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게 잘라 포마드로 단정하게 정리하는 한편 수염을 기르더라도 일정한 길이와 폭으로 다듬는 기술을 배운다. 수염과 머리카락 이외의 체모는 더욱 금기시되기도 한다. 특히 여름철 반바지를 입으면 드러나는 다리털은 아예 말끔하게 면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루밍족 사이에선 보편적이다.

“그동안 남자들이 몰라서 안 가꿔온 부분들 중에 적은 노력으로 인상이 확 펴지는 곳들이 몇 군데 있는데 보통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서울에서 ‘바버샵’을 운영하고 있는 최민기씨(30)는 눈썹을 다듬고 얼굴 잡티를 가려주는 크림만 발라도 남성의 첫인상이 크게 변한다고 말했다. 번역하면 이발소 또는 이용원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굳이 바버샵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연배가 높은 남성들이 가는 이용업소와 달리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콧털과 얼굴에 난 잔털을 깎아주고 안면 마사지를 해주는 점은 고전적인 이용원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서비스 금액은 2~3배를 훌쩍 넘는다. “매일 머리를 정돈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손님께 가르마를 넘기고 포마드로 고정시키는 것부터 해서 염색·손상모 관리법과 습식·건식 셰이빙(면도) 방법도 알려주고, 네일숍처럼 손·발톱 정리도 한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남성은 오히려 외모 다듬는 그루밍족 
미용뿐만 아니라 또 다른 요소인 화장과 패션까지 신경써야 겨우 그루밍족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시장조사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1조2000억원에 달했다. 1인당 지출액으로 환산하면 약 5만500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세 이상 성인 29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그루밍족 현황과 인식’ 조사에서도 남성 응답자의 83.9%가 염색이나 펌을 하는 등 미용 목적의 두발 관리를 했고, 58.7%는 기초화장품 외의 추가 화장품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스스로를 그루밍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남성도 전체 응답자 가운데 40.6%에 달했다. 

실제로 상대적으로 지출 여력이 낮은 20대부터 연령 차이가 나는 40대까지 미용을 위해 필수적인 지출은 감수한다는 응답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서비스 가격이 비교적 높은 제모·왁싱(20대 28.4%, 40대 25.0%)이나 반영구 화장(20대 13.4%, 40대 15.9%)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성별에 따라 미용과 패션 등 외모 가꾸기 면에서의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은 두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외모로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높아지면서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코르셋을 벗으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대로 남성은 외모 변화가 경쟁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남녀 공용 피부·체형관리 서비스업체를 운영하는 최진현씨(39)는 “현장에서 보면 취업을 앞둔 특정 연령대에서는 오히려 남성 고객 비중이 더 높아지는 때가 나타나기도 한다”며 “여성들도 외모를 꾸미기만 하는 관리는 지양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장기적으로도 유용한 관리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외모 관리의 유행이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넘어 중립적인 지향점으로 모인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유행의 측면에서 볼 때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감정은 느끼면서도 전체의 시류를 뛰어넘거나 거스르지 않는 지점이 남녀 모두에게서 공통되는 ‘유니섹스’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은 차별적인 시선에 반발하는 한편 실용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패션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났다”며 “남성들은 영향력이 높은 연예인들부터 남성성을 강조하는 대신 중성적인 매력을 추구하는 유행이 이어지고 있어 그루밍족 사이에서도 이러한 기류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201327011&code=960100#csidxc16481db4b1403c94632c5e9baf7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