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태양광 발전

[특파원 리포트] 한국 원전이 으뜸이라는 IEA

Shawn Chase 2019. 6. 18. 00:33


입력 2019.06.17 03:13 | 수정 2019.06.17 05:07

손진석 파리 특파원
손진석 파리 특파원

지난달 중순 파리 에펠탑 옆에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자 간담회에 초청받았다. 원전(原電) 시장 분석을 총괄하는 피터 프레이저 IEA 전력시장담당 국장을 만나 명함을 건넸더니 그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저 국장은 "원전 시장에서 한국은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죠. 저희가 곧 펴낼 원전 보고서에서 설명할 겁니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IEA가 내놓은 원전 보고서를 보니 프레이저 국장이 '예외'라고 말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이번 IEA 보고서의 핵심은 주요 선진국에서 탈원전 속도가 빠른 반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속도는 더뎌 에너지 수급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더 늦기 전에 경고해야겠다 싶어 20년 만에 원전 보고서를 냈다"고 했다. IEA는 모든 에너지원에 대해 가치 중립적인 기구다. 그래서 탈원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배제했다. 대신 왜 원전 투자가 일부 국가에서 정체되고 있는지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원전을 지을 때 당초 계획보다 공기(工期)가 늘어지고 건설 비용이 많게는 3배까지도 불어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다. IEA는 이것이 원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며, 특히 미국·프랑스·핀란드 세 나라가 이런 일을 겪는 중이라고 했다.

반면 이런 고초를 겪지 않는 나라를 IEA는 딱 하나 찍어 이야기했는데, 그게 바로 한국이다. IEA는 "한국은 정책적으로 탈원전 중이지만 그동안 예외적으로 원전 건설 시 공사 기간, 투입 예산을 당초 계획대로 마무리하며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애초 구상대로 딱딱 맞춰 원전을 만들어내는 실력이 앞서 있다고 치켜세운 것이다. '예외'라는 표현은 '실력 으뜸'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런 IEA의 평가가 어떤 뜻인지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미국 같은 나라조차 원전을 지을 때 기술 제공업체에 끌려다니며 당초보다 지갑을 더 열고도 제때 마무리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설명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며 원자로 제작 등을 맡은 업체가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돈과 시간이 하염없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반면 지금까지 한국은 원전 건설 노하우를 빈틈없이 쌓아왔고, 꾸준히 원전을 지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 '큰손'으로서 힘을 보여줬다. 그래서 처음 약속한 조건을 업체들이 제멋대로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

IEA가 미국·프랑스·핀란드와 견줘 한국의 원전 투자 효율성을 치켜세운 건 한쪽 구석에 처박힌 내용이 아니다. 전체 105쪽의 보고서를 두 쪽으로 압축한 요약본에도 들어 있을 정도다. 우리가 초일류로 끌어올린 분야를 스스로 허물어 버리고 있다는 걸 재차 확인한 순간이었다. 공든 탑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6/20190616021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