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소득 늘려 경제 성장할 수 있다면 가난한 나라 하나도 없을 것”

Shawn Chase 2019. 5. 30. 23:57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24일(金)


▲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47층에서 서울 전경을 보며 최빈국 시절과 경제성장 과정, 기업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시련을 딛고 선진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개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권 부회장의 왼쪽으로 1980년대 경제성장과 서울의 상징으로 최고층 빌딩이었던 63빌딩이 보인다. 곽성호 기자 tray92@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 

소득주도성장 방향이 옳다면  
베네수엘라는 선진국 됐을 것  
短期경기진작 할때나 쓸 정책  

투자·소비·수출 3大성장엔진  
하나같이 제역할 못한 채 위기  
만나는 기업인마다 경제 탄식  

2004년 靑비서관으로 일할 때  
‘성공한 대통령’만들려 늘 토론  
盧, 건의 수용해 기업친화 행보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3%로 충격적인 결과를 안겼다. 반도체 특수마저 탄력을 잃으면서 수출은 6개월 연속 뒷걸음질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청년실업률은 지난 4월에도 11.5%를 기록했다. 이미 설비투자 증가율은 4.4% 감소(2018년 기준)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도 많이 꺾였다. 성장률, 고용, 투자, 수출, 심리지표 등이 모두 극도로 위축된 누란지위(累卵之危) 같은 모습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되뇌는 경기 낙관론이 무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총성 없는 대전(大戰)인 미·중 무역분쟁 리스크까지 가세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압박의 강도는 앞으로 더 수위가 높아질 것이다. 금융시장도 수시로 ‘발작(發作)’을 일으킬 것이란 분석조차 들린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 공급체인 교란,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기업·소비심리 저하, 금융여건 악화 등으로 세계 경제의 하강 위험도 더 커질 것이란 우려(국제금융센터)는 결코 흘려들을 사안이 아니다.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야말로 피가 바짝 마를 수밖에 없다. 소득감소, 체감물가 상승과 함께 장기간의 취업재수가 일상화된 데서 가계도 예외는 아니다.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1분위(하위 20%) 소득증가율은 -2.5%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의 고통도 더 가중되는 모습이다.  

한국 경제의 위중한 상황에 대한 정밀한 진단과 해법, 기업의 역할과 과제, 정부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 ‘대안’은 없을까.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현장에 밀착한 해법으로 조금이라도 갈증을 씻어 줄 순 없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점이다. 문화일보가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그가 정통 경제학을 공부했고 재정 고위관료를 거쳐 지금은 기업 가까이서 경영 현안과 애로를 직접 수렴하고 개선하는 창구 기능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2년 전 한미경제학회 주최 조찬포럼에서 “한국 경제에 소비, 투자, 수출이라는 3대 성장 기둥이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던 그다. 정책적인 불확실성이 외환위기 때의 3배에 달해 피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애석하게도 그의 분석은 크게 빗나가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전경련 회관에서 만난 권 부회장은 “회원사들이 모두 대기업인데 하나같이 경영이 힘들다는 얘기를 매일매일 하고 있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실물경제가 매우 좋지 않다. 경제 상황이 도대체 어떤 지경인가.

“평소 자주 가는 7000원짜리 백반 식당 주인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전경련 국제경영원(IMI)을 통해 평소에 중소기업 회장, 경영자를 자주 만난다. 중소기업 협력센터를 통해서는 1000개 기업에 무료로 경영 조언을 해주는데 모두 기업 환경이 왜 이렇게 악화했느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 그 자체다. 우리 경제가 지난 1분기에 0.3%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역성장은 2008년 4분기 -3.3% 이후 10년 만이다. 이 기간에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견실하게 성장했다. 우리만 어두운 터널에 진입한 형국이다. 올해 1% 성장률을 전망하는 기관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경제를 지탱하는 투자, 소비, 수출이란 3대 성장엔진이 모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1분기 설비투자는 10.8% 감소해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수출도 반도체, LCD 등 주력 품목 부진으로 2.6% 줄었다. 민간소비는 0.1% 증가에 그쳐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주요 2개국(G2) 무역전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악재가 분명한데.

“우리나라 국제 교역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피해도 자칫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미국은 이미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렸다. 또 3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강력한 추가 관세를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도 이에 맞서 6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하고 나머지 3000억 달러에 관세 부과 시 하락 폭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회장께서 원장을 겸하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의 연쇄적인 하락을 우려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다. 한번 떨어지면 다시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 국내 잠재성장률은 1980∼1990년대에 7.7%에서 2001∼2010년에는 4.4%, 2016∼2018년에는 2.7%로 하락했고 올해는 2.5%가 예상된다. 2030년대에는 1%대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잠재성장률은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 수준을 말한다. 실물경제·잠재성장률이 모두 하락한다는 것은 지금의 경제 상황도 어렵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의미로 귀결지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낙관적 평가를 하기보다 컨트롤타워로서 냉철한 현실인식 아래 경제 회생에 전력해야 하는 이유다.”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소득을 높여 성장률을 올리고자 하는 것은 케인스 이론에서 일시적인 수요가 부족할 때 단기간의 경기 진작을 기대하고 추진하는 일회성 정책이다. 내가 경제학을 몇십 년 했는데 정통 경제학에는 없는 논리다. 정부가 주도해 소득을 높이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은 이미 선진국이 돼 있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기보다 사실은 임금주도 성장인 셈인데 임금을 올리고 가계소득을 올리고 다시 소비를 늘려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면 가난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할 수 있다면 모든 나라에서 진작 임금을 다 올리지 않았겠나. 지금은 구조적으로 실물경제와 기업경쟁력이 떨어져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소득이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권 부회장이 지적한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 1위란 천혜의 조건을 지녔다. 하지만 국유화한 석유로 각종 수당 확대, 주거·의료·교육 지원 등 정부 주도의 강력한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했다가 저유가와 국가부채 문제에 봉착했다. 이후 GDP는 70% 감소하고 100만%라는 초(하이퍼)인플레이션에 직면하며 파산했다. 국가 리더십, 지도자의 판단 미숙,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의 오류가 낳은 총체적 결과물인 셈이다.) 

―소주성의 간판 격인 최저임금이 2년 동안 29.1% 올랐는데.

“최저임금을 비롯한 국내 임금은 주요 선진국들과 견줘 낮은 수준이 아니다.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이 과한 수준도 아니므로 소득을 높일 여력도 부족하고 명분도 없다고 본다. 개방경제에서는 값싸고 질 좋은 물건과 서비스가 전 세계와 경쟁한다. 생산성보다 임금이 높아지면 제품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기업, 제품은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생산성보다 임금이 높아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지금처럼 과도한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짧은 기간 내에 급격히 올리면 기업의 물건값이 비싸지고 중소기업, 대기업은 해외로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최저임금을 줘야 하는 이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은 가게, 편의점 등 영세업자나 중소기업 등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직접 일하면서 비용을 감당하거나 자동화, 아웃소싱 등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고용 감소는 필연이다. 이미 줄줄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지 않나. 4월에만 실업자가 지난해보다 8만4000명이나 늘었다. 실업률도 4.4%로 같은 기간 0.3%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에 소득 최하위계층은 소득이 동기 대비 36.8%나 감소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업종과 지역 등 경영 환경이 모두 다른데 우리나라처럼 최저임금을 모든 지역, 모든 업종,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미국은 최저임금을 주별로 규율해 주(州)마다 다르고 싱가포르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갈등을 최저임금의 분야별 차등 적용으로 해결했다.”

권 부회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업종별 구분 적용, 산입범위 확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업종별로 생산성 및 지급능력이 다르므로 음식·숙박업 등 취약 업종에는 차등 적용하고 격월, 분기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최저임금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버스노조 파업에서 알 수 있듯 근로시간 단축 잡음도 요란하다.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경쟁력이 약화하고 노사갈등 심화 등의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정 기간 집중근로가 어려워지면서 연구·개발(R&D), 전자·바이오·게임·벤처 업계 등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첨단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전통 산업 개념에 따른 획일적인 근로시간 제한을 자유롭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영화산업, R&D 분야, 스타트업 등 집중적인 근로시간이 요구되는 분야는 근로시간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게 특례를 확대해야 한다. 영화 산업만 해도 여러 근로자가 모여 제작하는 특성상 여러 번 나눠 촬영하는 것보다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모여 제작하는 게 유리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또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탄력 근로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등 유연 근로시간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인세 인하와 상속세 부담 완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 노동개혁 필요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규제도 큰 규제, 덩어리 규제부터 풀고 노동생산성에 기반을 둔 노동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성호 기자 tray92@


―현재로써는 정부가 소주성 정책에 대한 기조 전환 계획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나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에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했다. 그때 비서관 회의에서 논의한 가장 큰 뼈대가 ‘어떻게 하면 (퇴임 이후) 성공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도록 할 것인가’였다. 그렇게 하려면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고, 국민 생활 수준이 좋아지고,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기업과 잘 접촉하지 않으려 했던 대통령께 ‘대기업 회장도 만나 투자를 권유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친기업 조치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이게 받아들여져 파주 LCD 공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폐지 등 친기업적·친시장적 조치가 이어졌다. 바라건대, 조금 있으면 과거 노 대통령 때처럼 국민이 잘사는 나라, 고용, 소득, 수출이 늘고 성장이 확대돼 경제를 중요하게 간주하는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많은 부문이 친기업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있다.” 

―법인세, 상속세 부담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 조세 환경은 왜 중요한가.

“자유경제 시장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성장하는 데 견인차는 결국 기업이다. 기업이 잘되면 법인세도 많이 걷히고, 월급도 많이 주니까 소득세도 많이 들어온다. 소득이 높으면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니까 소비가 살아나 최대 세수인 부가세도 잘 걷힌다. 이런 선순환이 되면 세수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금만 많이 걷겠다고 과욕을 부려 법인세를 올리고, 투자세액공제, R&D 공제 등을 축소하고 공제항목을 축소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 결과를 보면 GDP 대비 법인세를 기업들이 굉장히 많이 부담하고 있다. 뒤집으면 기업 하기가 어렵고 외국 기업들의 유인력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한국이 법인세를 22%에서 25%로 올리는 동안 미국은 35%에서 21%, 일본은 39.4%에서 23%, 프랑스는 33%에서 25%, 영국은 19%에서 17%로 각각 인하했다. OECD의 조세경쟁력 추이를 보면 2016년 12위였던 우리나라 순위는 지난해 17위로 2년 새 5계단이나 추락했다. 공직에 있을 때 외국인투자과, 해외투자과에 각각 근무했는데 외국 정책담당자를 만나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며 경쟁적으로 투자 유치를 벌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삼성전자가 영국 윈야드에 투자할 때는 영국 여왕이 직접 참석했고 항공 교통편도 아낌없이 제공했다. 삼성전자 공장으로 2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기니 영국 정부 입장에서 이보다 고마운 게 어디 있겠나. 모든 정부가 기업 투자 유치에 목을 매고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건 결국 일자리를 늘려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법인세,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고 외국 기업을 많이 유치하는 한편, 우리 기업이 해외로 떠밀리듯 나가지 않게끔 세밀한 정책적 노력을 펴야 한다. OECD 36개국 중 13개 국가에 상속세가 없고 상속세가 있는 7개 국가의 최고세율도 우리나라 평균 실효세율보다 낮다. 과도한 상속세율은 편법승계를 조장하고, 합법적으로 승계해도 몇 세대 못 지나 결국 경영권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한다. 국부 유출을 막고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을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는 게 국제적인 추세라는 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권 부회장과의 대화 수순을 기업 경영, 제조업 분야로 좀 더 깊숙이 옮겨 보기로 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부 정책이 옥죄기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부터 규제 철폐, 쇄신에 가시적 조치가 없다는 불만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권 부회장은 “대기업이라고 차별적 규제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공정거래법 규제는 소비자 보호 중심이다.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특정 품목에 대해 독과점을 규제할 뿐, 회사가 크다고 규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권 부회장은 지적했다.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는 말도 들린다. 왜 그러나.

“대기업이 되면 규제가 엄청나게 들어온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거나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묶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난다.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기업규제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63개 국가 중 47위다. 2013년에 39위를 보인 후 5년 동안 8계단 떨어졌다. 중견기업의 97.2%가 인수·합병(M&A) 경험이 없고 42.9%는 설비투자 계획이 없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대기업이 된다 해도 지배구조 관련 규제, 지분율 규제 등 경영 외에 소유권을 방어하거나 규제에 순응하느라 비용만 낭비하고 있다. 2107개 상장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가 38조 원 규모인데 이를 투자로 돌리면 49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거꾸로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가운데 12개 집단이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상장사 지분을 확보하는 데만 12조9000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크기에 따른 규제 때문에 국내 250명 이상 대기업 수는 701개로 미국 5543개, 독일 4252개, 일본 3567개, 브라질 3830개보다 훨씬 적다. 전체 기업에서의 대기업 비중도 0.09%에 불과해 OECD 36개국 중 33위다. 폴란드(16위), 터키(20위)보다 낮다.”

―국제기구는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고 지적한다.

“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이미 기업활동과 경제성장에 부담이 되는 것으로 파악해 개선 권고를 하지 않았나. 한국의 인구나 근로시간 단축을 고려할 때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하다, 생산성 제고를 위한 상품시장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생산성을 낮추고 불평등을 확대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스위스 IMD에서도 한국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노동생산성과 강성노조를 지적한 바 있다.

2015년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당시 좌담회에서 “GM이 전 세계 30개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매년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 공장은 한국 단 한 곳뿐”이라고 했다. 노동시장의 고비용, 저생산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한국의 임금수준이 미국, 독일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생산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는데 결국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극소수의 일부 강성노조가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취업 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생산성과 관련 없는 임금인상과 고용 보장 등을 담은 강성노조의 주장은 졸업생, 비정규직 등 취업 약자(弱者)의 고용환경을 악화시킨다.”  

―친노동에 치우진 정책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기업 운영 부담을 가중하나.

“당연하다. 기업 여건을 살피지 않는 노조 친화적 정책, 노동계 편향적 정책 환경이 두드러졌다. 강성 노조의 불법행위가 지속하면서 경영 전반에 노동정책, 노조 리스크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정규직 과보호 완화, 파견근로 허용범위 확대,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 연장 등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또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전 사업장에 대한 직장 점거 금지 등도 검토해야 한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유지 가능한 법과 제도의 설계,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제조업의 쇠락 원인과 개선 방안은. 

“지난 20년간 주력 수출 품목을 보면 새로운 수출 품목이 거의 없다. 제조업 경쟁력이 중국에 쫓기면서 도태 위기에 몰린 것은 노사 갈등, 강력한 규제, 엘리트를 키우지 않는 교육제도, 기득권의 저항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규제 수준이 강하고 정부 규제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이 크다. 산업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신산업도 마찬가지다. 비행금지 구역이 곳곳에 설치돼 활용이 어렵고 사전 허가가 필요한 드론 산업이나 개인정보 식별이 불가능한 데이터를 개인정보로 간주하고 상업적 활용을 금지하는 규제로 발전하지 못하는 빅데이터를 예로 들 수 있다. 규제를 완화해 벤처를 비롯한 기업들이 새로운 분야, 융복합 산업으로 쉽게 진출하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거센 업계 반발에 부딪힌 ‘우버’나 ‘타다’에서 알 수 있듯 공유경제 플랫폼조차 한국에서는 활용이 어렵다. 수요자가 선택하도록 해야지 공급자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원격진료 등 신산업도 한국에서는 의료업계 반발, 영리화 논란으로 무산됐다. 기득권을 지닌 이들의 개혁과 구조 조정에 대한 저항 때문에 산업혁신 동력이 맥을 못 추는 경우도 많다.” 

―규제는 어떤 것부터 풀어야 할까. 


“덩어리 규제를 놔두고 작은 규제로 접근해봐야 기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수도권 개발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수도권 규제, 대기업이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 업종에 진출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업종제한 등 대기업 규제, 드론·인공지능(AI) 등의 산업 발전을 위한 포지티브 규제, 포퓰리즘적인 국회 입법 풍토 등 덩어리 규제를 다뤄야 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가 성공할 수 있다. 근본 규제, 덩어리 규제 철폐가 시급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과거에 예외적으로 규제를 풀어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와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이를 참고한 싱가포르와 중국 상하이(上海)는 각각 마이스(MICE·회의·관광·전시·이벤트) 산업과 복합 레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권 부회장은 “우리가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개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규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규제비용 총량제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은 기업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해외 헤지펀드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이 크므로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혁신은 창조적인 파괴라는 말이 있다”며 “이를 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서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다른 나라는 다 하는데 우리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건 당연하다”고 경제주체의 뼈를 깎는 자성(自省)과 분발이 필요한 시기임을 상기했다.  

인터뷰 = 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