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전직 대통령 두 명 감옥 보내
⊙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제1야당 배제하고 패스트트랙 합의
⊙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없애겠다”… 견제 장치 없는 공수처 추진
⊙ 고른 인사, 적재적소 인사 다짐… ‘캠코더’ 인사 극성
⊙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환경부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허구성 드러나
⊙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제1야당 배제하고 패스트트랙 합의
⊙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없애겠다”… 견제 장치 없는 공수처 추진
⊙ 고른 인사, 적재적소 인사 다짐… ‘캠코더’ 인사 극성
⊙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환경부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허구성 드러나
2017년 5월 10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감동적이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은, 문 대통령 자신이 취임사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 몇 달 동안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내면서 민심이 두 조각 난 것을 걱정하던 국민들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됐다. 그는 국민통합을 되풀이해서 강조했고,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원로들의 ‘통합’ 호소 외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고 한 대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는 이 대목에서 기대를 품었겠지만, 그에게 반대했던 이들은 이 대목에서부터 가슴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 문 대통령은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간 곳이 없다.
2년 내내 ‘적폐청산’ 작업이 계속됐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든 누구든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의 일이다. 하지만 전례 없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용이나, 2016년 총선 당시 여론조사나 공천 개입까지 죄가 있다고 기소한 것은 분명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다스 실소유주 문제 등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문 정부의 검찰이다.
현 집권세력은 ‘촛불혁명’ ‘적폐청산’이라는 말로 이런 상황을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공공연히 ‘보수 궤멸’ ‘20년, 30년 집권’을 공언하는 마당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사법(司法)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한때 우리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던, ‘보수 정권의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내놓고, 그들을 지지했던 이들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하면서, ‘국민통합’이 가능할까?
지난 5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계 원로(元老)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다.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김우식 전 대통령비서실장),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끌지’이다”(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싸움에 에너지 소진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며 국민 뜻을 모아 협조, 호소해야 한다”(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주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빨리 진상 규명과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자는 데 공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협치(協治), 타협도 할 수 있다”며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대답했다. 언론은 이를 ‘선(先)적폐청산 후(後)협치’라고 해석했다.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가진 KBS와의 특집대담에서 “헤드라인이나 자막을 그런 식으로 뽑은 것”이라면서 “그러고 난 이후에는 그 자막, 헤드라인을 근거로 이런저런 비판을 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론에 책임을 전가했다.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라더니…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도 “취임식 이전에 야당 당사들을 전부 다 방문했다. 그 이후에도 아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주 야당 대표들이든 원내대표들이든 만나왔다”고 말했다. 여・야・정(與・野・政) 상설국정협의체를 합의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만남들이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여야(與野) 영수(領袖)회담이 열리면, 여러 현안이 풀리곤 했다. 이 정부 들어서는 그런 기억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국회 내 소수(少數) 정당들과만 합의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배제했다.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제1야당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제1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KBS와의 대담에서 “다수(多數) 의석을 가진 측에서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야당은 또 물리적 저지를 하지 않기로 하고, 그 해법으로 패스트트랙이라는 해법을 마련한 것”이라면서 “그 해법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독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조금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형식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주요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패스트트랙을 활용할 것을 상정했던 법정신에는 반하는 소리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은 패스트트랙 문제 등으로 국회가 공전(空轉)하자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동을 제안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 간 1대1 회동이 필요하다’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당 대표가 입만 열면 ‘보수궤멸’ ‘20년, 30년 집권’이라고 공언하는 마당에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마이클 이그나티예프 전 캐나다 자유당 당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인들이 적(enemy)과 적수(adversary)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적수는 꺾고 싶은 상대이며, 적은 말살해야 할 상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를 ‘적폐’로, ‘궤멸시켜야 할 대상’ 내지 ‘절대로 권력을 넘겨줄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는 언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 속으로 숨기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라면서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5대 인사 기준’이라는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첫 내각의 청문회에서부터 이 5대 기준에 반하는 사례들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자 문 정부는 새로 ‘7대 원칙’을 내놓았다. ‘5대 기준’의 적용 시점 등에 융통성을 주는, 한마디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에 상당 부분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속출했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헌법재판관 등이 15명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하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지고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법이 바뀌지 않은 이상 검찰은 과거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과거에 검찰이 그런 걸 문제 삼지 않았으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발생한 사건들도 문제 삼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이 정권 사람들에게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자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치마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 백지화
문재인 대통령은 “귄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라면서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광화문 대통령’을 내걸고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와 북악산을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청와대는 이 공약을 실천하겠다면서 청와대 산하에 ‘광화문시대위원회’까지 두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자문위원을 맡았다. 유홍준 자문위원과 전문가들은 지난 1월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문제를 종합 검토한 결과를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결론은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 이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장기적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백지화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사문제나 경제난 등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그런 현안들에 대해 남 말 하듯 말 한다고 해서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없앤다면서 공수처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면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앞세워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의 권한을 조정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도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 정부에서의 책무가 인사검증뿐만 아니라 권력기관들에 대한 개혁, 이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혁안(案)’대로라면,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 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고위 경찰관, 심지어 판사들까지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부패사건에 대해서뿐 아니라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에 대한 수사권도 갖게 된다. 모호한 직무유기・직권남용을 빌미로 행정부 공무원들은 물론 판사들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안’에 공수처에 대한 견제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무소불위의 ‘괴물 기관’이 탄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에 현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는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다수 참여할 경우, 그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과는 상반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안보도 강조했다.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는지는 몰라도 ‘안보위기’가 해결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기고한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기고문에서 “한반도의 하늘·바다·땅에서 총성은 사라졌다”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왔다”고 주장했다. 그 자랑이 무색하게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기고 사실을 발표한 5월 7일을 전후(前後)해 북한은 이스칸데르급 신형 탄도미사일을 연일 발사했다. “총성은 사라졌지만 미사일 폭음은 요란하다” “한반도에 봄(bomb・폭탄)이 성큼 다가왔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8년 9・19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한 군사합의서가 채택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합의서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라도 온 것처럼 광고하고 있지만, 안보 전문가들은 이 합의서로 인해 우리 육・해・공군의 정찰・작전 능력에 심대한 지장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주적(主敵) 개념은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지난 3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중단하고, 대대급 이하 소규모 훈련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박찬주 대장 공관병 갑질’ 시비, 과거사 문제, 기무사 계엄문건, ‘군인권센터’ 활동 등으로 군 지휘부는 정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급기야는 대민지원을 나왔던 공군 병사가 〈어벤저스〉 영화를 보겠다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황당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된다”고 한 말이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한미동맹’ 강화됐나?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북(對北)정책 등과 관련해 한미 간 이견이 심심찮게 노출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8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유세장에서 한국을 겨냥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촉구하면서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관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나 국제전문가들이 미국의 대중(對中)견제정책과 관련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을 언급할 때, 한국을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지난 5월 2~8일 남중국해에서 일본・필리핀・인도 해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작년 12월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목해 ‘거짓말쟁이(liar)’라고 비판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미 양국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한미 간에는 물샐 틈 없는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돌아가는 여러 상황을 보면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캠코더 인사
지금 돌아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 중, 가장 잘 안 지켜졌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인사’와 관련된 다짐들이다. 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라고 약속했다.
과연 그럴까?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캠코더 인사’라는 말이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캠코더’는 ‘(대선)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의 준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 인사 비율은 70%에 달해 박근혜 정부의 66.66%보다 높다는 분석도 있다. 바른미래당이 작년 3월 발표한 〈친문(親文) 낙하산 백서〉에 의하면, 작년 말 기준으로 340개 공공기관에서 434명에 달하는 캠코더 인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4월 8일 2기 개각(改閣) 때 새로 입각한 7명 가운데 4명은 호남 출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청와대는 ‘출생지’ 대신 ‘출신 고등학교’를 발표하는 꼼수를 썼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외교부 장관은 국제전략을 모르는 통역 출신이 맡았다. 4강 대사는 외교와는 무관한 정치인이나 청와대 출신들로 충원되고 있다. 장하성 주중대사의 경우, 그 전문성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그가 중국 대학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중국에서 책을 냈다는 점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정권 시절 국무총리와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이홍구씨를 주미대사로 발탁한 것이나, 중앙정보부 출신 골수 반공주의자 강인덕씨를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 같은 신선한 탕평인사는 없었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경호처에서는 박근혜 정권 시절 잘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능력 있는 경호관이 한직으로 좌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인사
가장 허탈한 것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했던 대목이다.
일례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기소장을 보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권경업씨는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으로 추천됐다”는 환경부의 연락을 받고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원 동기·경력 등은 적지 않고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이와 관련된 시를 쓰는 등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켰다’는 따위의 얘기로 서류를 채웠다. 환경부는 그에게 미리 공단업무보고서까지 제공해주었지만, 권씨는 ‘모든 역량과 경험을 토대로 이바지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적는 데 그쳤다. 환경부는 “서류 통과가 어렵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청와대는 “다시 한 번 검토해보라”고 했다. 결국 환경부가 그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줬다. 환경부는 그에게 면접질문지도 줬다. 권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문학인 423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이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기소됐지만, 청와대 인사라인에서는 균형인사비서관이 그만두는 데 그쳤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되자, ‘체크리스트’라고 우겼다. 이런 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과도 어긋난다.
‘인사 실패’ 인정 안 해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라는 다짐도 했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0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 등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면서 “이는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금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근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정은이 당 간부들을 상대로 한 비밀강연에서 ‘핵은 절대로 포기 않는다’고 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쳐 온 셈이다.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 실패와 관련, “우선 인사 실패다, 또는 더 심하게 인사 참사라고까지 표현하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심지어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된 장관님들도 굉장히 좋은 평을 받는 분들이 많다”면서 “그러면 청와대의 추천이 문제입니까, 안 그러면 인사청문회가 문제입니까”라고 반문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권 출범 초기에는 ‘이상주의적’ 성향의 좌파 학자들을 중용했다가도 경제가 나빠지면 실물경제를 잘 아는 관료 출신을 등용,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파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하성 정책실장이 그만둔 후에도, 성향상 장 전 실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김수현씨를 정책실장으로 기용했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KBS와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의 검증에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거나, 또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해서 그 자체로서 그냥 검증의 실패다,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는 소리도 했다. 이는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한 것과도 배치된다.
‘이건 나라냐?’
소득주도성장, 원전 폐기정책,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로시간 제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경제 관련 통계들이 적신호를 계속 보여도 문재인 대통령은 ‘마이 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KBS와의 대담에서 문 대통령은 “고용의 질은 좋아진 것이 분명하다” “2, 3월 청년들의 실업률도 아주 낮아졌다” “G-20 국가들이나 OECD 국가들 가운데서 한국은 상당한 고성장”이라는 주장을 폈다. 자신의 정부가 야기한 문제들에 대한 자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 취임사와 다른 행태가 하나 더 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던 문 대통령은 정권의 경제업적과 관련해 통계청이 불리한 자료들을 계속 내놓자, 통계청장을 잘라버렸다.
지난 3월 1일 일단의 젊은이들이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들을 꼬집는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그때 그들이 내세운 구호는 이랬다. “이건 나라냐?”⊙
‘국민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 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해주십시오. 저의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 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해주십시오. 저의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원로들의 ‘통합’ 호소 외면
법정으로 향하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국민통합’보다 ‘적폐청산’을 우선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조선DB |
하지만 이어 문 대통령은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간 곳이 없다.
2년 내내 ‘적폐청산’ 작업이 계속됐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든 누구든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의 일이다. 하지만 전례 없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용이나, 2016년 총선 당시 여론조사나 공천 개입까지 죄가 있다고 기소한 것은 분명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다스 실소유주 문제 등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문 정부의 검찰이다.
현 집권세력은 ‘촛불혁명’ ‘적폐청산’이라는 말로 이런 상황을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공공연히 ‘보수 궤멸’ ‘20년, 30년 집권’을 공언하는 마당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사법(司法)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한때 우리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던, ‘보수 정권의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내놓고, 그들을 지지했던 이들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하면서, ‘국민통합’이 가능할까?
지난 5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계 원로(元老)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다.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김우식 전 대통령비서실장),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끌지’이다”(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싸움에 에너지 소진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며 국민 뜻을 모아 협조, 호소해야 한다”(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주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빨리 진상 규명과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자는 데 공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협치(協治), 타협도 할 수 있다”며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대답했다. 언론은 이를 ‘선(先)적폐청산 후(後)협치’라고 해석했다.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가진 KBS와의 특집대담에서 “헤드라인이나 자막을 그런 식으로 뽑은 것”이라면서 “그러고 난 이후에는 그 자막, 헤드라인을 근거로 이런저런 비판을 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론에 책임을 전가했다.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라더니…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도 “취임식 이전에 야당 당사들을 전부 다 방문했다. 그 이후에도 아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주 야당 대표들이든 원내대표들이든 만나왔다”고 말했다. 여・야・정(與・野・政) 상설국정협의체를 합의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만남들이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여야(與野) 영수(領袖)회담이 열리면, 여러 현안이 풀리곤 했다. 이 정부 들어서는 그런 기억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국회 내 소수(少數) 정당들과만 합의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배제했다.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제1야당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제1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KBS와의 대담에서 “다수(多數) 의석을 가진 측에서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야당은 또 물리적 저지를 하지 않기로 하고, 그 해법으로 패스트트랙이라는 해법을 마련한 것”이라면서 “그 해법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독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조금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형식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주요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패스트트랙을 활용할 것을 상정했던 법정신에는 반하는 소리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은 패스트트랙 문제 등으로 국회가 공전(空轉)하자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동을 제안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 간 1대1 회동이 필요하다’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당 대표가 입만 열면 ‘보수궤멸’ ‘20년, 30년 집권’이라고 공언하는 마당에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마이클 이그나티예프 전 캐나다 자유당 당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인들이 적(enemy)과 적수(adversary)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적수는 꺾고 싶은 상대이며, 적은 말살해야 할 상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를 ‘적폐’로, ‘궤멸시켜야 할 대상’ 내지 ‘절대로 권력을 넘겨줄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는 언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 속으로 숨기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라면서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5대 인사 기준’이라는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첫 내각의 청문회에서부터 이 5대 기준에 반하는 사례들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자 문 정부는 새로 ‘7대 원칙’을 내놓았다. ‘5대 기준’의 적용 시점 등에 융통성을 주는, 한마디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에 상당 부분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속출했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헌법재판관 등이 15명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하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지고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법이 바뀌지 않은 이상 검찰은 과거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과거에 검찰이 그런 걸 문제 삼지 않았으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발생한 사건들도 문제 삼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이 정권 사람들에게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자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치마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 백지화
문재인 대통령은 “귄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라면서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광화문 대통령’을 내걸고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와 북악산을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청와대는 이 공약을 실천하겠다면서 청와대 산하에 ‘광화문시대위원회’까지 두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자문위원을 맡았다. 유홍준 자문위원과 전문가들은 지난 1월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문제를 종합 검토한 결과를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결론은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 이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장기적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백지화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사문제나 경제난 등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그런 현안들에 대해 남 말 하듯 말 한다고 해서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없앤다면서 공수처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면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앞세워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의 권한을 조정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도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 정부에서의 책무가 인사검증뿐만 아니라 권력기관들에 대한 개혁, 이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혁안(案)’대로라면,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 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고위 경찰관, 심지어 판사들까지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부패사건에 대해서뿐 아니라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에 대한 수사권도 갖게 된다. 모호한 직무유기・직권남용을 빌미로 행정부 공무원들은 물론 판사들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안’에 공수처에 대한 견제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무소불위의 ‘괴물 기관’이 탄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에 현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는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다수 참여할 경우, 그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과는 상반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안보도 강조했다.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는지는 몰라도 ‘안보위기’가 해결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기고한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기고문에서 “한반도의 하늘·바다·땅에서 총성은 사라졌다”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왔다”고 주장했다. 그 자랑이 무색하게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기고 사실을 발표한 5월 7일을 전후(前後)해 북한은 이스칸데르급 신형 탄도미사일을 연일 발사했다. “총성은 사라졌지만 미사일 폭음은 요란하다” “한반도에 봄(bomb・폭탄)이 성큼 다가왔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8년 9・19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한 군사합의서가 채택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합의서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라도 온 것처럼 광고하고 있지만, 안보 전문가들은 이 합의서로 인해 우리 육・해・공군의 정찰・작전 능력에 심대한 지장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주적(主敵) 개념은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지난 3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중단하고, 대대급 이하 소규모 훈련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박찬주 대장 공관병 갑질’ 시비, 과거사 문제, 기무사 계엄문건, ‘군인권센터’ 활동 등으로 군 지휘부는 정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급기야는 대민지원을 나왔던 공군 병사가 〈어벤저스〉 영화를 보겠다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황당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된다”고 한 말이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한미동맹’ 강화됐나?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북(對北)정책 등과 관련해 한미 간 이견이 심심찮게 노출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8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유세장에서 한국을 겨냥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촉구하면서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관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나 국제전문가들이 미국의 대중(對中)견제정책과 관련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을 언급할 때, 한국을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지난 5월 2~8일 남중국해에서 일본・필리핀・인도 해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작년 12월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목해 ‘거짓말쟁이(liar)’라고 비판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미 양국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한미 간에는 물샐 틈 없는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돌아가는 여러 상황을 보면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캠코더 인사
지금 돌아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 중, 가장 잘 안 지켜졌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인사’와 관련된 다짐들이다. 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라고 약속했다.
과연 그럴까?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캠코더 인사’라는 말이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캠코더’는 ‘(대선)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의 준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 인사 비율은 70%에 달해 박근혜 정부의 66.66%보다 높다는 분석도 있다. 바른미래당이 작년 3월 발표한 〈친문(親文) 낙하산 백서〉에 의하면, 작년 말 기준으로 340개 공공기관에서 434명에 달하는 캠코더 인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4월 8일 2기 개각(改閣) 때 새로 입각한 7명 가운데 4명은 호남 출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청와대는 ‘출생지’ 대신 ‘출신 고등학교’를 발표하는 꼼수를 썼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외교부 장관은 국제전략을 모르는 통역 출신이 맡았다. 4강 대사는 외교와는 무관한 정치인이나 청와대 출신들로 충원되고 있다. 장하성 주중대사의 경우, 그 전문성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그가 중국 대학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중국에서 책을 냈다는 점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정권 시절 국무총리와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이홍구씨를 주미대사로 발탁한 것이나, 중앙정보부 출신 골수 반공주의자 강인덕씨를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 같은 신선한 탕평인사는 없었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경호처에서는 박근혜 정권 시절 잘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능력 있는 경호관이 한직으로 좌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인사
가장 허탈한 것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했던 대목이다.
일례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기소장을 보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권경업씨는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으로 추천됐다”는 환경부의 연락을 받고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원 동기·경력 등은 적지 않고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이와 관련된 시를 쓰는 등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켰다’는 따위의 얘기로 서류를 채웠다. 환경부는 그에게 미리 공단업무보고서까지 제공해주었지만, 권씨는 ‘모든 역량과 경험을 토대로 이바지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적는 데 그쳤다. 환경부는 “서류 통과가 어렵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청와대는 “다시 한 번 검토해보라”고 했다. 결국 환경부가 그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줬다. 환경부는 그에게 면접질문지도 줬다. 권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문학인 423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이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기소됐지만, 청와대 인사라인에서는 균형인사비서관이 그만두는 데 그쳤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되자, ‘체크리스트’라고 우겼다. 이런 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과도 어긋난다.
‘인사 실패’ 인정 안 해
지난 4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인사청문동의서가 채택되지 않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의 임명을 강행했다. 사진=뉴시스 |
하지만 이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0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 등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면서 “이는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금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근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정은이 당 간부들을 상대로 한 비밀강연에서 ‘핵은 절대로 포기 않는다’고 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쳐 온 셈이다.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 실패와 관련, “우선 인사 실패다, 또는 더 심하게 인사 참사라고까지 표현하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심지어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된 장관님들도 굉장히 좋은 평을 받는 분들이 많다”면서 “그러면 청와대의 추천이 문제입니까, 안 그러면 인사청문회가 문제입니까”라고 반문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권 출범 초기에는 ‘이상주의적’ 성향의 좌파 학자들을 중용했다가도 경제가 나빠지면 실물경제를 잘 아는 관료 출신을 등용,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파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하성 정책실장이 그만둔 후에도, 성향상 장 전 실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김수현씨를 정책실장으로 기용했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KBS와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의 검증에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거나, 또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해서 그 자체로서 그냥 검증의 실패다,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는 소리도 했다. 이는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한 것과도 배치된다.
‘이건 나라냐?’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문재인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진=조선DB |
아, 취임사와 다른 행태가 하나 더 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던 문 대통령은 정권의 경제업적과 관련해 통계청이 불리한 자료들을 계속 내놓자, 통계청장을 잘라버렸다.
지난 3월 1일 일단의 젊은이들이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들을 꼬집는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그때 그들이 내세운 구호는 이랬다. “이건 나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