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람 타지 않는 진짜 軍人 등장에 김정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정권 바뀌면 말 바뀌는 ‘안보사령탑’… 김관진처럼 北 압도할 인물에 목마름
⊙ “北이 서울 포격할까?”라는 MB 질문에 김관진 “전면전 불안감 이겨내야 北 압도”
⊙ 펜타곤 포격 훈련 반대 의견에 “우리 영해 내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강행
⊙ 南 공군 전력에 北 조종사들 떨면서 출동… 연평도 포 훈련 때 F-15K 무장출격 명령 이유
⊙ 문재인 정부 들어 백령도·연평도 등에서의 K-9 자주포 사격 훈련, 한미 연합 해병대 훈련(KMEP) 등 중단
⊙ “프랑스 국방장관이 장관님께 미 국방장관을 만나게 해달라는 말 듣고 ‘우리 군의 위상이 이 정도로 높아졌구나’라고 느꼈다”(김관진 측근)
⊙ 北이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의 도발 시인하고 유감 표명한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全權 줘 가능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군의 북한 눈치 살피기는 반복을 거쳐서 거의 체화되는 단계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 등 북한의 3대 서해 도발에 대해 “불미스러운 충돌” “일부 우리가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스텔스 전투기 F-35A를 들여오는 인도식 행사장에도 불참했다. 국방부가 지난 1월 1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는 ‘북한은 적(敵)’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8년 만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두 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 한국 정부를 윽박질러 북한 의도대로 움직이겠다는 계산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 합동참모본부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후 ‘단거리 발사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했지만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대신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해 240mm·300mm 방사포를 다수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만 했다.
북핵 폐기는 어디로 갔는지 가물가물한데도 우리 군만 무장을 해제하고 있다는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민은 정치 바람 타는 데 빠른 군보다는 예비군 훈련장에서조차 북한 김씨 부자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쓰기도 했던 군을 원한다. 북한 김씨 왕조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군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북한군이 국군을 가장 두려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군의 수장은 김관진(金寬鎭) 이었다. 그는 ‘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반 군인은 진급에 목을 걸고 산다. 정권 눈 밖에 나면 진급 길이 막힌다. 군이 정치 바람을 타는 이유다. 김관진은 전군 장병에게 보낸 국방장관 지휘서신 제1호에 침과대적(枕戈待敵·창을 베고 누워서 적을 기다리는 마음)을 강조했다. 이 표현 바로 전에 노량해전에 임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쓴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란 전쟁시가 인용됐다. 북한은 연일 ‘불바다’ ‘전면전’ 같은 말들을 써가며 협박 수위를 높였지만, 김관진은 미동도 않고 자기 길을 갔다. 청와대에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측근의 염려에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북한 도발 시 10배로 보복하고 적 지휘부 등 원점을 타격하라”고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6·25전쟁 이후 남한 땅을 겨냥한 北의 첫 포격 도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첫 시험대인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대낮에 포탄 170발을 연평도에 쏟아부었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한 땅을 겨냥한 북의 포격 도발이었다. 졸지에 포격을 당한 연평도는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였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생겼다. 우리 군의 대응은 미흡했다. 군 정보기관이 사전에 포 사격 징후를 포착해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 등 20여 개 기관에 알렸음에도 묵살됐고, 포격이 시작되고도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으로만 대응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젊은 수병 46명이 희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평도가 다시 공격을 받았는데도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군은 적(敵)이 대한민국의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이라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마치 ‘확전(擴戰) 자제’를 지시한 것처럼 답변해 논란을 키웠다. 포격 다음 날인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진행된 ‘북 연평도 화력(火力) 도발 관련 보고’에 참석한 김 장관은 한나라당 유승민(劉承旼) 의원의 “이명박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호하지만,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최초 지시가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잘못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해 혼선을 부추겼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했던 정진석 정무수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말한 바로는 이 대통령은 ‘확전 자제’를 지시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지하 벙커에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YTN 뉴스를 틀어놓고 회의를 하고 있는데 밑에 ‘청와대 확전 방지 지시’라는 자막이 뜨는 거예요. 제가 그것을 보고 ‘아니 저런 이야기를 누가 했지?’라고 말했더니, 뒤에 있는 대통령께서 깜짝 놀라면서 ‘그래 저렇게 이야기가 나가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대통령은 확전 자제를 지시한 자체가 없습니다.”
확전 자제 발언 논란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이 확대되자 임태희(任太熙) 대통령실장은 11월 25일 예고도 없이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김 장관의 사표 수리를 전격으로 발표했다. 김 장관은 천안함 사건(2010년 3월 26일) 이후인 5월 1일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다. 이 대통령은 후임 국방부 장관으로 이희원(李熙元) 대통령안보특별보좌관(장관급)을 점찍었다. 2010년 5월 9일 신설된 안보특보 직을 맡은 이 특보는 기존의 다른 대통령 특보와 달리 청와대에 상근하며 일정한 보수를 받았다.
육사 27기로 2006년 11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예편한 예비역 대장 출신인 이 특보는 2007년 대선캠프 당시 이명박 후보의 국방정책 자문을 담당했던 서초포럼의 수석부위원장 출신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의 사표 수리를 발표하기 직전 이 특보에게 ‘국방장관을 하라’는 말만 안 했을 뿐 충분히 차기 장관이란 암시를 했다고 한다. 이 특보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측근들은 ‘99% 가능성’이라고 판단했다. 11월26일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이희원 특보가 국방장관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변화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홍상표(洪相杓)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언론보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홍 수석은 “성급하게 예단해서 보도하면 조금 부정확한 보도가 될 수 있다”며 “복수(複數)의 후보자에 대한 자체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오늘 중(11월 26일)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8시간쯤 지난 후인 이날 오후 7시30분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홍 수석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으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국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군 전체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며 “김관진 전 합참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모의청문회
불과 몇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유력하다던 이 특보가 김관진 전 합참의장으로 바뀌었을까. 정진석 수석이 말한 바로는 모의청문회가 결정적이었다. 이명박 청와대는 2010년 9월 9일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내부적으로 모의청문회를 열었다.
이 특보에 대한 모의청문회에 참석한 인사들과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속사정을 들었다. 그들의 전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11월 26일 오전 7시30분 이 특보에 대한 모의청문회가 열렸다. 이 특보는 자신감이 넘쳤다. 결격사유도 없을뿐더러, 전날 자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기용하고 싶어 하는 이 대통령의 속마음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모의청문회 참석자 중 한 명이 이 특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특보님도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하셨는데 제가 야당 의원이라면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지하 벙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확전 방지’ 메시지가 나갔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잘 디펜드(defend·방어하다)할 수 있습니까?”
이 특보는 무슨 이유에선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특보가 침묵을 지키자 이 참석자는 다시 “대답이 왜 없으시죠? 이 문제를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청문회 통과가 어렵습니다”라고 답변을 재촉했다. 이 특보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질문을 던진 참석자는 임태희 실장에게 조용히 “이 특보는 추궁을 당할 당사자지, 추궁을 이겨낼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실장도 공감했다. 그리고 곧 모의청문회가 끝났다.〉
“虎相의 무인 임명해야”
1시간가량 진행된 모의청문회가 끝난 직후 정진석 정무수석과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은 청와대 본관으로 향했다. 정 정무수석이 총대를 멨다.
“대통령님, 모의청문회가 끝났습니다. 거기서 ‘야당 청문위원들로부터 왜 확전 자제 메시지가 처음 나왔는지 추궁당할 것인데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 특보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참모형 국방장관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호상(虎相·호랑이 얼굴)을 가진 무인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에 시그널(signal)도 주고 국민도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정 수석의 이야기를 들은 이 대통령은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갖긴 했었어”라고 말했다. 곧바로 이 특보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 정진석 수석과 인사파일을 뒤적이던 김두우 실장은 문득 이날 오전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한나라당 A 의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군(軍) 장성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던 친이계 핵심 A 의원이 김 실장에게 전화로 이야기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맞나요? 정국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이 특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합참의장 출신이 낫습니다. 육해공군 참모총장 출신은 작전까지만 아는데 합참의장이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은 작전은 물론 전략적 사고까지 갖췄거든요. 강골무인(强骨武人) 기질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은 호남(전북 전주)이고요.”
“그래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있지.” 김 실장은 무릎을 쳤다. 곧장 정 수석에게 이야기하니, 만족감을 나타냈다. 정 수석은 김관진을 불러 모의청문회를 실시했다. 김관진에게도 이 특보에게 했던 ‘확전 방지’와 관련한 질문을 똑같이 했다.
MB “청문회 준비 잘 하세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장관.
김관진은 “군에서 확전은 ‘전면전(全面戰)’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면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전규칙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군과 민간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연평도 교전과 같은 국지전(局地戰)이 벌어질 경우 군은 전략적으로 국지전이 휴전선 전체로 번지거나 서울에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다는 기본개념을 ‘확전 방지’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에서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국지전에서 타격의 강도를 줄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모의청문회가 끝난 뒤 청와대 참모들은 김관진에게 “연락하겠으니, (집에서) 기다리시라”고 했다. 귀가 도중 김관진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청와대였다. “다시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다시 돌아온 김관진을 이 대통령에게 데리고 갔다. 모두 나가라고 한 뒤 이 대통령이 김관진에게 물었다.
“만약 북한 도발에 우리가 강력히 대응할 경우, 북한이 서울에 포탄을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가 답했다.
“북한은 전면전으로 확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확전 가능성으로 인한 위험 부담)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겨내지 못하면 계속 북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줘도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 군의 미온적 대응 때문이라고 봅니다. 확실하게 응징하면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면전은 우리가 걱정하는 이상으로 북(北)도 겁내는 만큼,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 대통령이 말했다.
“청문회 준비 잘 하세요.”
펜타곤의 훈련 반대 의견에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말한 김관진
2010년, 한반도 정전관리 임무를 맡는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 겸임)은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을 반대했다. 이에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우리 영해 내에서의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며 반드시 실시하겠다”며 훈련강행을 지시했다. 2010년 12월 4일 김관진 장관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2010년 12월 3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신분의 김관진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는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항공기(전투기)로 폭격하겠다”고 야전 군인답게 단호히 답변해 호평을 받았다. 다음 날 오전 국방부에서 취임식을 가진 그의 첫 시험대는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문제였다.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우리 영해의 일상적인 사격 훈련에 대해 기습 포격을 한 뒤, 적반하장격으로 ‘(한국군이) 다시 사격 훈련을 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에 군 당국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연평도 포 사격(K-9 자주포) 훈련을 계획했다. 김관진 취임 전에 수립한 계획이었다.
김관진은 무조건 실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시기를 보고 있는데, 중국·러시아가 훈련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정전관리 임무를 맡는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 겸임)도 마찬가지였다.
“훈련 강행을 재고해달라. 이 훈련이 도화선이 돼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결정이었다. 김관진이 말했다. “여기서 북한의 기를 꺾지 못하면 이런 사건(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이 반복될 것이다. 연평 사격 훈련은 37년 동안 매달해온 주권행위다. 조선 시대처럼 우리 국력이 약할 때는 강대국이 한마디 하면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우리 영해 내에서의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며 반드시 실시하겠다.”
우리 F-15K 출격하면 北의 미그23 조종사는 ‘오늘이 마지막 비행’이라고 생각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때 F-15K 무장출격 명령한 이유는 南 공군 전력에 北 조종사들 떨면서 출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20~24일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연평도 해병부대의 포 사격 훈련이 진행됐다. 북한군 도발을 억제할 핵심 전력이 총출동했다. 대구와 서산에서 F-15K 및 KF-16 전투기가 발진했는데, 김관진은 미사일 장착을 지시했다. 공군 고위 장성들은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가, 발사하지 않고 장착한 채로 착륙할 경우 폭발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투기를 무장한 상태로 출격시켜라.” 2010년 당시 F-15K는 최대사거리 278km의 지상공격용 미사일인 AGM-84H(슬램이알)를 장착하고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관진이 물러서지 않은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우리 공군 주력기(F-15K 등)에 북한 해안포 기지를 타격할 무기가 탑재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공군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명령만 내렸다면 우리 전투기로 북한 측 해안의 포격 원점을 타격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두 번째는 북한 미그23 전투기가 F-15K의 상대가 되지 않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우리 F-15K가 뜨면 대응 차원에서 북한의 미그23 전투기도 출격하는데, 북한 조종사들은 ‘마지막 비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조종대를 잡는다는 얘기다. 무장한 F-15K의 출격은 만약 도발할 시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북한에 줄 수 있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현재(2019년) F-15K에는 독일제 장거리 순항 미사일인 타우러스(TAURUS)가 탑재돼 있다. 타우러스는 사거리 500km로 북한의 영변 핵 발전소나 풍계리 핵 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기지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특히 6m 두께의 콘크리트벽을 관통할 수 있어 ‘벙커 버스터’라고도 불리며, 적의 레이더망을 회피하기 위한 스텔스 기능도 있다.
F-15K 및 KF-16 전투기와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과 한국형 구축함(KDX-II) 등이 총동원된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은 아무런 문제 없이 마무리됐다. 훈련 전 “괴뢰패당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킨 장소에서 또다시 포 사격 훈련을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조선반도를 전쟁으로 밀어 넣으려는 군사적 도발”이라며 “무분별한 전쟁 연습이 실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담보는 어디에도 없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조선전쟁(6·25전쟁)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핵 참화가 우리 민족의 머리 위에 덮어 씌워지게 된다 ”고 위협한 북한은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았다. 훈련 때문이었을까. 8개월쯤 후인 2011년 8월 10일 북한군이 연평도 근해로 또다시 포 사격을 했을 때, 우리 군은 즉시 연평도 북방 해역을 향해 K-9 자주포 3발을 대응사격했다.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겠다”(김정은)
김관진 국방장관을 표적으로 훈련하는 북한 병사들.
북한 김정은은 2013년 3월 7일 서해 최전방의 장재도와 무도 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이같이 이야기했다.
“적들이 우리 영해·영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겠다.”
두 섬은 연평도에서 각각 7km, 11km 떨어져 있다. 무도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한 곳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 도서 지역에서의 K-9 자주포 사격 훈련과 한미연합 해병대 훈련(KMEP) 등은 중단됐다. 서북 도서는 유사시 북한 근접 공격 발진 기지로서 그 존재만으로도 북 전투력을 분산시키고 심리적으로 북 정권을 위협하는 ‘목의 비수’와 같은 존재다. 현 정부 들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서북 도서를 스스로 고립시키고, 도서 부대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국방장관의 부탁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첫 시험대였던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관진은 이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됐다. 골프도 하지 않았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가 국방장관이 되고 나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국지 도발이 없었다. 미 국방부에선 ‘김관진 효과(effect)’라는 말까지 생겼다. 고유명사처럼 사용됐다고 한다. 이 용어가 나온 이후 김관진은 북한의 암살대상이 됐다. 경호원을 두 배로 늘리는 계기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김관진’이란 이름 세 글자가 다수의 나라에 알려지자,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40여 국의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아시아안보회의(2011년 6월 4~5일)가 있다.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개최돼 ‘샹그릴라 대화’라고도 불린다. 김관진이 국방장관 신분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어느 해였다. 외국의 국방장관들이 김관진의 비서실장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빠서 어려울 것 같다”고 해도 모두 “10분이라도 괜찮으니, 잠깐이라도 뵙자”고 했다.〉
김관진 측근의 이야기다.
“당시, 대한민국군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대국의 국방장관들도 ‘스탠딩 미팅이라도 괜찮으니, 잠깐만이라도 (장관님을) 만나면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프랑스 국방장관은 김관진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내가 미 국방부 장관과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시간을 내주지 않소. 당신(김관진)이 미 국방부 장관과 가까우니, 내 뜻을 좀 전해주기 바라오.”
中, 국방부장도 김관진 예우
샹그릴라 대화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관진은 6월 4일 “북한의 군사적 모험 행위가 한반도의 안정을 깨뜨리고 동북아 지역 전체의 평화 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다음 날인 5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중국은 북한에 (군사적) 모험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의 도발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김관진 측근의 말이다.
“UAE(아랍에미리트)가 프랑스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음에도 한국에 총 400억 달러의 원전 건설을 발주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꺼내 든 안보 협력 카드 때문이었습니다. UAE의 가상 적국인 이란은 한국과 여러모로 비슷한 군사 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무기 체계도 유사한데다 UAE와 이란 사이의 좁은 바다에 우리 서해 5도와 같은 섬까지 있습니다. 안보 수요가 한국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어 안보 협력 카드는 UAE에 굉장히 매력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김 장관님은 UAE와 맺은 군사 협력 조항을 잘 지키려 애썼습니다. UAE에서도 굉장히 만족했죠.”
문재인 정부 관계자는 UAE에 가서 당시 맺은 군사 협력 조항에 손을 대려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에서 비공개 협약을 발견하고 ‘또 한 건’ 잡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UAE와 군사협약을 맺었던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적폐 청산한다며 과거 문서를 검토하다가 비공개 협약을 (위헌적인 비밀 협정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김관진 시절, 北 휴전 이후 최초로 도발 是認
2015년 8월 22일 남북회담에서 북은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북의 지뢰 도발 때 우리 군이 북 지역으로 155mm 자주포 29발을 동시 사격하자 북은 협상을 먼저 제안해왔다. 그해 8월 22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시작됐다. 정부 일각에선 ‘남북 협상 경험이 전무한 김관진(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왔다. 맞상대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군복만 입었지 뿌리는 노동당에 있는 ‘정치인’ 출신이다. 협상 과정에서 황병서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려는 잠시, 북측 황병서는 우리 측 대표였던 김관진을 화장실까지 따라와 초조함을 드러냈다. 그 협상에서 북은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상황을 김관진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회담성공 이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병서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이 불리할 거요. 김정은이 죽일 수도 있고. 당시 상황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는데, 누군가가 이야기해 알려진 모양인데….”
‘북한이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고 질문했다. 김관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분이 참 합리적인 분이다. 북한은 조항 하나하나 모두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재가(裁可)를 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北이 가장 두려워한 군인에서 대역죄인으로
정치 바람 타지 않는 진짜 軍人 김관진 등장에 김정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기사를 완성한 날(지난 5월 14일) 김관진은 재판을 받고 있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국정 과제 1호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방산 비리, 기무사 문건 사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등을 언급했다. 지난 정부를 겨냥한 상당수 적폐 청산 수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됐다. 검찰은 2017년 8월 말부터 첫 적폐 수사인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받던 변창훈 검사와 국정원 소속 정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군(軍)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사건도 함께 수사했다. 이 때문에 김관진은 구속됐다가 11일 만에 구속적부심(拘束適否審)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을 쓰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이 법정에서 하는 말은 일관되다.
“부하들의 과욕으로 위법한 행위가 이뤄졌다면 그 책임은 저에게 있으니 부하들은 선처해주길 바란다.”
이처럼 김관진은 부하를 끔찍이 아꼈다.
측근의 이야기다.
“장관님이 한번은 술을 드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이제 장관 그만하고 후배들한테 물려줘야겠다.’ 제가 이야기했죠. ‘아니, 장관 하신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물려주시려 하느냐고.’ 그랬더니 장관님이 ‘이만하면 국방장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보여줬잖아. 부하들이 나보다 더 잘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북한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한 강직한 군인이었던 그가 문재인 정권에서는 반드시 구속해야 할 대역죄인이 된 것 같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법조인은 “법을 이용해 사람을 사냥하듯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정권 바뀌면 말 바뀌는 ‘안보사령탑’… 김관진처럼 北 압도할 인물에 목마름
⊙ “北이 서울 포격할까?”라는 MB 질문에 김관진 “전면전 불안감 이겨내야 北 압도”
⊙ 펜타곤 포격 훈련 반대 의견에 “우리 영해 내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강행
⊙ 南 공군 전력에 北 조종사들 떨면서 출동… 연평도 포 훈련 때 F-15K 무장출격 명령 이유
⊙ 문재인 정부 들어 백령도·연평도 등에서의 K-9 자주포 사격 훈련, 한미 연합 해병대 훈련(KMEP) 등 중단
⊙ “프랑스 국방장관이 장관님께 미 국방장관을 만나게 해달라는 말 듣고 ‘우리 군의 위상이 이 정도로 높아졌구나’라고 느꼈다”(김관진 측근)
⊙ 北이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의 도발 시인하고 유감 표명한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全權 줘 가능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군의 북한 눈치 살피기는 반복을 거쳐서 거의 체화되는 단계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 등 북한의 3대 서해 도발에 대해 “불미스러운 충돌” “일부 우리가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스텔스 전투기 F-35A를 들여오는 인도식 행사장에도 불참했다. 국방부가 지난 1월 1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는 ‘북한은 적(敵)’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8년 만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두 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 한국 정부를 윽박질러 북한 의도대로 움직이겠다는 계산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 합동참모본부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후 ‘단거리 발사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했지만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대신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해 240mm·300mm 방사포를 다수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만 했다.
북핵 폐기는 어디로 갔는지 가물가물한데도 우리 군만 무장을 해제하고 있다는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민은 정치 바람 타는 데 빠른 군보다는 예비군 훈련장에서조차 북한 김씨 부자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쓰기도 했던 군을 원한다. 북한 김씨 왕조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군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북한군이 국군을 가장 두려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군의 수장은 김관진(金寬鎭) 이었다. 그는 ‘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반 군인은 진급에 목을 걸고 산다. 정권 눈 밖에 나면 진급 길이 막힌다. 군이 정치 바람을 타는 이유다. 김관진은 전군 장병에게 보낸 국방장관 지휘서신 제1호에 침과대적(枕戈待敵·창을 베고 누워서 적을 기다리는 마음)을 강조했다. 이 표현 바로 전에 노량해전에 임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쓴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란 전쟁시가 인용됐다. 북한은 연일 ‘불바다’ ‘전면전’ 같은 말들을 써가며 협박 수위를 높였지만, 김관진은 미동도 않고 자기 길을 갔다. 청와대에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측근의 염려에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북한 도발 시 10배로 보복하고 적 지휘부 등 원점을 타격하라”고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6·25전쟁 이후 남한 땅을 겨냥한 北의 첫 포격 도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첫 시험대인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대낮에 포탄 170발을 연평도에 쏟아부었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한 땅을 겨냥한 북의 포격 도발이었다. 졸지에 포격을 당한 연평도는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였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생겼다. 우리 군의 대응은 미흡했다. 군 정보기관이 사전에 포 사격 징후를 포착해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 등 20여 개 기관에 알렸음에도 묵살됐고, 포격이 시작되고도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으로만 대응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젊은 수병 46명이 희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평도가 다시 공격을 받았는데도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군은 적(敵)이 대한민국의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이라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마치 ‘확전(擴戰) 자제’를 지시한 것처럼 답변해 논란을 키웠다. 포격 다음 날인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진행된 ‘북 연평도 화력(火力) 도발 관련 보고’에 참석한 김 장관은 한나라당 유승민(劉承旼) 의원의 “이명박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호하지만,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최초 지시가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잘못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해 혼선을 부추겼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했던 정진석 정무수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말한 바로는 이 대통령은 ‘확전 자제’를 지시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지하 벙커에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YTN 뉴스를 틀어놓고 회의를 하고 있는데 밑에 ‘청와대 확전 방지 지시’라는 자막이 뜨는 거예요. 제가 그것을 보고 ‘아니 저런 이야기를 누가 했지?’라고 말했더니, 뒤에 있는 대통령께서 깜짝 놀라면서 ‘그래 저렇게 이야기가 나가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대통령은 확전 자제를 지시한 자체가 없습니다.”
확전 자제 발언 논란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이 확대되자 임태희(任太熙) 대통령실장은 11월 25일 예고도 없이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김 장관의 사표 수리를 전격으로 발표했다. 김 장관은 천안함 사건(2010년 3월 26일) 이후인 5월 1일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다. 이 대통령은 후임 국방부 장관으로 이희원(李熙元) 대통령안보특별보좌관(장관급)을 점찍었다. 2010년 5월 9일 신설된 안보특보 직을 맡은 이 특보는 기존의 다른 대통령 특보와 달리 청와대에 상근하며 일정한 보수를 받았다.
육사 27기로 2006년 11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예편한 예비역 대장 출신인 이 특보는 2007년 대선캠프 당시 이명박 후보의 국방정책 자문을 담당했던 서초포럼의 수석부위원장 출신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의 사표 수리를 발표하기 직전 이 특보에게 ‘국방장관을 하라’는 말만 안 했을 뿐 충분히 차기 장관이란 암시를 했다고 한다. 이 특보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측근들은 ‘99% 가능성’이라고 판단했다. 11월26일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이희원 특보가 국방장관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변화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홍상표(洪相杓)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언론보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홍 수석은 “성급하게 예단해서 보도하면 조금 부정확한 보도가 될 수 있다”며 “복수(複數)의 후보자에 대한 자체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오늘 중(11월 26일)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8시간쯤 지난 후인 이날 오후 7시30분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홍 수석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으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국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군 전체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며 “김관진 전 합참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모의청문회
불과 몇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유력하다던 이 특보가 김관진 전 합참의장으로 바뀌었을까. 정진석 수석이 말한 바로는 모의청문회가 결정적이었다. 이명박 청와대는 2010년 9월 9일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내부적으로 모의청문회를 열었다.
이 특보에 대한 모의청문회에 참석한 인사들과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속사정을 들었다. 그들의 전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11월 26일 오전 7시30분 이 특보에 대한 모의청문회가 열렸다. 이 특보는 자신감이 넘쳤다. 결격사유도 없을뿐더러, 전날 자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기용하고 싶어 하는 이 대통령의 속마음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모의청문회 참석자 중 한 명이 이 특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특보님도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하셨는데 제가 야당 의원이라면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지하 벙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확전 방지’ 메시지가 나갔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잘 디펜드(defend·방어하다)할 수 있습니까?”
이 특보는 무슨 이유에선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특보가 침묵을 지키자 이 참석자는 다시 “대답이 왜 없으시죠? 이 문제를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청문회 통과가 어렵습니다”라고 답변을 재촉했다. 이 특보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질문을 던진 참석자는 임태희 실장에게 조용히 “이 특보는 추궁을 당할 당사자지, 추궁을 이겨낼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실장도 공감했다. 그리고 곧 모의청문회가 끝났다.〉
“虎相의 무인 임명해야”
1시간가량 진행된 모의청문회가 끝난 직후 정진석 정무수석과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은 청와대 본관으로 향했다. 정 정무수석이 총대를 멨다.
“대통령님, 모의청문회가 끝났습니다. 거기서 ‘야당 청문위원들로부터 왜 확전 자제 메시지가 처음 나왔는지 추궁당할 것인데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 특보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참모형 국방장관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호상(虎相·호랑이 얼굴)을 가진 무인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에 시그널(signal)도 주고 국민도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정 수석의 이야기를 들은 이 대통령은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갖긴 했었어”라고 말했다. 곧바로 이 특보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 정진석 수석과 인사파일을 뒤적이던 김두우 실장은 문득 이날 오전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한나라당 A 의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군(軍) 장성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던 친이계 핵심 A 의원이 김 실장에게 전화로 이야기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이 특보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맞나요? 정국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이 특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합참의장 출신이 낫습니다. 육해공군 참모총장 출신은 작전까지만 아는데 합참의장이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은 작전은 물론 전략적 사고까지 갖췄거든요. 강골무인(强骨武人) 기질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은 호남(전북 전주)이고요.”
“그래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있지.” 김 실장은 무릎을 쳤다. 곧장 정 수석에게 이야기하니, 만족감을 나타냈다. 정 수석은 김관진을 불러 모의청문회를 실시했다. 김관진에게도 이 특보에게 했던 ‘확전 방지’와 관련한 질문을 똑같이 했다.
MB “청문회 준비 잘 하세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장관.
김관진은 “군에서 확전은 ‘전면전(全面戰)’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면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전규칙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군과 민간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연평도 교전과 같은 국지전(局地戰)이 벌어질 경우 군은 전략적으로 국지전이 휴전선 전체로 번지거나 서울에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다는 기본개념을 ‘확전 방지’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에서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국지전에서 타격의 강도를 줄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모의청문회가 끝난 뒤 청와대 참모들은 김관진에게 “연락하겠으니, (집에서) 기다리시라”고 했다. 귀가 도중 김관진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청와대였다. “다시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다시 돌아온 김관진을 이 대통령에게 데리고 갔다. 모두 나가라고 한 뒤 이 대통령이 김관진에게 물었다.
“만약 북한 도발에 우리가 강력히 대응할 경우, 북한이 서울에 포탄을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가 답했다.
“북한은 전면전으로 확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확전 가능성으로 인한 위험 부담)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겨내지 못하면 계속 북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줘도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 군의 미온적 대응 때문이라고 봅니다. 확실하게 응징하면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면전은 우리가 걱정하는 이상으로 북(北)도 겁내는 만큼,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 대통령이 말했다.
“청문회 준비 잘 하세요.”
펜타곤의 훈련 반대 의견에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말한 김관진
2010년, 한반도 정전관리 임무를 맡는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 겸임)은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을 반대했다. 이에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우리 영해 내에서의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며 반드시 실시하겠다”며 훈련강행을 지시했다. 2010년 12월 4일 김관진 장관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2010년 12월 3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신분의 김관진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는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항공기(전투기)로 폭격하겠다”고 야전 군인답게 단호히 답변해 호평을 받았다. 다음 날 오전 국방부에서 취임식을 가진 그의 첫 시험대는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문제였다.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우리 영해의 일상적인 사격 훈련에 대해 기습 포격을 한 뒤, 적반하장격으로 ‘(한국군이) 다시 사격 훈련을 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에 군 당국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연평도 포 사격(K-9 자주포) 훈련을 계획했다. 김관진 취임 전에 수립한 계획이었다.
김관진은 무조건 실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시기를 보고 있는데, 중국·러시아가 훈련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정전관리 임무를 맡는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 겸임)도 마찬가지였다.
“훈련 강행을 재고해달라. 이 훈련이 도화선이 돼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결정이었다. 김관진이 말했다. “여기서 북한의 기를 꺾지 못하면 이런 사건(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이 반복될 것이다. 연평 사격 훈련은 37년 동안 매달해온 주권행위다. 조선 시대처럼 우리 국력이 약할 때는 강대국이 한마디 하면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우리 영해 내에서의 훈련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며 반드시 실시하겠다.”
우리 F-15K 출격하면 北의 미그23 조종사는 ‘오늘이 마지막 비행’이라고 생각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연평도 포 사격 훈련 때 F-15K 무장출격 명령한 이유는 南 공군 전력에 北 조종사들 떨면서 출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20~24일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연평도 해병부대의 포 사격 훈련이 진행됐다. 북한군 도발을 억제할 핵심 전력이 총출동했다. 대구와 서산에서 F-15K 및 KF-16 전투기가 발진했는데, 김관진은 미사일 장착을 지시했다. 공군 고위 장성들은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가, 발사하지 않고 장착한 채로 착륙할 경우 폭발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투기를 무장한 상태로 출격시켜라.” 2010년 당시 F-15K는 최대사거리 278km의 지상공격용 미사일인 AGM-84H(슬램이알)를 장착하고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관진이 물러서지 않은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우리 공군 주력기(F-15K 등)에 북한 해안포 기지를 타격할 무기가 탑재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공군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명령만 내렸다면 우리 전투기로 북한 측 해안의 포격 원점을 타격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두 번째는 북한 미그23 전투기가 F-15K의 상대가 되지 않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우리 F-15K가 뜨면 대응 차원에서 북한의 미그23 전투기도 출격하는데, 북한 조종사들은 ‘마지막 비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조종대를 잡는다는 얘기다. 무장한 F-15K의 출격은 만약 도발할 시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북한에 줄 수 있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현재(2019년) F-15K에는 독일제 장거리 순항 미사일인 타우러스(TAURUS)가 탑재돼 있다. 타우러스는 사거리 500km로 북한의 영변 핵 발전소나 풍계리 핵 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기지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특히 6m 두께의 콘크리트벽을 관통할 수 있어 ‘벙커 버스터’라고도 불리며, 적의 레이더망을 회피하기 위한 스텔스 기능도 있다.
F-15K 및 KF-16 전투기와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과 한국형 구축함(KDX-II) 등이 총동원된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은 아무런 문제 없이 마무리됐다. 훈련 전 “괴뢰패당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킨 장소에서 또다시 포 사격 훈련을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조선반도를 전쟁으로 밀어 넣으려는 군사적 도발”이라며 “무분별한 전쟁 연습이 실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담보는 어디에도 없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조선전쟁(6·25전쟁)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핵 참화가 우리 민족의 머리 위에 덮어 씌워지게 된다 ”고 위협한 북한은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았다. 훈련 때문이었을까. 8개월쯤 후인 2011년 8월 10일 북한군이 연평도 근해로 또다시 포 사격을 했을 때, 우리 군은 즉시 연평도 북방 해역을 향해 K-9 자주포 3발을 대응사격했다.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겠다”(김정은)
김관진 국방장관을 표적으로 훈련하는 북한 병사들.
북한 김정은은 2013년 3월 7일 서해 최전방의 장재도와 무도 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이같이 이야기했다.
“적들이 우리 영해·영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겠다.”
두 섬은 연평도에서 각각 7km, 11km 떨어져 있다. 무도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한 곳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 도서 지역에서의 K-9 자주포 사격 훈련과 한미연합 해병대 훈련(KMEP) 등은 중단됐다. 서북 도서는 유사시 북한 근접 공격 발진 기지로서 그 존재만으로도 북 전투력을 분산시키고 심리적으로 북 정권을 위협하는 ‘목의 비수’와 같은 존재다. 현 정부 들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서북 도서를 스스로 고립시키고, 도서 부대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국방장관의 부탁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첫 시험대였던 ‘연평도 포 사격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관진은 이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됐다. 골프도 하지 않았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가 국방장관이 되고 나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국지 도발이 없었다. 미 국방부에선 ‘김관진 효과(effect)’라는 말까지 생겼다. 고유명사처럼 사용됐다고 한다. 이 용어가 나온 이후 김관진은 북한의 암살대상이 됐다. 경호원을 두 배로 늘리는 계기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김관진’이란 이름 세 글자가 다수의 나라에 알려지자,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40여 국의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아시아안보회의(2011년 6월 4~5일)가 있다.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개최돼 ‘샹그릴라 대화’라고도 불린다. 김관진이 국방장관 신분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어느 해였다. 외국의 국방장관들이 김관진의 비서실장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빠서 어려울 것 같다”고 해도 모두 “10분이라도 괜찮으니, 잠깐이라도 뵙자”고 했다.〉
김관진 측근의 이야기다.
“당시, 대한민국군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대국의 국방장관들도 ‘스탠딩 미팅이라도 괜찮으니, 잠깐만이라도 (장관님을) 만나면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프랑스 국방장관은 김관진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내가 미 국방부 장관과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시간을 내주지 않소. 당신(김관진)이 미 국방부 장관과 가까우니, 내 뜻을 좀 전해주기 바라오.”
中, 국방부장도 김관진 예우
샹그릴라 대화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관진은 6월 4일 “북한의 군사적 모험 행위가 한반도의 안정을 깨뜨리고 동북아 지역 전체의 평화 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다음 날인 5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중국은 북한에 (군사적) 모험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의 도발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김관진 측근의 말이다.
“UAE(아랍에미리트)가 프랑스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음에도 한국에 총 400억 달러의 원전 건설을 발주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꺼내 든 안보 협력 카드 때문이었습니다. UAE의 가상 적국인 이란은 한국과 여러모로 비슷한 군사 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무기 체계도 유사한데다 UAE와 이란 사이의 좁은 바다에 우리 서해 5도와 같은 섬까지 있습니다. 안보 수요가 한국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어 안보 협력 카드는 UAE에 굉장히 매력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김 장관님은 UAE와 맺은 군사 협력 조항을 잘 지키려 애썼습니다. UAE에서도 굉장히 만족했죠.”
문재인 정부 관계자는 UAE에 가서 당시 맺은 군사 협력 조항에 손을 대려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에서 비공개 협약을 발견하고 ‘또 한 건’ 잡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UAE와 군사협약을 맺었던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적폐 청산한다며 과거 문서를 검토하다가 비공개 협약을 (위헌적인 비밀 협정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김관진 시절, 北 휴전 이후 최초로 도발 是認
2015년 8월 22일 남북회담에서 북은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북의 지뢰 도발 때 우리 군이 북 지역으로 155mm 자주포 29발을 동시 사격하자 북은 협상을 먼저 제안해왔다. 그해 8월 22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시작됐다. 정부 일각에선 ‘남북 협상 경험이 전무한 김관진(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왔다. 맞상대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군복만 입었지 뿌리는 노동당에 있는 ‘정치인’ 출신이다. 협상 과정에서 황병서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려는 잠시, 북측 황병서는 우리 측 대표였던 김관진을 화장실까지 따라와 초조함을 드러냈다. 그 협상에서 북은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상황을 김관진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회담성공 이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병서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이 불리할 거요. 김정은이 죽일 수도 있고. 당시 상황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는데, 누군가가 이야기해 알려진 모양인데….”
‘북한이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고 질문했다. 김관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분이 참 합리적인 분이다. 북한은 조항 하나하나 모두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재가(裁可)를 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北이 가장 두려워한 군인에서 대역죄인으로
정치 바람 타지 않는 진짜 軍人 김관진 등장에 김정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기사를 완성한 날(지난 5월 14일) 김관진은 재판을 받고 있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국정 과제 1호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방산 비리, 기무사 문건 사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등을 언급했다. 지난 정부를 겨냥한 상당수 적폐 청산 수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됐다. 검찰은 2017년 8월 말부터 첫 적폐 수사인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받던 변창훈 검사와 국정원 소속 정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군(軍)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사건도 함께 수사했다. 이 때문에 김관진은 구속됐다가 11일 만에 구속적부심(拘束適否審)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을 쓰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이 법정에서 하는 말은 일관되다.
“부하들의 과욕으로 위법한 행위가 이뤄졌다면 그 책임은 저에게 있으니 부하들은 선처해주길 바란다.”
이처럼 김관진은 부하를 끔찍이 아꼈다.
측근의 이야기다.
“장관님이 한번은 술을 드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이제 장관 그만하고 후배들한테 물려줘야겠다.’ 제가 이야기했죠. ‘아니, 장관 하신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물려주시려 하느냐고.’ 그랬더니 장관님이 ‘이만하면 국방장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보여줬잖아. 부하들이 나보다 더 잘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북한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한 강직한 군인이었던 그가 문재인 정권에서는 반드시 구속해야 할 대역죄인이 된 것 같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법조인은 “법을 이용해 사람을 사냥하듯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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