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이야기들

땡땡이중 말 듣고 손님 끊은 부자가 쫄딱 망한 사연

Shawn Chase 2019. 5. 3. 1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32)

한때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거부의 대명사처럼 쓰였던 만수르라는 이름이 있다. 그저 중동의 대부호 정도로만 어설프게 알고 있었는데 이참에 잠시 검색 좀 해 보니, 참 어마어마한 인물이긴 하다. 왕족 출신으로 정치가, 사업가, 유럽의 유명 축구 구단의 구단주.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만수르’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죄다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다.
 
세계 갑부 목록에 없는 ‘만수르’
그러나 만수르는 세계의 갑부 목록을 따질 때 제외된다고 한다. 오일 머니의 특성상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하기 어렵고 각종 비리에 끊임없이 연루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이런 정보를 보다 보니 기부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는 몇몇 부자의 면면이 또한 떠오르면서, 빈부 격차가 나날이 심해지는 이 세상에서 부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재산 좀 있어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집에는 다른 걱정거리가 쌓여, 보통사람만큼도 못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옛날에 강원도 치악산 밑에 엄청난 부자가 살았다. 워낙 부자여서 친구도 많은 데다 대처로 나가는 길목에 살아 지나가던 길에 들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 집 식구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시달리다가 마침 찾아온 시주승에게 하소연을 했다.
 
시주승은 본래 이 집이 좋은 기운을 갖고 있어 손님도 찾아오는 것 아니겠냐며 정중히 말하고 돌아섰다. 그러고는 절에 돌아가 동료 스님들에게 그 집에서 손님 좀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참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 정식 스님이 되지 못한 땡땡이중 하나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부잣집을 찾아갔다. 땡땡이중은 밥도 잘 얻어먹고 시주도 잔뜩 받고 나서 이 집에 걱정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짐짓 말을 걸었다.
 
 
부자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손님 좀 찾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땡땡이중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땅의 기운을 끊어야 한다며 집 왼쪽 산줄기에 있는 언덕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부잣집에서는 이 중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공사를 하게 했고, 과연 그 이후로 손님이 끊어졌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집안 형편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더니 얼마 안 가서 쫄딱 망해 버렸다.
 
지금은 아파트에 많이 살면서 서로 사생활을 침범당하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음식을 나눠 먹기는커녕 옆집,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옛이야기에서는 흔히들 기억하듯, “지나가던 과객이 온대~” 하며 낯선 이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머물면서 온갖 이야기가 피어나곤 했다. 몇 날 며칠씩 걸려 한양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지나가던 과객’이던 경우가 많았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사실 시주승도 있었고, 거지가 집에 찾아와 밥을 얻어먹고 가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찾아오는 거지를 함부로 내치지 못해 밥 먹여준 일이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우리 집은 그렇게 좋은 형편도 아니었지만 식은 밥 한술 배고픈 이에게 주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탁발 혹은 시주라 불리는 행위는 승려에겐 중요한 행사였다. 중생이 스님에게 보시할 기회를 줌으로써 복을 얻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조계종에서는 승려의 위상을 높이고 타 종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탁발을 금했다.
 
시주라고도 불리는 탁발 행위는 승려에게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탁발을 금했지만, 라오스 루앙프라방 등에서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유지되고 있다. [중앙포토]

시주라고도 불리는 탁발 행위는 승려에게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탁발을 금했지만, 라오스 루앙프라방 등에서는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유지되고 있다. [중앙포토]

 
위의 ‘손님 싫어하다 망한 부자’ 이야기에서는 충분한 재물을 갖고 있었음에도 베풀 줄 몰랐던 부자가 결국은 자기 복을 스스로 걷어찬 일을 보여준다. 이야기에는 재물에 눈이 먼 땡땡이중도 부자에게서 그렇게 갈취한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샀지만 얼마 못 가 쫄딱 망했다는 후일담이 덧붙어 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 온갖 사람들이 다 찾아오기도 했겠지만, 집안이 흥하는 기운이란 오고 감 속에 일어나는 것이지 않겠는가.
 
최고 갑부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만수르, 워런 버핏 등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갑부의 대명사로 일컬을 만한 인물이 있다. 잘 알려진 경주 최부자다. 이 집안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는 ‘최부자네 재산 구경’ 같은 이야기가 있다.
 
최부자 재산 구경하러 간 진주 구두쇠
진주의 구두쇠와 의령의 부자가 경주 최부자 이야기를 듣고 재산 구경을 갔다. 진주 구두쇠가 지팡이를 마루 끝에 세워 두었는데 아침에 보니 없었다. 막 찾았더니 최부자 집 하인이 아침에 소죽 끓이면서 부지깽이로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집에 그런 작대기야 많이 있으니 필요하면 하나 주겠다고 했다.
 
진주 구두쇠는 제 딴에는 좋은 지팡이라고 돈 좀 써 장만한 것이었으니 기가 찼지만, 막상 하인을 따라 창고에 가 보니 자기가 가져온 것보다 수십 배는 비싸 보이는 지팡이가 가득 쌓여 있었다. 경주 최부자는 두 사람을 불러 놓고 적악(積惡)을 하지 말고,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법이라며 없는 사람 도와주면서 잘 살라고 말했다.
 
진주 구두쇠와 의령 부자는 자신이 최고 부자라고 생각하고, 경주 최부자가 부자면 얼마나 부자겠냐며 구경이나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름 아끼고 아껴서 장만한 고급 지팡이가 최부자 집에서는 소죽 끓일 때 부지깽이로나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최부자집에서 그런 허영을 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음은 개 무덤과 관련한 최부자 이야기다.
 
경주 최부자집 내당모습. [중앙포토]

경주 최부자집 내당모습. [중앙포토]

 
최부자 집에서는 논을 사면 소작료를 깎아 주었다. 만 석이 넘어가도 꼭 만 석에 해당하는 정도의 소작료만 받으면서 땅이 더 생기면 소작료를 조금씩 깎아서 받았다. 그러니 소작인은 오히려 최부자가 자꾸 땅을 사길 바랐다고 한다. 어느 날 베틀에 쓰이는 도구인 바디를 팔러 다니는 장사꾼 하나가 찾아왔다. 고칠 게 있으면 고쳐준다고도 하기에 헌 바디 하나를 보여 줬더니, 수리비로 턱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부엌 종과 바디 장수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던 중 바디 장수가 밀쳐 넘어져 그대로 죽고 말았다. 바디 장수의 남편이 사람들을 떼로 몰고 와 집안 살림을 부수며 행패를 부렸고, 최부자는 관가에 붙잡혔다. 
 
최부자 집에는 팔도 바디 장수들 수백 명이 몰려들어서 집 창고에서 쌀을 퍼다가 밥을 해 먹고 소도 잡아먹으며 살림을 거덜 내려 들었다. 최부자의 부인이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어찌해야 할까 물으니 마름에게 두루마기를 입히고 갓을 씌운 뒤 길거리에서 똥을 누게 하라고 했다.
 
시킨 대로 했더니 한 영감이 지나가다 오늘 참 별일을 다 본다면서, “오던 길에는 발목이 세 개인 개가 있더니 여기엔 갓 쓰고 똥 누는 놈이 있네.” 하는 것이었다. 그 영감에게 물어 발이 세 개인 개가 있다는 곳을 찾아가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어렵게 구해 왔다.
 
발이 세 개인 개는 마당에 엎어져 있는 바디 장수를 보고는 마구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고 흔들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썩지도 않고 있던 바디 장수 시체는 곧 백여우로 변해 죽어 버렸다. 여우가 죽자 개도 죽어버렸다. 바디 장수 일당이 백여우를 이용해 부잣집 재물을 빼앗으려고 했다.
 
최부자는 좋은 자리를 잡아 개를 정성스럽게 묻어 주었는데 그 자리가 또한 천하 명당이라 최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어 잘살았다. 최부자 이야기는 너무 흔하고 평범해 좀 뻔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흔하고 평범하고 뻔한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 사회를 너무 어둡게 만들고 있어서 마음이 아플 뿐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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