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 최근 며칠 새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의 향방을 결정짓는 굵직한 일정들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영국 하원의 브렉시트 합의안 막판 투표부터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 투표까지. 그러나 영국이 내린 마지막 결론은 브렉시트를 당초 계획보다 미루겠다는 것이었다.
브렉시트는 이달 29일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브렉시트 연기를 결정한 이상 그 시점이 미뤄지는 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승인 여부가 남아있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노딜 보다는 연기가 낫다’는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 2016년 7월 2일 열린 반(反)브렉시트 집회 참가자들이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직후 열린 이날 집회에는 4만여명이 몰려나와 영국의 EU 잔류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신화 연합뉴스 |
앞서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이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와 협상을 통해 ‘이혼 분담금’ 규모, 탈퇴 시기 등을 결정하는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절차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영국 내 보수 강경파와 야당 인사들이 합의안에 포함된 ‘백스톱’ 조항에 강력 반발하면서다. 백스톱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브렉시트 이후에도 당분간 영국을 EU 관세 동맹에 남기는 내용이다. 영국 의원들은 백스톱 종료 시점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 조항에 반발했다.
메이 총리와 EU는 물러서지 않았고, 합의안 표결을 밀어부쳤다. 이에 영국 내에서는 메이 총리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브렉시트 시한을 두 달 여 앞둔 시점, 영국과 EU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그 여정을 시점 별로 정리해봤다.
1월 15일 - 英 의정 사상 ‘최다 표차’ 부결
새해를 맞이한 흥분이 가시기도 전 유럽 전역은 긴장감으로 휩싸였다. 1월 15일로 예정된 영국 하원의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가 때문이다. 15일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찬반 승인투표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은 반대 432표, 찬성 202표로 부결됐다. 영국 정부가 의정 사상 최다 표차(230표)로 의회에 패배한 것이다. 특히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서 118표의 반대표가 나와 충격을 더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019년 1월 15일 하원 의사당에서 치러진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 이후 연설하고 있다. /영국 하원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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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같은 날 의회에 메이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메이 정부가 완전히 체면을 구긴 날이었다.
1월 16일 - 메이 총리 ‘기사회생’
영국 하원의 1차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가 부결 후 다음 날인 16일 메이 정부 불신임안 투표가 치러졌다. 다만 이날 불신임안은 찬성 306표, 반대 325표로 19표차로 부결됐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더라도 노동당에 권력을 뺏길 수는 없다는 보수당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됐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019년 1월 16일 영국 하원에서 정부 불신임안이 부결된 직후 야당 지도자들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 대안을 찾겠다고 말하고 있다. /B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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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살아남은 메이 총리는 이날 불신임안 부결 직후 브렉시트 합의안의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이후 메이 총리는 야당 대표들과 함께 합의안의 수정안인 ‘플랜 B’ 마련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1월 21일 메이 총리는 ‘앞으로 EU와의 협상에서 의회 발언권 확대’, ‘EU와 안전장치 재협상’, ‘노동권과 환경 관련 기준 강화 등을 담은 수정안’ 등을 결의안 형태로 제출했다.
1월 30일 - 브렉시트 계획 수정 결의안 가결
이날 영국 하원은 향후 브렉시트 계획과 관련한 두 가지 수정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스펠먼’ 수정안. 그리고 브렉시트의 핵심 쟁점인 백스톱 조항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안이었다.
다만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브렉시트 자체를 연기하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은 부결됐다. 영국 하원이 앞으로 정부와 EU가 마련하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또 거부할 경우 브렉시트 시점을 올해 말까지 약 9개월 연기하는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2월 - 英·EU 브렉시트 재합의 ‘빨간불’…연기설 무게
그러나 EU는 지난 2월 7일 브렉시트 합의안과 관련해 영국과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스톱 조항에 대한 재합의를 통해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려던 메이 총리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초 메이 총리는 2월 14일까지 EU와 재합의할 것이라고 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합의안 투표 시한을 연장했다. 이후 브렉시트 시점 연기설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EU와 영국이 2018년 11월 타결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은 재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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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의회는 EU와 교섭을 이어가겠다는 메이 총리의 결의안을 또다시 부결시켰다. 하원은 이날 브렉시트 시한을 최소 3개월 연장하자는 내용의 수정안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날 표결 직후 메이 총리는 EU와 재협상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3월 29일 EU를 브렉시트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도 확인했다. 그는 하원의 브렉시트 합의안 최종 표결 시한을 3월 12일로 정했다.
EU와 메이 총리의 협상은 다시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브렉시트 연기 가능성이 계속 제기됐다. 메이 총리는 2월 26일 브렉시트 연기 가능성을 공식 인정했다.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2~3개월 연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EU도 이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3월 11일 - "백스톱 무기한 NO" 막판 재합의
영국 하원의 2차 승인투표를 하두 앞둔 가운데, 메이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백스톱 조항에 대한 막판 재합의를 이뤘다. 이날 양측이 합의한 조항은 EU가 백스톱을 영구적으로 유지하려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아울러 EU가 백스톱을 무기한 유지하려 할 경우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테리사 메이(왼쪽) 영국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019년 3월 11일 회담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BBC |
백스톱 조항을 이유로 브렉시트 합의안을 거부해온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당시 융커 위원장은 "영국에 세 번째 기회는 없다"며 이것이 마지막 재합의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3월 12일 - 브렉시트 합의안 2차 부결, 또 백스톱이 ‘발목’
그러나 가까스로 마련된 브렉시트 수정 합의안은 또다시 부결됐다. 이날 영국 하원은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합의안 승인을 거부했다. 영국 의정 사상 네 번째로 큰 표차(149표)였다.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2019년 3월 6일 브렉시트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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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톱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이날 투표에 앞서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은 전날 합의된 백스톱 수정 조항이 EU의 무기한 백스톱을 완벽히 막을 수 없다는 법률적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일말의 희망을 보이던 의사당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3월 13일 - "‘노딜’도 안 된다"
13일에는 노딜 브렉시트 이행 여부를 결정하는 하원 투표가 진행됐다. 가결될 경우 영국은 아무런 합의 조건 없이 당초 예정된 29일 유럽연합을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은 이날 ‘어떤 상황에서도 합의 없는 브렉시트는 거부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가결시켰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2019년 3월 13일 영국 하원의 노딜 브렉시트 표결 이후 말하고 있다. /B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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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날 투표 후 "지금 브렉시트 지연은 불가피하다"며 하원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타협안을 찾기 위해 정당 간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14일 - 브렉시트 미루기로…EU 승인 절차 남아
13일 표결 이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 데드라인을 오는 20일로 정하고, 합의안이 통과되면 EU 측에 올해 6월 30일까지 브렉시트 연기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영국 하원은 이날 영국의 EU 탈퇴시점 연기를 골자로 하는 정부 결의안 및 의원 수정안을 찬성 412표, 반대 202표로 통과시켰다. 메이 총리가 예고한 대로 오는 20일까지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연기 기한은 더 늘어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브렉시트 연기 후 제2 국민투표를 하자는 안은 부결됐다.
이제 브렉시트 연기 기한 여부는 EU의 결정에 달렸다. 메이 총리는 오는 21~22일 이틀 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를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 27개 EU 회원국 모두의 찬성을 얻어야 브렉시트 연기가 가능하다. 만약 EU가 연기안을 승인하지 않으면 영국은 29일 ‘노딜’ 상태로 EU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EU가 ‘노딜 보다는 연기가 낫다’는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연기안은 무난히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당장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가 있는 상황에서 연장 기한에 따른 찬반이 나눠질 수 있다. 앞서 융커 위원장은 지난 13일 유럽의회 선거 전 브렉시트가 이행돼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표결 직전 EU에 브렉시트의 장기간 연기를 검토하는 방안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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